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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의 '님은 먼곳에'
베트남전 배경 한국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일침
부도덕함과 가정 경기 사상에 경종…프리즈 프레임 마지막 장면에 주제·감정·시대를 함축





문학산 cinemhs@hanmail.net





참깨는 잘 여물고 잘 말리면 한번 털 때 마다 깨알이 우수수 떨어진다. 잘 익은 벼도 탈곡기에 넣으면 굵은 낱알 들이 수북하게 떨어진다. 좋은 소설은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하고 을 잘 만든 영화는 보고 나면 감정의 여운과 하고 싶은 말들이 수북하게 머릿속에 쌓인다. 이때 글쓰기는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에게 마음 속 깊이 쌓아둔 감정을 끄집어내어 연필로 꾹꾹 눌러 연서를 쓰는 심정으로 임하게 된다. 감정은 줄을 지어 등장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은 병을 거꾸로 세울 때 물들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후련하게 빠져 나온다. 이와 같은 글쓰기는 긴 목마름 끝에 생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는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들었다. 순이가 베트남 전장에서 남편 박상길의 뺨을 수차례 때리고 나서 무릎 꿇은 남편 앞에서 감정이 백지로 변해 얼음처럼 굳은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며 극장 문을 나섰다. 부산의 밤은 열대야로 들떠있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머릿속으로 새어나오는 문장들을 억누르며 연구실로 올라와 조관우가 부른 <님은 먼 곳에>를 듣는 다음 한참 후에 첫 문장을 정했다.

공자는 소(韶)라는 좋은 음악을 듣고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했다고 한다. 미적 체험은 잘 요리된 고기 맛 보다 더 강렬할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참으로 영화적으로 넘어가는구나’라는 생각과 ‘한국의 현대사가 이렇게 포획될 수도 있구나’라고 속으로 탄식했다.

베트남 전쟁은 영화적 스펙터클로 깔리고 한국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일갈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한국남성들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부도덕과 가정 소홀에 면죄부를 받아왔다. 한국여성은 그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너희가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갈 때, 너희가 힘들다고 칭얼댈 때 우리는 험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기 위해 해병대 지옥훈련보다 심한 일상과 창녀보다 더 심한 굴욕을 견디며 맷집을 길렀다’고 외친다. 이 목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현장음을 지우고 두 사람의 흐느낌과 음악만을 남겨둔 이미지로 표현한다.

무릎꿇은 남자와 서있는 여자의 프리즈 프레임으로 잡힌 이미지는 이 영화의 꼭지점이며 감정의 정점이며 대사와 행위를 거세하고 이미지로 발언한다. 상업영화가 대중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감독의 목소리를 담아낸 아슬아슬한 연출 장면이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는 주제와 감정과 시대를 모두 응축해낸다.



<님은 먼곳에>는 1970년대 한국가요계를 대표하는 김추자의 노래이며 그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 시대는 유신체제라는 군사독재와 장발과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결돌하는 저항과 억압의 시대며 자유연애와 중매결혼이 뒤섞인 혼돈기며 남자들은 월남 전쟁에 외화획득을 위해 참전해했고 여자들은 시골에서 상경하여 도시 노동자로 편입하거나 매춘부로 살아가면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폭력과 매춘으로 얼룩진 궁핍한 시대였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2008년 제작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영화 언어를 구사한 다.

순이(수애 분)는 남편이 도피성으로 입대하여 베트남에 파병되자 그를 찾아 나선다. 이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일병 구하기>보다 덜 영화적이지만 남성을 위한 여성의 희생이 만연했던 1970년대 한국사회에서 설득력 있다. 순이가 남편 박상길(엄태웅 분)을 만나기 위해 월남전에 간다는 것은 ‘어머니가 월남전에 나간 아들에 대한 염려’라는 공적인 기억과 겹치면서 감정이입시킨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남성의 첫사랑은 어머니’며 순이를 통해 모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순이는 남편을 찾기위해 정만과 위문 밴드를 급조한다. 급조된 밴드에서 순이는 리드싱어 써니로 변신한다. 써니는 욕망이 통제된 전쟁터에서 파병군들에게 어머니면서 연인이며, 그녀의 선정적인 몸은 여성을 성적인 볼거리로 전시하는 상업영화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정체성을 한 컷도 놓치지 않는다. 정만 일당이 그룹을 결성하여 미군부대 공연에서 실패하는 장면도 처음의 실패라는 서사의 공식에 가깝다. 그들이 트럭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각출하는 장면도 조금씩 푼돈을 모으다 마지막에 순이의 패물로 해결되고 트럭을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컷되는 리듬과 한국군 군용트럭을 따라가서 위문 공연하러 왔다는 억지 부리는 장면도 영화적이다.

더 영화적인 장면은 중대장의 트럭을 따라가 진지보수 공사장의 사병들에게 순이의 허벅다리를 보여줌으로써 호응을 얻어 즉설 가설무대를 꾸미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한국군의 만남과 중대장의 추격과 진지구축공사장에서 사병의 지지로 공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영화적 설득 장면은 속도감을 더해준다.

정만 일행의 성공은 중대급에서 대대급을 거쳐 연대급 공연으로 승승장구한다. 이들이 가장 정점에 오를 때 서사가 추락한다. 가장 성공적인 공연장에 적들이 공격해오며 그들은 베트콩의 지하 소굴에 감금된다.

이야기의 상승과 추락, 장애물과 장애물의 극복이 영화적 리듬으로 잘 넘어가며 결국은 주인공의 희망대로 남편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대중영화는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은 장애물을 헤치고 꼭 성취한다’는 시나리오 룰을 존중해야한다. 이 영화도 여기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합한다.

이준익 감독은 위문공연단 결성과 포로 생활과 상봉의 골격을 튼튼하게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순제작비 70억을 사용하여 수많은 전쟁 장면과 군중 장면과 행군 장면을 군더더기 없이 촬영하여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마지막 부부의 상봉 장면은 감정을 응축시켜 얼음처럼 정지시킨 프리즈 프레임으로 마침표와 방점을 동시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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