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꼭 하고 싶고… 군대·얕은 관객층·부족한 재정은 문제

3명의 유명 발레리노가 한꺼번에 ‘토슈즈’를 벗었다. 정주영(30), 백두산(26), 유회웅(25)씨가 그 주인공이다. 마지막 선택도 아니다. 오히려 ‘의외’의 선택이다. 정주영 씨는 600여 작품에 출연한 국내 대표 발레리노 가운데 한명이다. 유회웅 씨는 국립발레단 소속의 ‘잘나가는’ 발레리노였다. 백두산 씨는 프리랜서로 ‘주가’를 높이던 석사 발레리노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들은 “돈이 아니라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데 입을 모은다. “캣츠라는 걸작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발레에 비해 노래와 말, 표정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뮤지컬의 예술도구로서의 장점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군대’문제, ‘얕은 관객층’, ‘부족한 재정’ 등 발레에 전념할 수 없는 열악한 국내여건 역시 지적한다. 기대와 지원을 한몸에 줬던 발레계 스승이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가 된 발레리노 3인방을 18일 오후 3시께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발랄한 뮤지컬처럼 밝았지만, 열악한 국내 순수예술계를 말할 때는 카페 조명처럼 약간 어두워졌다.

▲ 뮤지컬 배우로 전향한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정주영(이하 주영) : 작품에 대한 사랑이었다. 창작과 무대에 대한 동경이 나를 움직였다. 캣츠라는 작품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유회웅(이하 회웅) : 캣츠라는 유명한 작품에 대한 열정이었다. 용기 내서 결정을 했다. 너무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젊음의 패기나 열정을 좀 더 많은 수단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백두산(이하 두산) ;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다. 몸동작 뿐 아니라 노래와 표정 등 복합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 무엇이 뮤지컬의 매력인가. 발레와 가장 다른 점은.

-회웅 : 본래 성격이 외향적이다. 말은 안하고 몸으로만 표현하는 발레가 답답하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나 같은 성격에는 뮤지컬이 더 맞는 것 같다. 뮤지컬을 보면 이해가 빠르고 재밌지 않은가. 표현범위도 더 넓어 대중과 소통이 잘 된다는 게 뮤지컬의 장점이다.

-주영 : (뮤지컬은) 몸 뿐만이 아닌 말과 노래로 섬세하게 연기하는 것이다. 발레 역시 매력이 있지만 더 많은 수단을 동원해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뮤지컬의 매력이다.

-두산 : 대중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장르라는 게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발레 뿐 아니라 살사 등 다른 춤도 좋아하는데 뮤지컬에서는 모든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 돈 때문은 아니었나

-주영 : 나의 경우는 오히려 발레계에서 더 경제적, 사회적으로(웃음) 좋은 위치에 있었다. 뮤지컬쪽 사람들과 친했다. 분야와 사람에 대한 동경을 따랐다.

-회웅 : 돈 때문에 뮤지컬로 가는 것은 아니다. 캣츠라는 유명한 작품에 캐스팅되기 위해 1,000여명과 똑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 31명이 뽑혔다. 고민도 있었지만 작품을 보고 용기를 냈다.

-두산 : 관객들과 더 가깝고 편안한 소통을 하길 원했다. 무대와 박수가 좋아 선택했을 뿐이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라 할 만큼 용기를 냈다.

▲ 발레에 전념하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회웅 : 남자 무용수들의 경우에 군 문제가 가장 크다. 군 면제 혜택을 주던 몇 안되던 국내콩쿠르도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외 콩쿠르 입상만 면제혜택을 볼 수 있는데 참가비용만 수천만원이다. 정말 열심히 하는 남자무용수들이 군대문제로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제대 후 다시 몸 만들고 적응하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른 다섯쯤이 정년이라고 보는 발레계에서 군대라는 기회비용은 너무 크다.

-두산 : 남자가 없으면 발레의 발전도 없다. 모든 작품에 발레리나가 30명이면 발레리노도 30명 필요하다.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은 남자배우가 여자배우보다 더 필요하다. 무대 스케일을 유지하려면 남자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주영 : 발레 관람객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사람중에 발레공연을 본 사람은 전체의 영점 몇몇 프로도 안될 것이다. 발레단의 운영비용 등 예산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순수예술분야에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

▲ 왜 <캣츠>인가

-회웅 : 캐릭터의 매력이다. 31마리 고양이에 각각 다른 캐릭터가 있다. 도둑, 악당, 마법사 고양이 등 수많은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주영 : 박수를 따로 더 오래 받는 캐릭터가 없다. 커튼 콜 때 배역 중요도에 따라 박수 소리가 다른 발레와의 차이점이다.

-두산 :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아닌가. 27년만에 15번째 언어로 공연하는 데 참여한다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캣츠 한국팀 리허설

▲ 각자 캐릭터를 소개해달라

-주영 : ‘맥케버티’란 악당 고양이다. 자신의 부하인 쥐들을 동원해 젤리클의 리더인 올드 듀터로노미를 납치하기도 한다.

-회웅 :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라고 마법사 고양이다. 사물을 사라지게도 나타나게도 한다. 낮잠을 자면서 모든 소음을 없앨 수도 있는 놀라운 고양이다.

-두산 : ‘알론조’라는 이름의 수컷고양이다. 종족 내에서 가장 큰 놈 중에 하나다. 많은 어린 고양이와 암고양이를 보호하는 정의로운(웃음) 캐릭터다.

▲ 앞으로 각오는

-주영 : 뮤지컬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공교롭게 대작을 하게 됐다. 오리지널 팀 공연이 끝나자마자 공연을 한다. 오리지널 팀보다 더 나은 라이센스 팀 소리를 듣게 하겠다.

-두산 : 노래가 처음이라 많이 설렌다. 부담이 큰 만큼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더 큰 도전인만큼 기대도 크다. 한번 해보겠다는 각오다.

-회웅 : 무대에서 공연으로 말하겠다. 멋지게 후회 없이 하겠다.

▲ 발레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주영 : 사람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 사랑해서 하고 있다면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어떤 분야인지는 중요치 않다.

-회웅 : 발레가 정말 싫지 않다면 경제적 부담 등으로 떠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나 역시 발레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두산 : 꿈을 잃지 않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