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출항에 나선 <이산>호가 16일 종착지에 닿았다. MBC 사극 <대장금><허준> 등 국민 드라마를 만든 이병훈 PD가 선장으로 키를 잡아 기대가 컸다. 배우 이서진 한지민 성현아 등 새로운 얼굴이 승선하고, 배우 이순재 박은혜 견미리 등 이산호의 단골 손님도 함께 올라 힘차게 내달렸다.

10개월의 항해가 끝났고, 방송 분량은 스페셜 편을 포함해 2회 남기고 있다. <대장금><허준> 등에 비하면 성과물이 크지 않지만 방송 내내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게 지키며 방송3사 통틀어 가장 높은 몸값(광고비)를 자랑했다. 만선은 아니지만 승선한 모든 이를 충분히 배부르게 할 만한 성과였다.

MBC 월화 사극 <이산>(극본 김이영ㆍ연출 이병훈 김근홍)의 10개월을 숫자로 되짚어본다.

■ 3

<이산>은 주연 배우 3명의 일대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정조 이산(이서진)이지만 그 곁에는 도화서 화원에서 후궁이 된 성송연(한지민) 호위무사 박대수(이종수)가 있었다. <이산>은 세 사람의 어린 시절 만남을 그린 방송 초반부부터 아역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주목을 끌었다.

3의 의미는 또 다른 데 있다. 이병훈 PD은 <이산>을 통해 또 한 명의 거장 김재형 PD와 3번째 맞붙게 됐다. 결과는 이병훈 PD의 완승. 김재형 PD가 연출한 SBS <왕과 나>는 방송 초반 강세를 보였지만 PD하차와 폭력 사태로 얼룩지며 <이산>에 주도권을 내줬다.

지난해 8월12일 촬영을 시작한 <이산>은 지난 7일 녹화를 끝으로 모든 촬영을 마쳤다. 정확히 '3'00일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 9

<이산>과 맞붙어 고개를 숙인 드라마는 모두 9편이다. KBS는 <아이엠 샘>으로 <이산>과 승부를 시작했다. 이후 <얼렁뚱땅 흥신소>를 거쳐 배우 권상우가 주연을 맡은 <못된 사랑>으로 맞불을 놨지만 <이산>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배우 오지호를 앞세운 <싱글파파는 열애중>과 배우 채림 이진욱 등이 나선 <강적들> 역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SBS는 <왕과 나>의 초반 선전이 위안거리다. 63회까지 방송된 <왕과 나>는 <이산>의 공세 속에서도 10%를 웃도는 시청률을 유지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왕과 나>의 빈자리는 컸다. 후속 편성된 <사랑해>는 5% 안팎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방송된 <도쿄 여우비> 역시 잘 만든 드라마라는 칭찬에 만족해야 했다.

■ 35.4

<이산>이 기록한 최고 시청률이다. <이산>은 지난 2월25일 방송된 46회가 전국 시청률 35.4%(이하 TNS미디어코리아 제공)를 기록했다. <이산>의 관계자는 "더 치고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케이블과 인터넷 등 채널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35.4%의 시청률은 몇 년 전과 비교해 40%를 웃도는 수치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77

<이산>은 16일 77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당초 60부작으로 기획된 <이산>은 17회를 연장하고서야 끝을 볼 수 있게 됐다. 적잖이 진통도 있었다. 연장을 둘러싸고 제작진과 출연진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 "가능하면 당연히 연장하고 싶다"는 제작진과 "연장 얘기는 시기상조"라고 에두르는 출연진은 결국 17회 연장이라는 절충선에 닿았다.

통상 미니시리즈가 16부작으로 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17회 연장은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 4억6,746만원

<이산>은 높은 시청률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가장 비싼 프로그램으로 군림해 왔다. <이산>의 15초 당 광고 단가는 1,669만 5,000원(이하 한국방송광고공사 자료). 프로그램 방송 시간의 10%(70분의 경우 7분까지 가능)까지 광고를 방송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70분 분량의 <이산>의 경우 1회 당 4억6,746만원의 광고 수익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 드라마 이산의 '명'과 '암'

◇ 명(明)- 이종수·한상진 '재발견'

10개월간 드라마 시장을 주도해 온 <이산>은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

배우 이종수와 한상진은 <이산>을 통해 재평가 받았다.

