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인문학 박물관 개관… 1만 7,000여 소장품과 3,000여 근현대 자료 전시

인문학의 위기 시대라고 한다. 실용 학문에 밀려 인문학이 홀대받기 일쑤이고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나 폐과가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인문학이 그 지경이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중과 소통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 인문학이 좀더 대중과 가까워지고 즐겁게 인문학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마련됐다. 지난달 20일, 서울 계동 중앙고 교내에 개관한 국내 첫 인문학 박물관이다. 1일부터는 일반인이 박물관의 다양한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돼 인문학이 한층 대중 곁으로 다가서게 됐다.

박물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에 전체 면적 2781.9m². 소장품은 1만7,000여 점이며 3,000여 점의 근현대 인문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건립 총괄책임자 김희령 씨는 “근현대 생활에 녹아 있는 인문정신을 끄집어내 산업화 이후 훼손된 인문정신을 되찾자는 취지로 인문학박물관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1958년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 김순남의 피아노협주곡 육필 악보

자료를 섹션별로 전시하는 실무를 담당한 강성원 학예실장은 “2005년부터 만 3년 동안 소장가들에게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자료들 가운데 추리고 추려서 전시품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1900∼1980년대 한국의 문화사와 인문학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돼 있다.

1층 ‘인문학 도서관’은 1만여 권의 인문학 관련 서적을 소장하고 있고, 2층은 도시와 농촌, 가정과 노동,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등 근현대 일상문화의 모습과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첫 섹션의 주제인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코너에는 ‘별건곤’을 비롯한 1930년대 잡지들이 전시돼 있고, 1929년 조선박람회 풍경 사진, 일제 강점기 때 어린이 교육을 강조한 점, 신앙별 희귀 자료 등이 이채롭다.

3층 전시실은 문학, 음악, 미술 등 20세기 한국 문화사의 변천과 한국 근현대 인문 이론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최초의 피아노협주곡인 김순남의 ‘피아노협주곡 D장조’ 육필 악보로 색이 바래고 모서리 부분이 부스러졌지만 음표들은 여전히 뚜렷하다. 현채가 1899년 완성한 ‘동국역사’, 유길준의 1909년 ‘대한문전’, 최남선이 1914년 펴낸 ‘대동운부군옥’, 이인직의 신소설 ‘귀의 성’ 단행본 초판, 독립운동가 김가진이 1914년에 쓴 편지 등은 보기 힘든 자료로 꼽힌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일제강점기와 1970~80년대 금서를 별도로 분류한 코너도 흥미롭다. 특별히 ‘우리 이론’을 다룬 섹션이나 해외 한민족과 북한 코너를 마련한 것은 인문학의 지평을 넓힌 공간으로 해석된다.

강성원 학예실장은 “전시품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읽음으로써 우리 인문 정신의 정체성을 찾고 앞으로 새로운 인문정신을 만드는 데 박물관이 소중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많은 방문객이 찾아줄 것을 기대했다.

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반∼오후 5시 반. 어른 2,000원, 초중고생 1,000원. 월요일 휴관. 02-747-6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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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