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6개월만에 8집 발표도심속 UFO모형 세우고… 게릴라 콘서트 본격활동

그는 ‘완벽주의자’다. 또한 ‘이슈메이커’이며 어떤 이들은 ‘이벤트의 귀재’라고도 한다. 본의 아니게 악마소동으로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혹자는 ‘문화대통령’으로 떠받들지만 다른 사람은 ‘기회주의자’라는 혹평을 아끼지 않는다.

서태지는 그렇게 활동 여부를 떠나 언제나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있다. 4년6개월 만에 발표한 그의 8집 앨범도 그 연상선상에 있다.

충남 보령에 UFO가 착륙한 흔적을 뜻하는 미스터리서클을 만들더니 서울 도심 한복판에 UFO불시착 모형을 세웠다. 미스터리 게임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팬들에게 힌트를 흘리며 자신의 음악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기존 앨범 홍보에서는 전무후무한 프로젝트를 꾸몄다.

서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세운 UFO모형에서 뛰쳐나와 게릴라 콘서트를 하더니 6일 MBC 컴백특집에서는 타이틀 곡 <모아이>의 뮤직비디오에서 그간의 메시지를 이미지로 한데 모아 보여주며 본격적인 활동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냉철하고 치밀한 서태지의 이면에는 인간 정현철이 있다. 거리를 활보한 것이 16년 동안 한번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정현철과 서태지는 언뜻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간극이 크다.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여기는 비범한 뮤지션 서태지, 그리고 소박하고 평범한 인간 정현철을 3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났다.

다음은 ‘뮤지션 서태지’에 대한 일문일답.

▲팬과 평단의 반응은 만족스러운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음악도 좋아해주고 팬들을 지금까지 두 번 직접 만났는데 너무나 행복하다.

▲실험성 보다 대중성은 높아졌다는 평론가들의 평이 있다.

=실험성이 줄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엔 새로운 걸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어느때 보다 많았다. 그래서 실패가 많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늘 하고 싶은 음악은 달라진다. 이번엔 내가 은퇴 후 여행하면서 대자연을 접하며 받았던 전율 그리고 미스터리한 것들에 대해 표현해 보고 싶었다. 곡을 쓰고 보니 멜로디가 화려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멜로디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홍보 방식도 조금은 대중친화적으로 흐를 수 있던 것 같다.

▲‘네이처 파운드’로 명명한 장르를 설명해달라. =직역을 하면 자연을 두드린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자연적인, 미스터리한 것들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자연적인 소리를 음악 전반에 깔고자 했고 전체의 멜로디가 아주 잘게 부서져 있다. 네이처란 자연이란 소재, 파운드는 장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UFO도 띄우고 미스터리 서클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은 사실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다. 미스터리 서클을 만들기 위해 사전 조사도 많았고, 밭을 사서 사전에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했다. 풀들을 밟아보기도 하고, 별별 측량기구도 다 동원했다. 여러번 실패 후 성공한 것이다. 몰래 던진 게임에 팬들이 반응하고, 또 맞춰 주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이제 36세다. 무대에서 나이를 실감하나.

=사실 나도 4년 동안 음악 작업만 했다.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실제 무대가 연습 보다 힘들지 않다. 팬들이 있으면 평소 2배의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점점 실전을 많이 하면 마지막 무대에선 제일 좋은 체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팬들도 나이가 든 것이 느껴진다. 공연장에 탁아소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나이는 먹었지만 반응은 똑같은 것 같다. 참 신기하고 아직도 저렇게 행복해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질 때는 감동을 받았다.

▲녹음 작업을 모두 국내에서 했다.

=지금껏 외국의 엔지니어와 작업하면서 많이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해외 녹음의 문제점은 시간에 쫓겨 한 곡을 하루 이틀에 작업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서 시간을 갖고 많이 하자는 생각으로 국내에서 했다. 꼼꼼하게 시간을 두고 하니 사운드도 만족스럽다.

▲음반 시장이 많이 어려워졌다.

=그런 현실이 영향을 안 준다면 거짓말이다. 실제로 수익이 적어지면 투자를 하는데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팬들이 많고 공연에 찾아와 주는 팬들이 많아 다행이다. 그리고 지금껏 번 돈은 모두 팬들에게 좋은 음악, 멋진 감동으로 되돌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내가 음악으로 베풀 때라고 생각한다.

▲요즘 가요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을 다운로드 받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대한 가치들이 많이 떨어져 안타깝다. 그래서 음반으로 먼저 공개해 오랜만에 음반을 사서 정성스럽게 뜯는 기쁨을 주고 싶었다. 음악의 가치가 좀 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게릴라 콘서트에서 시국이 흉흉하다는 얘기가 화제다.

