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속 한국적 정서 닮아시원한 샤우트 창법으로 토해 내'할아버지와 수박' '장가가는 날'등 8곡 직접 창작도

1992년 3월. 대중은 민주화 항쟁이라는 80년대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막 벗어나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정치와 이념은 이제 외면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진지하고 무거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했다. 그 결과물이 신세대 문화다.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대중음악은 랩, 댄스, 테크노 같은 빠르고 경쾌한 리듬과 형식의 신세대 트렌드로 발 빠르게 변신을 시도했다. 그때 흥미로운 두 장의 대중가요 앨범이 세상에 나왔다. 순식간에 세상을 뒤집어 놓은 [서태지와 아이들] 1집과 치렁치렁한 장발로 기인의 풍모를 풍긴 록커 [강산에]의 0집이다.

새로운 랩 댄스를 표방해 대중가요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강산에의 음악은 주류에서 빗겨나 있었다. 록 보컬의 정수가 담긴 그의 샤우팅 창법은 통쾌했지만 그의 노래 속에는 어딘가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것이 전혀 새로운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하나였다면 강산에는 과거를 계승하면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촌스러움과 새로움이 뒤섞인 경계가 모호한 양식이었다.

데뷔앨범을 1집이 아닌 0집으로 정식 표기한 것도 특이했다.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잘나가던 경희대 한의예과를 중퇴하고 가수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이력 또한 그의 평범치 않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첫 앨범 0집은 총 10곡이 수록되어있다. 8곡은 강산에의 창작곡이고 ‘사랑하는 것들, ’검은비‘ 2곡은 박청귀의 곡이다. 강산에의 노래는 에너지가 넘친다. 방황과 고뇌에 침잠하기 보다는 답답한 무언가를 한 방에 날려줄 것 같은 이미지다.

그의 음악은 굳이 국악을 도입하지 않아도 평범한 우리네의 일상이 배어나오는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다.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할아버지와 수박‘이 그렇고 ’장가가는 날‘에서 들려주는 토속적인 구절에서 이는 확연하게 입증된다.

타이틀곡은 A면 두 번째 트랙인 ‘...라구요‘. 실향민 아버지의 애창곡 ‘눈물젖은 두만강’의 가사를 차용해 자신만의 멜로디로 해석해 분단과 이산의 정서를 그려냈다. ‘에럴랄라’에서는 하모니카와 연주와 더불어 “풀냄새 참 흙냄새 참 오래간만이네”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엔 자유인의 향내가 풍겨 나온다.

그는 역설적인 은유의 미학을 지향하는 뮤지션이다. 그런 면에서 B면 마지막 트랙 ‘돈’은 시사적이다. 그는 이 노래를 통해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던졌건만 당시 공윤 심의에서는 직설적으로만 가사를 해석해 오히려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그래서 가사의 상당부분을 빼버리고 발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음반에서 ‘돈’과 아주 일부분의 가사만을 드문드문 부르는 연주곡 현태로 녹음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2집(음반에는 1집으로 표기)에서는 제목을 ‘문제’로 변경해 복원했지만.

이처럼 그의 노래가 담고 있는 역설적 미학은 일부 수준 낮은 세상의 시각에 의해 오해를 받곤 했다. 그의 데뷔음반이 재킷이 다른 초반 재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상업적 이유도 있겠지만 심의문제와 맞물린 연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집에서 대통령을 조롱한 ‘태극기’도 그랬다.

이번에는 그를 대단한 애국자로 인식케 하는 역반응을 보였으니 황당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그의 현재 노래는 대상을 더욱 평범한 일상으로 삼았기에 예리했던 메시지는 확실히 각이 둔해졌다. 하지만 포크 록에서 월드뮤직, 국악 등 다양한 음악어법을 통해 연륜과 깊이를 획득해 나가고 있다.

여하튼 공익광고에 까지 사용된 ‘넌 할 수 있어’ ‘연어’ 등에서 볼 수 있듯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강한 비트와 희망적 메시지로 무장한 에너지 넘치는 남성적인 노래다. 그의 노래들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고통 받던 대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미덕을 발휘했다. 0집은 그의 탄생을 알린 시작이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