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하얀 밤' 잠 못드는 추억들헬싱키·스톡홀름 오가는 호화 유람선 북유럽 여행의 백미

몇 년 전, 나는 미국서 함께 공부하던 아이슬란드 친구의 초대로 며칠 동안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키야비크에 머문 적이 있다. 우리 둘은 아침에는 노천온천에서 산뜻한 레이키야비크의 공기를 마시면서 몸을 풀고 저녁에는 아담하고 예쁜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친구와 함께 동네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잠시 바람을 쐴 겸 거리로 나왔다.

이상하게도 저녁이 꽤 늦었는데 파란 색조를 띤 밤거리는 환히 보일 정도로 어둡지 않았다. 그 때 바라본 레이키야비크의 하늘과 거리의 느낌은 참 묘했다. 그건 북유럽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후 한 동안 나는 신비스럽고 서정적인 북유럽의 하늘을 잊지 못했다. 2006년 여름, 북유럽의 ‘백야도시’를 돌아다닐 목적으로 짐을 꾸렸다. 매년 6월에서 8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백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북유럽을 찾는다. 나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 영화 닥터 지바고 촬영지 헬싱키

‘북유럽 백야여행’의 출발지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였다. 여행객들은 헬싱키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헬싱키항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다를 바라보고 넓게 자리 잡은 시장광장 중앙에는 헬싱키항구의 상징인 ‘발트 해의 처녀’ 하비스 아만다 동상과 분수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항구시장이 펼쳐진다.

형용색색의 야채와 과일을 늘어놓은 좌판과 관광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항구시장은 항상 분주하다. 바다를 등지고 시장광장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1820-1849년에 세워진 핀란드의 전형적인 건축물을 만난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원로원광장과 핀란드대성당. 배를 타고 헬싱키 항으로 입항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청사와 항구시장을 양쪽에 품은 듯한 대성당이다.

원로원광장은 러시아 황제가 독일인 건축가 칼 엥겔을 시켜 건축한 곳이다. 헬싱키의 옛 건축물인 시장광장과 원로원 광장 주위가 러시아 도시의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미국의 허리우드가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르키 공원>과 <닥터 지바고>를 제작할 때 헬싱키에서 촬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헬싱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풍부한 녹지와 함께 잘 꾸며진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핀란드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 특히 헬싱키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처인 에스플라나디 공원을 사이에 두고 달리는 쇼핑가에는 핀란드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이탈라(유리제품), 아라비아(도자기), 마리메코(직물), 아리카(백목제품)등의 유명 상점들이 몰려 있어 핀란드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붐빈다.

북유럽 여행의 색다른 맛은 역시 호수나 바다를 오가는 선상여행이다. 특히 헬싱키와 스톡홀름을 오가는 호화유람선은 단연 북유럽 여행의 백미(白眉). 2,700개의 침실을 갖추고 있는 실랴라인과 바이킹라인이 매일 오후 헬싱키 항구를 떠나 다음 날 오전 스톡홀름 항에 도착한다. 갑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왜 북유럽 여행이 색다르고 즐거운지 실감할 수 있다.

스톡홀름, 스톡홀름 플라스타가탄(위)
피오르드, 베르겐(아래)

■ '북구의 베니스'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다. 푸른 숲과 호수, 물길을 오가는 크고 작은 배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북구의 베니스’ 스톡홀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의 혜택을 밑그림 삼아 750년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옛 건축물과 거리들이다. 여기에 여름밤의 백야가 더해져 스톡홀름의 풍광은 더욱 빛난다.

스톡홀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중세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구시가 감라 스탄. 왕궁, 대성당, 대 광장,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옛 건축물과 돌길, 길가에 늘어선 예쁜 가게들의 모습은 마치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하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구경할 곳은 감라 스탄의 북쪽에 위치한 스웨덴 왕궁.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3층 건물의 스웨덴 왕궁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위용을 떨치던 스웨덴의 상징이다. 608개에 이르는 왕궁의 방은 유럽의 최고 예술가와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음에 찾아갈 곳은 구시가지 감라 스탄의 중심에 위치한 대(大)광장.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지금은 대광장의 주위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수많은 여행객으로 붐비는 곳이지만 과거에는 시장이 열리고 죄인을 처벌하던 장소였다.

