조선 선비들이 부르던 시조·가곡·가사 옛 방식 그대로 5名人 초대 재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時調)의 한 구절이다.

사랑방에 앉아 글을 읽던 옛 선비들은 그러한 시조에 음(音)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그 대상은 시조 뿐 아니라 가곡, 가사 등 다양했다. 그런 노래는 말로는 풀지 못한 마음의 시름을 풀어주고 복잡한 세상사에 휘둘리는 마음의 갈피가 되어 한없이 위로가 되었다.

이렇듯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겨 듣고 부르던 시조와 가곡(歌曲), 가사(歌詞) 를 ‘정가(正歌)’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노래인 정가는 말 그대로 아정(雅正)한 노래(歌)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종의 ‘고품격 교양음악’ 인 셈이다. 달리 말해 여러 종류의 노래들 중 비교적 상류층인 선비들이 듣고 불렀던 노래다.

국악방송 김혜경 PD는 “정가는 판소리나 민요, 잡가 등에 비해 절절하게 한스럽거나 흥겨워 들썩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가 밋밋한 것만은 아니다.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목인 듯 청아하게 뽑아내는 소리는 과하지 않게 흘러내리고, 끌어올리는가 하면, 때로는 구르고, 흔들기도 한다. 정중동(靜中動), 즉 고요 속의 움직임이란 바로 이 정가를 두고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정가 중 ‘가곡’ 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를 관현악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다. 여기서 관현악반주라 함은 가야금, 거문고, 세피리, 대금, 해금, 장구 등의 단잽이(악기당 1인의 연주자) 편성을 말하는데 가곡을 부를 때는 반드시 이 관현악반주가 뒤따른다. 가곡은 5장 형식의 긴 노래로 정가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시조’는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는데 반주자의 수가 적거나 혹은 없다. 가곡이 5장 형식으로 늘려부르는데 반해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으로 돼있다.

‘가사’는 시조가 아닌 산문시를 노래한 것으로 가곡이나 시조가 한 곡에 노랫말만 바꿔 부르는 것에 반해 정해진 곡조에 정해진 사설만을 노래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듯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불려진 독특하고 개성있는 정가를 풍요롭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정헌)가 주최하고 문화나눔추진단(단장 박정자) 전통나눔사무국이 주관하는 ‘한국음악의 재발견-대한민국 정가축제’이다.

조순자, 황숙경, 변진심, 이준아, 김영기

이번 정가축제는 우리음악 분야에서 가장 소외된 분야의 하나인 정가를 재연하고 축제구성 또한 옛 방식 그대로 실현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과거에 특별히 빼어난 사람 다섯 사람을 5명인(五名人) 혹은 5명창(五名唱)이라 하여 시대의 풍류를 이야기했듯이 그 시절 그대로 정가부분 5명인을 꼽아 정가축제를 진행한다. 정가의 대표되는 5명인 김영기(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황숙경(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KBS국악대상 가악상), 변진심(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KBS국악대상 가악상), 이준아(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 조순자(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가곡전수관 관장)가 출연한다.

또한 시대 흐름에 맞춰 창작 정가인 현대시 진달래 꽃(시 김소월), 모란이 피기까지(시 김영랑) 등을 함께 구성하였다.

그렇다면 정가의 매력, 특히 여류가객이 부르는 정가의 매력은 무엇일까?

음악평론가 윤중강은 정가를 ‘사랑의 노래’로 규정한다. “세상이 많은 노래가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정가의 사랑은 남다르다. 사랑이 격정적이지 않고 정성스럽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고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강요가 없기에 그 사랑조차 담담하게 대할 수 있었다. 여창가곡 속의 사랑이 더욱 그렇다.”

그는 또 정가의 음악적인 매력으로 ‘모음(母音)’을 든다. 정가는 모음(vowel)을 틀별히 존중하는 노래로 길게 끌어가는 소리에 우리말의 모음이 특히 아름답게 살아 숨쉰다고 한다. “모음(母音)은 그 이름처럼 어머니의 소리요, 근원적인 노래로 정가의 모음은 사랑과 사람을 아름답게 감싼다.”

국악방송 김혜경 PD는 “유유자적 길게 뻗는 청아한 목소리에 마음을 담가보면 마치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천상의 세계에 와 있는 듯 세상 모든 시름이 잊혀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해오던 한의 정서니 흥의 정서니 하는 감정적인 차원을 떠나 그것을 초월해 오롯이 풍류의 흥취에만 젖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가축제는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북촌창우극장에서 열리며 공연관람은 무료이다. 문의는 전통나눔사무국(02-760-482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