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일보 전진, 김지운의
서부영화를 만주공간에서 작업하는 일은 권투선수가 한 체급 올려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는 것 같다. 결과는 내러티브를 제외하고는 예상대로 선전한 것 같다. 내러티브가 치밀했다면 이 작품은 한국 700개관이 아닌 전 세계 7000개 관에서 개봉해도 손색이 없는 대중영화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을 썼다. 유협(遊俠)은 ‘신의가 있고, 행동에는 실천이 있으며. 환란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는 선한 협객’이다. 중국의 영웅상은 자신을 버리고 남의 어려움을 구해주는 유협이다. 미국의 영웅은 총잡이이며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은 영웅이거나 반영웅이다. 영웅은 악당을 퇴치하고 반영웅은 죽거나 떠난다.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인물은 영웅이기 보다는 개성있는 반영웅에 가깝다. 직업도 열차 강도(윤태구/송강호 분)와 마적단 두목(박창이/이병헌 분) 그리고 현상수배범(박도원/정우성 분)으로 영웅과 거리가 있다. 이들은 범법자이거나 감옥의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들은 잡초같은 생명력과 장총을 쏘며 달리는 말위에서 일본군을 쓰러뜨려 살인을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관객의 박수를 받게된다. 김지운은 세 사람의 캐릭터를 황금분할 시켰으며 ‘비사회적이고 반영웅적인 인물들을 갖고서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배경은 1930년대 만주이지만 독립운동 같은 정치적 행보는 배제했다. 그 자리에 <반칙왕>의 송강호가 보여준 웃기는 인물과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과 장총을 들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정우성의 아우라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어 대중성 고양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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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는 보물지도 한 장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만 남기고 가지를 다 쳐냈다. 세 명의 스타가 펼치는 대결과 만주에서 보물지도를 소유하려는 일본군과 마적단의 추격이라는 골격만 남았다. 여기서 감독이 빼든 승부 카드는 스타의 연기와 온몸을 던져 만들어낸 거대한 스펙터클이다. 윤태구가 지도를 갖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마적단과 귀시장파와 일본군들이 추격하는 장면은 영화관에 관객들이 구경거리를 위해 간다는 사실을 잘 간파한 것 같다. 이 장면은 <벤허>의 마차 경주 장면처럼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진정한 스펙터클은 바로 전과 후의 서사 맥락을 잊게 하고 그 장면에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서 시간과 이야기는 멈추게 된다.
단지 대평원을 달리는 스펙터클만 평가하자면 한국영화사는 <놈놈놈> 이전과 이후로 갈릴 것 같다. 이 정도의 스펙터클을 찍어낸 작품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르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시각적 볼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상업영화의 불문율이다. 김지운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은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이 영화는 2008년 가장 주목할 만한 상업영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라는 수사를 사용한 것은 ‘100년의 한국영화사에서 추격 장면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준 영화다’는 단정적인 말을 삼가하기 위해 쓴 순화된 표현이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 보다는 스타의 캐릭터와 액션장면과 추격 장면의 스펙터클에 정면 승부를 던졌다. 김지운 감독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놈놈놈>은 마지막에 대평원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라고 했다. 이 영화의 등장으로 한국영화의 스펙터클의 수준은 한걸음 발전하였으며 후배 감독들은 이 작품을 뛰어넘어야하는 부담과 강박을 떠안게 되었다.
문제는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이 정도 대작의 등장이 규모의 경제에 적합하느냐는 논란을 남아있다. 이 작품의 흥행 성공으로 제작비 절감이 숙원인 충무로에 대작경쟁이 점화되지 않을까라는 행복한 우려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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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부산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