한때 예능 프로그램을 주무대로 삼던 이종수는 <이산>에 전념하며 배우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한상진 역시 야심가 홍국영 역에 꼭 들어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초 MBC 드라마 <하얀거탑>을 통해 얼굴을 알린 한상진은 <이산>에서 홍국영의 흥망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한상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이 외에도 이병훈 PD표 사극의 단골 손님인 배우 이순재 박은혜 김여진 견미리 등도 변함없이 탄탄한 연기력을 뽐냈다.

<이산>은 출연 배우들의 결혼 소식으로도 연예계를 후끈 달궜다. 시작은 배우 성현아였다. 성현아는 지난해 12월 한 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리며 결혼 릴레이에 불을 지폈다. 4개월 후 배우 박은혜 역시 네 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에 골인하며 경사가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이산>의 촬영을 위해 신혼여행을 미루고 결혼식 직후 촬영장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이서진 역시 공식 연인인 배우 김정은과의 결혼 여부가 끊임없이 세간의 관심사가 됐다.

◇ 암(暗)- 시청률 의식'눈치작전

<이산>은 시청률 지상주의를 폐해를 다시 한번 끄집어 냈다. <이산>은 10일 '한편으로 보는 이산-최종회를 앞두고' 편을 방송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9일 예정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방송 편성이 취소되면서 빚어진 일이다.

17일에도 '이산 스페셜'이 계획돼 있는 터라 결국 시청자는 짜깁기된 스페셜 방송을 두 번 봐야 하는 상황이다. MBC의 무리한 편성은 후속작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묻어난다.

<이산>의 파행 편성은 KBS와 SBS에도 영향을 끼쳤다. KBS는 <이산>의 종영일이 결정되자 4부작 미니 드라마 <살아가는 동안 후회할 줄 알면서 저지르는 일들>을 갑자기 편성해 <최강칠우>의 방영을 미뤘다. 이 드라마는 당초 '드라마시티용'으로 제작된 것을 감안하면 KBS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SBS 역시 <식객>이 시작되기 전 4부작 <도쿄 여우비>를 편성하고 16일 메이킹 장면을 방송하기로 하는 등 <이산> 피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청률 사수를 위해 방송사들이 펼치는 꼼수에 애먼 시청자만 '볼 권리'를 잃고 있는 형국이다.

<이산>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불평등한 관계를 시사하는 매개물이 되기도 했다. <이산>을 제작하는 김종학프로덕션의 김종학 대표는 지난 4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산>을 제작하며 인기와 별개로 15억 원을 손해봤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방송사는 사회주의 체제"라고 불만을 토로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산>을 바라보지만 제작 이면에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 이산 이병훈 PD "재미 좇다보니 사실성 놓쳤다"

"원없이 잠만 자고 싶다."

10개월 간 <이산>을 이끌어 온 수장의 현재 소원이다. 이병훈 PD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이산>의 종방연에 참석했다. 그 동안 평균 3,4시간의 수면을 취해왔다는 이병훈 PD는 "큐사인을 준 후 잔 적도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홍삼 엑기스를 마시며 체력을 유지해 왔다. 당분간 원없이 잠만 자고 싶다"고 말했다.

이병훈 PD를 괴롭힌 것은 수면 부족 뿐만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시청률 도표와 씨름하며 방송을 구상해야 했다. 시청률이 곤두박질칠 때면 모자란 잠조차 좀처럼 청할 수 없었다. 이병훈 PD는 "하루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1회부터 지금까지 시청률을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 분석했다.

시청자들은 이병훈 PD의 노고에 시청률로 보답했고, 이병훈 PD는 이제서야 웃을 수 있게 됐다. 이병훈 PD는 "땀띠로 고생하던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봄이 지나 다시 초여름이 왔다. 대한민국에서 억세게 운이 좋아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태프와 출연진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병훈 PD는 아쉬운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시청률을 떠나 작품 자체에 대한 '명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병훈 PD는 "재미를 좇다 보니 허점도 많았다. 정순왕후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순왕후를 의금부 역사에 가두는 등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고증을 무시하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향후 계획도 함께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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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 realyo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