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촬영 중 낙마손목골절 불구 끝까지 액션 연기 해내

벌판에서 말을 달리며 장총을 쏘는 카우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브라운 재킷에, 적당히 허름한 카우보이 모자, 카키색 롱 스카프로 입을 가린 채 눈만 이글거리는 모습. 국내에서 정우성 말고 이런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또 있을까.

웨스턴 영화를 표방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ㆍ제작 바른손엔터테인먼트ㆍ이하 놈놈놈ㆍ17일 개봉)의 박도원은 정우성 아니라면 안 되었다. 실제 마주한 그 역시 박도원처럼 말수는 적고 좀처럼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그가 보내오는 숨막힐 듯한 긴장감은, 잘 생긴 외모 덕분에 섹시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놈놈놈>에서 보여주는 거칠고 무심한 냉정함 혹은 터프함일 수도 있으리라. 분위기 잡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나 립서비스는 하지 못하는, 그런 남자 중의 남자의 모습 아닐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오른 <놈놈놈>의 주연배우로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가장 많은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이병헌 보다 카메라의 사랑을 받았다. 유일하게 칸에 처음 참석했는데도 말이다. 할리우드에 가도 뒤지지 않을 훤칠함과 자신감 있는 미소가 단연 눈에 띄었다.

“극장 안에서 스크린으로 중계해 줄 때 보니까 엄지손가락도 들어 보이고, 손도 흔들던데 카메라 보라고 그런 것 아닌가요?”

슬쩍 딴죽을 걸어봤다. 너털웃음과 돌아오는 털털한 답.

“어? 그거,레드 카펫 바깥에 있던 스태프 보고 인사한 건데요? 기분은 무척 좋았죠. 3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박수가 10분간 압도하니까. 누군가 일이 끝난 뒤 ‘정말 잘 했어’라고 칭찬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미지 관리를 위한 답이 아닌, 그저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정우성이라는 배우다. 그는 피부관리를 하거나 보톡스를 맞는 대신 말과 대화를 나누고 시나리오를 쓰고 술을 마신다.

<놈놈놈> 촬영 중에도 날마다 말과 대화를 나눴다. 경마장에서 기수들이 말을 타듯 엉덩이를 안장에 붙이지 않고 허벅지의 힘만으로 말의 배를 감싸고 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장총을 들어서 한 바퀴 돌리고 쏘기까지 했다.

“조그마한 구덩이가 있어도 넘어질 수 있으니까요. 날마다 ‘괜찮을 거야. 다치지 않을거야’라고 말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사실은 저한테 하는 말이었죠.”

그렇게 주문을 외웠지만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빗속에 귀시장으로 말을 타고 들어가는 장면을 촬영하다 작은 물웅덩이에 놀란 말이 뛰어오르는 바람에 낙마했다. 왼쪽 손목이 부러졌지만 그 손으로 밧줄까지 잡고 액션을 해 냈다.

기브스조차 하지 않고 액션을 강행한 데 대해 “의상이 타이트해서 기브스를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만 찍으면 되는데 저 하나 때문에 며칠씩 중단할 수는 없었죠. 안 그래도 제작비도 많이 들었는데”라고 말했다. 감독을 꿈꾸는 배우 답게 그는 자신의 모양새보다 전체의 만듦새를 중시했다. 그의 입에서는 ‘스태프’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놈놈놈>의 영상에서 압도적인 것인 그의 외모와 액션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말투에 가장 주안점을 둬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김지운 감독이 대본 연습을 할 때부터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연습을 시킨 그런 말투다.

“미묘한 좁은 폭 안에서의 변화이겠지만 어렵기도 했고 재미도 있었죠. 자기 우월감도 있고 무심함도 있는 그런 말투가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이번 <놈놈놈>에서의 정우성은 <비트>에서의 정우성처럼 한껏 물이 올라 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비트>를 가장 소중한 작품으로 꼽는다. 굉장히 많은 친구들에게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나, 그때의 감성이 실제의 감성과도 너무 비슷했다는 점 때문에. “나에겐 꿈이 없다”로 시작하는 내레이션을 직접 썼을 정도로 애착이 강한 작품이다.

“그 내레이션을 쓸 때, 꿈을 갖고 싶었어요. 반어법이었죠. 뭔진 몰랐지만 꿈이 있었고 찾고 싶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사실 꿈이 없다면 살 수도 없었죠. 지금의 꿈은 배우로서의 길을 좀 더 굳건하고 확고하게 다져가는 것이에요. 이제는 인생을 완성하고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게 30대의 비트 아닐까요.”

정우성에게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욕심이 나지 않느냐고. 아름다운 외모와 뒤지지 않는 연기력을 지녔지만 영화의 흥행이 잘 되지 않을 때조차 마음이 급해 보이지 않는다고. 드라마에 출연해서 대중에게 잊혀지고 싶어하지 않는다거나,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거나 화려한 이력서를 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말이다.

“욕심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을 쫓아가기 급급하다 보면 힘들어져요. 자신감은 천천히 여유 있게 갈 수 있게 해 주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도록 노력도 하게 되고요. 광고를 하기 위해서 마음에 안 드는 드라마를 할 수는 없죠. 할리우드 진출은 늘 열려있지만 때로는 제가 생각하지 않은 이유로 뭔가 안 맞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는 그. “집 안에 감춰둬 먼지가 쌓인 책을 읽는 일은 책상 깊숙이 넣어뒀던 감성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그.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차근차근 걷고 있는 그는, 분명히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배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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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