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는 인식부족·프로게이머에 대한 처우·제도 미비

한여름 바닷가 모래사장에 마련된 특설무대. 저녁시간 여름바닷가에 12만의 관객이 운집했다. 선수들의 마우스 클릭 한번에 희비가 교차한다.

e스포츠 최초의 통합리그인 ‘스카이 프로리그 2005’전기리그(1라운드) 결승전 모습이다. 2005년 6월 30일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서 SK텔레콤 T1은 정규리그 우승팀 KTF 매직엔스를 4대 1로 물리쳤다.

온라인 게임을 관전하려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12만여명의 관중들. 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광경이다. 국내 프로축구 최다관중은 2007년 4월 8일의 K리그 서울-수원전 5만 5,000여명이었다. 프로야구 최다관중은 2005년 4월 5일 잠실, 사직, 문학, 대전 4개 경기장에 모인 10만 1,000여명이었다.

하지만 e-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었다. 2004년 열린 SKY 2004경기 1라운드에서는 이미 10만여명의 관객이 운집해 한빛 스타즈의 우승을 축하한 바 있다.

이날 경기 이후에도 e-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2006년 SKY 2006 전기 결승전에는 비가 왔는데도 4만여명의 팬들이 광안리에 모였다. 2007년 신한 2007 전기 경기에는 7만여명의 관중이 광안리에 운집했다. 이달 9일에도 어김없이 경기는 벌어진다.

■ 게임족은 '히끼꼬모리'(?)



엄청난 관객수와 e-스포츠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사이에는 사실 큰 괴리가 존재한다. 일반인들은 흔히 온라인게임에 몰두한다면 ‘현피(게임을 하던 사람이 실제로 만나서 결투를 벌이는 것)’나‘히끼꼬모리(마니아의 일종으로 특정한 것에 집착해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와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e-스포츠와 온라인게임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오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재형 한국e스포츠협회 경기국장은 “e스포츠는 일반적인 게임의 의미와 달리 사행성, 폭력성, 선정성이 없는 경기다”라고 설명한다. 보는 걸 즐기는 ‘관전성’에 포인트를 두고 하나의 스포츠로 남녀노소 국경을 뛰어넘어 건전한 여가문화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e-스포츠라는 설명이다. 게임으로 통칭하기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선수들 역시 흔히 떠올리는 게임중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STX프로게임단 연습실에서 만난 박성준 선수(23)와 진영수(21) 선수는 활기찬 모습이다. 이들은 하루 10여시간 넘게 게임에 열중하지만 되도록이면 낮에 연습하고 밤에는 잠을 청한다. 박 선수는 “프로선수들은 일반적인 게이머에 대한 인식과 달리 절제된 생활을 한다”며 “다른 프로스포츠와 똑같이 열정을 갖고 뛰는 스포츠선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 정말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



오히려 선수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게임에 몰입하는 생활이 아니라 뒤따라 오지 않는 일반인들의 의식수준과 뒤쳐진 제도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중고등학생이라면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게 현실이다. 박 선수는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 연습을 해야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현실과 학교 사정의 괴리 사이에서 고교때 학업중단을 결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중고교는 프로게이머를 정식 운동선수로 인정하지 않아 수업을 빠지는 것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 선수 역시 고교 입학 후 프로게이머 리그에 나가기 위한 중간 단계인 준프로 경기를 연습하느라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이런 관행은 선수 개인 뿐 아니라 게임산업 전체의 손실이다. 공군게임단이 생기긴 했지만 그 정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들을 불량학생 취급하는 철지난 시선도 있다. 김은동 STX 프로게임단 감독은 “선수단이 연습실이나 숙소를 옮길때마다 ‘쟤들은 뭐하는 애들이지?’하는 눈총을 경험하게 되는게 예사다”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정기적인 운동연습 시간 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운동을 하는 등 컨디션을 조절한다. 고난이도의 두뇌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경기 내용 역시 일반 스포츠를 능가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박성준 STX프로게임단 선수(위), 스타크래프트 게임 화면(아래)

■ 정부의 지원과 '인정'의 문제 해결해야



선수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 일회적이고 근시안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요환 선수를 2번이나 청와대로 초청한 바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e-스포츠 육성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중국이 체육총국을 통해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종목으로 인정한 것과 대비한다.

대한체육회가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회준비를 이유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하는 현실인데다가 20대 초반의 프로게이머는 군에 갔다오면 선수로서 감각을 대부분 잃어버려 프로게이머로서의 생명을 잃는다. 공군게임단에 입대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게이머는 아직 소수다. 한국e스포츠 협회에 등록된 12개 프로게임단에는 200여명의 프로게이머가 있으며 대부분은 20대 전후반의 남자 선수다.

■ e-스포츠의 가능성



e-스포츠의 가능성을 제대로 짚어본다면 이런 정책의 재고 여지는 충분하다. 장재호 선수가 2006년에 열린 WEG(World esports Games)에서 리샤오펑 항저우 마스터스팀 선수와 경기 할 때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중국인 148만 명이 경기를 관전했다. 가수 비가 뉴욕 공연을 할 때 끌어들인 관객수가 5,000여명인데 비하면 경이로운 수치다. 장 선수는 북경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해 국위선양을 한 바 있다.

산업으로서의 전망 역시 매우 밝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e-스포츠계에서 우리나라는 거의 종주국과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프로게이머의 경기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전세계인이 다운받아 보는 게 그 예다. 이런 저력은 언제든지 IT 소프트웨어 분야의 산업경쟁력과 연결될 수 있는 자산이다.

축구를 통해 영국이 얻은 것과 같은 국제스포츠계에서의 위상과 실익 역시 세울 수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2006년부터 매년 전 세계 e-스포츠계를 이끄는 주요 인사들을 초청, 국제 e스포츠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달 9일부터 11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제3회 국제 e스포츠 심포지엄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영국을 비롯해 11개국에서 40여명의 e스포츠 관계자가 참석해 국제e-스포츠협회 창설과 국제경기 규칙 및 심판, 선수 육성 등을 논의하였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