대광장의 한쪽에는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1년에 문을 연 노벨박물관이 있다. 스톡홀름의 또 다른 즐거움은 감라 스탄의 옛 골목길을 돌아보는 것. 주변을 구경하면서 크고 작은 거리를 걸어 다니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디자인의 나라답게 가게의 간판과 유리창의 장식들이 모두 아담하고 예쁜 모습이다.

■ 대자연의 걸작품 노르웨이 피오르드

스톡홀름을 떠나 찾아간 곳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다. 오슬로 관광의 핵심은 카를 요한 거리.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카를 요한 거리는 매일 수많은 보행자가 이용하는 오슬로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왕궁, 국회, 대학교, 국립극장을 포함하여 오슬로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늦은 밤 백야를 감상하면서 걷는 요한 거리는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카를 요한 거리를 따라 가면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묵는 그랜드 호텔과 오랫동안 오슬로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그랜드 카페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계속 카를 요한 거리를 내려가면 거리 끝에 노르웨이 왕궁이 거리를 내려다보듯이 서 있다.

항구 쪽으로 향하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오슬로 시청사를 만날 수 있다. 현재의 시청사는 하랄 왕이 1050년 오슬로 시의 기초를 확립한 지 꼭 900년이 되던 1950년,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건축물이다.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수상식이 이곳에서 거행된다.

노르웨이 관광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피요르드다. 대자연의 걸작품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피요르드는 오랜 세월을 걸쳐 빙하가 만들어낸 웅장하면서 거친 모습의 협만(峽灣)을 이르는 말.

노르웨이 서해안을 따라 펼쳐 있는 피요르드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송네 피요르드다. 오슬로나 베르겐에서 출발하여 산악기차, 페리, 버스를 갈아타면서 그림 같은 마을의 모습과 자연의 절경, 그리고 송네 피요르드를 감상하면서 두 구간을 오간다.

■ '디자인의 성지' 덴마크 코펜하겐

코펜하겐 경비병, 코펜하겐 인어동상(위)
코펜하겐 크리스티나, 코펜하겐 뉘하운(아래)

끝으로 찾아간 곳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다. 코펜하겐 여행의 출발점은 중앙역 부근에 있는 시청사 광장. 붉은 벽돌의 시청사는 중세 덴마크 양식과 북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중세풍의 건축양식으로 1905년에 지어졌다.

코펜하겐에서는 시청사 탑보다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고 건축물의 외관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시 조례 덕분에 시가지의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중후하면서 차분한 분위기다.

세심한 코펜하겐의 도시계획과 함께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뢰에 거리였다. 시청 앞 광장에서 신호등을 건너면 바로 이어지는 폭 10미터, 길이 1,2킬로미터의 길이다. 스트뢰에란 덴마크어로 ‘걷는다’는 뜻.

유럽에서 손꼽히는 ‘보행자의 천국’ 스트뢰에 거리는 코펜하겐의 중심도로인 동시에 ‘디자인의 성지’라고 불리는 북유럽 제일의 쇼핑가이다. 스트뢰에 거리가 항상 행인들로 붐비지만 스트뢰에 거리의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옛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게 코펜하겐의 또 다른 매력이다. 스트뢰에 거리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면 코펜하겐의 상징인 뉘하운이 나온다.

뉘하운은 ‘새로운 항구’라는 뜻. 한때는 코펜하겐 항구에 돛을 내린 선원들의 술집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은 ‘안데르센의 거리’라고도 불린다. 14세에 오덴세에서 성공의 꿈을 안고 코펜하겐으로 상경한 안데르센은 말년까지 이 거리에서 보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카페와 레스토랑의 모습도 보기 좋지만 운하 바로 옆에서 젊은 남녀들이 저마다 한 손에 맥주 한 병씩 들고 담소를 즐기는 풍경이 참 이채롭다.

덴마크어로 ‘휘게’라는 말이 있다. ‘편하고 안락한’이라는 뜻이다.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떠오른 말이 바로 ‘휘게’였다. 나는 ‘북유럽의 백야 도시‘를 여행하면서 건축물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전통과 모던이 조화를 이룬 도시의 모습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소중한 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북유럽의 도시들을 ’자연을 닮은 도시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전남대 인류학과,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템플대 영상인류학과 석사ㆍ박사. <동유럽에서 보헤미안을 만나다><북유럽 백야여행><북극의 나눅> 등 출간.


이기중 kijung00@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