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한석규와 투톱MBA출신 지능범역 다양한 연기 변신

“요즘 저의 관심사는 과연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과 얼마나 같이 가고 있는가에요.”

지난해 봄, 차승원은 “요즘 아이들이 걱정이에요”라고 말을 했었다. 180도 변화했다는 사실은, 그의 외모에서 먼저 감지됐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레게 머리에 속살이 살짝 비치는 검은색 티셔츠로 “아!”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지난해 부성애를 그린 영화 <아들> 개봉을 앞두고 만나 ‘요즘 세대’를 걱정할 때는 훈장 선생님 같더니, 이번에는 그 훈장에게 혼나는 말썽꾸러기 청소년 같았다.

차승원은 한 가지 색깔로 규정되는 배우가 아니다.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감독 곽경택ㆍ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의 31일 개봉을 앞두고 그렇게 대중 앞에 변화된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MBA 출신의 지능범 안현민을 맡았다. <리베라 메> 이후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짧은 머리에 검은색 수트를 입고 엘리트이지만 범죄자인 역할을 소화해냈다. 정작 차승원은 “악역을 연기하며 어디에 주안점을 줬느냐”는 질문에 “그저 여유로웠으면 했어요. ‘느물느물한 눈빛’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며 눈 옆에 주름을 만들어 웃었다.

사실 이번 역할은 최근 차승원이 보여준 행보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른 연예인의 몸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며 ‘몸짱’의 면모를 늘 과시했지만 ‘모델 출신’이라는 선입견은 원하지 않았던 그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액션처럼 반질반질한 영상에 그가 속해 있자, 마치 예전 ‘모델 차승원’으로 돌아간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차승원은 “요새는 새로운 것이 좋아져서 스타일리시한 영화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스멀스멀한 드라마’는 이제 재미가 없어요. 말로 무엇을 하려는 게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요”라고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접하는 이들의 관심사는 배우 한석규와 투톱이라는 점이다. 연기력이나 유명세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행여나 ‘기 싸움’이라도 벌이지 않았을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차승원은 “남자배우들과 많이 호흡을 맞춰봤고 늘 연기를 잘 하는 배우하고만 했죠. (한)석규형은 당대 최고의 배우에요. 내가 뭘 하려고 안 해도 잘 어우러지리라는 믿음이 있었어요”라고 밝혔다. 차승원은 “어린 시절에는 내가 잘 해야지,라는 욕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잘 어우러져서 영화가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고 말했다.

활발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차승원과, 내성적이고 나서기를 꺼리는 한석규의 성격은 분명히 맞지 않는 부분은 있었을 터. 차승원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봐요. 사실 석규형과 나는 다르죠. 석규형은 좋은 아버지이고, 차분하고, 연기도 잘 하고…. 그러나 석규 형을 닮고 싶지는 않다는 것, 이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지난 1988년 모델로 데뷔해 배우로 변신, 총 20년째 활동하고 있는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를 비롯해 <혈의 누>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을 통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가 생각하는 연기란 무엇일까.

“전 사실, 연기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제 생각과 사상이 더 중요해요. 과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과 얼마나 같이 발걸음을 맞추고 있는가 말이죠. 음악이든 패션이든. 나이가 들더라도 이들 위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가 숙제죠. 연기는 사실 그 다음입니다.”

차기작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20대도 소화하기 어려운 헤어스타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믿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 있기에, 모델 스타일로 ‘회귀’해도 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을 터. 차승원은 “내년이면 저도 마흔이에요. 벌써 이 업계에 온 지 20년인데, 나이와 경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로지 제가 갖고 있는 소양으로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차승원은 인터뷰 자리에서 외국에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해 불편할 때면 영어를 해야 겠다고 느끼는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고, 고유가 시대의 고단한 삶에 대한 걱정도 내놨다. 또 아이가 배우를 하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저는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게 현실이죠, 허허.”

몸과 마음은 20대이지만, 아이 아빠로서는 때로는 ‘쿨’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생각하듯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는 늘 푸른 소나무였다.


이재원 기자 jjstar@sportsha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