=<시대유감>을 만들 1995년 당시에도 시대에 대한 유감들을 표명했다. 음반 작업을 하는 동안 시국이 흉흉하지 않았나. 우리 팬들도 촛불시위에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안다. 잠시나마 이 노래를 부르면서 쌓였던 것 ‘시대에 대한 유감’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불렀다.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나

=그런 생각 참 많이 한다. 언제가 될지는 정말 모르겠다. 4집을 내고 진짜 음악을 그만 두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더 좋은 음악을 못 만들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지금도 음반을 낼 때 다음 앨범에 대한 용기는 있는데 다다음 음반에 대한 용기는 없다. 그래서 꼭 계약을 한 장 씩만 한다. 음악감이나 필이란 게 어느 순간 떨어져 버릴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지 않나. 죽을 때 까지 새로운 음악을 하다가 죽고 싶다. 만약 감이 떨어져도 음악 말곤 잘 하는 게 없이는 그땐 다시 은퇴한다는 얘기는 못할 것 같고, 배낭 메고 세계여행 다니면서 언젠가 다시 음악을 해볼 것 같다.

▲가수 서태지의 꿈이 있다면.

=사실 큰 꿈을 꾸고 살진 않는다. 즐겁게, 계속 좋은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 평범한 나의 삶과 음악을 하는 삶이 잘 조절돼 병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죽을 때까지 즐겁게 팬들과 같이 살고 싶다.

다음은 ‘인간 정현철’에 대한 일문일답.

▲음악 작업 빼고 4년간 근황을 알고 싶다.

=제일 기억나는 일은 RC(Radio Controlled)비행기 날린 것이다. 지난 활동 끝나고 3개월 동안 미친 듯이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때부터 못한 걸 이번에 한을 풀자고 작정하고 잠도 안자고 조립해서 날리러 다녔는데 그 때 충전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이게 이렇게 재밌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나중에 나이들고 늙어서도 걱정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와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곡 구상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2년 동안 마무리 작업을 했다. 녹음작업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오래 녹음한 만큼 후회 없는 음악이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철저하게 사생활에 감춰졌다. 인터넷에도 사진 한장이 안 올라온다. 비결이 뭔가.

=(웃음) 한국에선 밖엔 아예 안 나가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 얼굴이 알려진 후부터 쑥스럽고 쳐다보는게 싫고 민망해서 그렇게 됐다. 또 집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니까 괜찮다. 예전에 시나위 때도 6개월 동안 바깥 출입하지 않고 음악에만 몰두했다. 외국에 나가선 커피숍도 가고 편의점도 가면서 ‘완전 평민’처럼 지낸다. 해외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국내 생활을 버틸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 못 지내 안타까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니 그런 마음이 크다. 내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하신다. 함께 살면서 방에서 뒹굴면 좋은 텐데. 부모님이랑 지내고 싶을 때도 외국 모시고가 함께 지낸다. 시간을 더 많이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비주의 덕분에 루머들도 많다. 제일 재미있던 것은 뭔가.

=옛날엔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없지 않나. 은퇴 후 임신설이 가장 황당했고, 사탄설이 퍼졌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 멤버들도 많이 놀랐다.

▲이상형과 결혼 계획이 있다면.

=계속 바뀌는데 기본적인 이상형은 참한 여자가 좋다. 아니다 착한 여자가 좋다. 꿈도 많고 나랑 비슷한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결혼 생각은 줄어든다. 옛날엔 가정 꾸리는게 목표였다. 지금도 결혼하는게 싫은 것은 아니고 결혼한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자친구 없어도 외롭진 않다. 하고 싶단 생각이 들면 꼭 하는 성격이라 결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일진 모르지만. 부모님은 장난삼아 ‘언제 손자보냐’는 얘기하시는데 내가 워낙 말을 안 들으니 포기하신 것 같다.(웃음)

▲재테크도 신경을 쓰나.

=난 사실 재테크란 걸 아예 모른다. 아시다시피 강남에 건물 지었다. 거기서 몇 개층은 사무실로 쓰고, 몇 개층은 임대를 줬다. 그게 재테크의 전부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관념은 없어서 건물 시가도 기사보고 알았다. 난 서태지와 아이들 때부터 아끼고 살았다.

▲인간 정현철의 꿈은 뭔가.

=사실 큰 꿈을 꾸고 살진 않는다. 서태지와 정현철의 꿈을 나눠 꾸진 않는다. 정현철의 꿈이라고 하면 RC 갖고 노는 것 같은 평범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었으면 한다. 그런 평범한 삶과 음악을 하는 삶이 잘 조절돼 병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죽을 때까지 즐겁게 팬들과 같이 살고 싶다.


김성한 기자 w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