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0년 공력으로 프로듀서 역량 발휘3집 발표 동시에 온·오프라인 차트 석권

“그냥 내 이름만 써주시면 안돼요. 앞에 뭐 붙는 거 이제 싫어요.”

당당한 한 마디에 주변은 아연실색하기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효리는 이제 앞에 따로 붙은 수식어를 찾기 어려운 대상이 됐다. 화려한 무대 위의 ‘섹시 퀸’ ‘섹시 아이콘’은 식상하다.

예능 프로그램 속 ‘털털녀’ ‘꽈당 효리’로도 부족해 보인다. 핑클로 데뷔한 지 10년 만에 이효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되기 어려운 ‘대중문화계의 슈퍼 아이콘’이 돼 버렸다. 그가 대중문화의 꽃으로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될 지 본인조차 예상 못했을 정도다.

이효리가 최근 발표한 3집 <잇츠 효리시(It’s Hyorish)>는 지난 10년간 쌓인 매력이 정점에 닿은 듯, 요즘말로 ‘힙(Hip)’하다. 앨범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이효리는 제목뿐만 아니라 앨범 자체가 곧 자신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앨범 준비 과정의 90%이상을 스스로 결정했으니 ‘자식’같은 존재나 다름 없단다. 이효리는 “뮤직비디오, 녹음, 가사, 사진 각기 전문가가 있지만 그걸 하나로 조율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어요. 그게 뒤죽박죽이 되면 곤란하거든요. 갈수록 앨범에 제 의견이 많이 담기게 되네요”라고 말했다.

이효리는 수록된 13곡의 모든 가사를 직접 쓰는 욕심도 내봤다. 최종까지 살아남은 가사는 3곡이지만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발휘하며 ‘이효리=댄스가수’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피붙이’ 같은 3곡도 화제다. <이발소 집 딸><돈 크라이(Don’t Cry)><괜찮아질까요> 등은 하나같이 이효리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를 직접 쓰게 된 동기를 묻자 이효리의 설명은 명쾌했다.

“사람들이 이제 저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수줍게 ‘손잡아도 될까요’ 이런 노래를 부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마 이질감 같은 걸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이 사람들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았어요. 조금은 촌스러울 수도 있죠. 세련된 건 많이 해봤잖아요. 그런 촌스러움에 대한 향수가 자극됐으면 좋겠어요.”

이중 이효리가 가장 애착을 보이는 곡은 <이발소 집 딸>이다. 서울 사당동의 한 시장에서 이발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한켠에 담고 지은 가사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고 아버지께서 눈물이 글썽글썽 하셨어요. 아마도 절 부유하게 키우지 못해서 연예활동에 도움을 주지 못한 걸 스스로 자책하셨나 봐요. 그런데도 딸이 그 모습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니까 고마워서 울컥 하신 것 같아요.”

누가 뭐래도 이효리가 이번 앨범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성과는 자신감이다. 이효리는 발표와 동시에 온ㆍ오프라인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3집 앨범의 반응에 들뜬 모습이었다.

앨범 자체로 발표와 함께 바람을 일으켜 본 것은 처음이라며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효리는 특히 데뷔 이래 10년 동안 가장 듣고 싶었다는 “이거 MR(반주 녹음)맞아? AR(노래 포함 반주 녹음)아니야?”라는 반응이 나왔다며 반색했다.

라이브 실력을 인정해준 팬들과 관계자들의 반응이 가장 반가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3만장이 넘어선 앨범 판매고를 알기라도 하듯 2집때 10만장이 넘으면 단독 콘서트를 하겠다는 약속을 이번에는 꼭 이뤄보고 싶다는 다짐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감을 회복하며 얻은 당당함이었다.

“첫 방송 때 라이브로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걱정도 많이 됐지만 1집 때보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담담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긴장돼서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도 이번에는 100%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무대에서 만큼은 ‘내가 왕이다’ 라는 마음으로 노래해요. 사실 무대에 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이번 첫 방송 때도 드라이 리허설을 시작할 때는 무대 앞에 아무도 없었어요. 곡이 끝날 때쯤 되니 모든 가수들과 매니저, 그리고 코디 팀들이 다 보고 있었어요.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 하고 다들 서 있었죠. 전 그 때 그 긴장감이 좋아요. ‘봐주면 보여주겠다’ 그런 식이죠.”

이효리는 이제 10년차 가수다. 20대이던 이효리가 서른을 바라보게 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한결 느껴진다. 적대관계를 유지하던 언론 매체들과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왜곡할 때 가장 속상했어요”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여유와 안정이 그를 변화시킨 듯했다.

“20대는 미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신없이 움직였죠. 그 때 지금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만약 20대의 제가 지금 모습을 봤다면 만족했을 것 같아요.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으로 행복했다면 지금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걸로 행복하거든요. 예전만큼 신문 1면에 자주 나오지 않지만.(웃음) 안정적이고 행복감을 느낄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서른 살의 이효리는 이제 20대의 이효리를 꿈꾸는 수 많은 여자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주고 있다. 타이틀곡 제목을 여자에게 쓰는 슬랭으로 ‘최고야’ ‘힘내’라는 뜻을 가진 <유-고-걸(U-GO-GIRL)>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른이 되면서 영향을 받기 보다는 영향을 주는 입장이 됐어요. 10대와 20대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용기와 에너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요.”


김성한 기자 w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