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없던 시대 장밋빛 청사진… 70년대 국민가요로 인기폭발'한국의 엘비스'로 당대 젊은 여성들 몸살 나게 해

60-70년대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지상최대의 가치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정부주도하에 진행된 60년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이어 70년대의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길을 넓혔던 새마을운동은 그 결과물이다.

불도저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들은 국가재건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대중의 관심은 점차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와 같은 다양한 서구지향적인 패션을 중심으로 남성용 화장품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대중문화는 사회적 변화를 증명했다.

1972년 11월. 빛나는 명곡이 등장했다. 68년 월남전 파병으로 한동안 공백기를 가진 남진의 <님과 함께>다. 당시 대중은 슬픈 가락보다는 자신들의 흥을 북돋아 줄 경쾌한 리듬의 노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쾌한 댄스리듬의 이 곡은 시대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핑퐁외교’로 대변되는 국제적 해빙무드가 절정에 달했던 1972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와 희망의 물결로 넘쳐났다.

오랜 기간 단절되었던 남북 간의 교류가 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 등으로 이어지며 남북통일은 꿈이 아닌 당장 실현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곧바로 이어진 유신발표로 온 나라를 후끈 달군 기대와 흥분에 찬물이 뿌려졌듯 지금껏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린 남진은 당대 젊은 여성들을 몸살 나게 했던 잘 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경쾌한 율동으로 ‘오빠 부대의 원조’로 평가받는 슈퍼스타다.

1964년 고교졸업반 시절에 발표한 <서울의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그는 1967년 <가슴 아프게>와 1968년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70년대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 수많은 여가수, 배우들과의 스캔들 양산은 대중적 관심의 중심에 선 최고가수 남진에겐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주류 무대를 평정했던 명성에 걸맞게 그에겐 밤하늘의 별처럼 깨알처럼 무수한 히트곡들이 있다. 그 중 70년대의 일인독주태세를 확고하게 구축시킨 <님과 함께>는 국민가요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곡이다.

애창하는 중년세대들이 지금껏 즐비한 것을 보면 작품성을 떠나 이 노래가 담고 있는 강력했던 시대적 희망의 감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곡은 비전 없던 시대에 품었던 온 국민의 장밋빛 청사진을 대변했던 노래다.

<님과 함께>가 최초로 수록된 음반은 독집이 아닌 더블재킷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앞면은 하와이 해변에서 시원한 서핑을 타는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젊고 건장한 남진의 사진이고 뒷면 재킷은 생소한 여가수 임정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수록곡은 총 10곡.

<님과 함께>외 <맨주먹 인생>등 남진의 노래는 총 4곡이고 나머지 6곡은 김부자, 김상진, 임정, 민주의 노래로 채워진 전형적인 옴니버스 앨범이다.

앨범자체로는 평가대상이 될 수 없지만 단 한 곡 <님과 함께>은 뜨거운 감자였다. 발매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이듬해에 싱글재킷 재반 발매는 물론 남진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고영남 감독의 영화 ‘언제나 님과 함께’로 이어졌다. 최근 2006년에는 그룹 배치기에 의해 안진우감독의 영화 ‘잘살아보세’의 OST로 리메이크 되어졌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살고 싶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가 제시한 삶의 풍경은 확실히 지금도 현실화시키고 싶은 근사한 이상향이다. 그 정서는 70년대가 시작되며 국가적 사업으로 전국방방곡곡에 휘몰아쳤던 ’새마을 운동‘의 모토와 일맥상통한다.

대중은 이 노래를 통해 마치 자신을 노래가사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이처럼 한 곡의 유행가는 때때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마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시대적 정서를 담고 유행되는 대중가요는 어느 시대건 대중의 정서와 맞물러 생물 같이 꿈틀거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국민가요 <님과 함께>의 최대 미덕은 여전히 삶이 버거운 서민들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노래가사에 있다. 소비되고 사라질 유행가에 불과한 <님과 함께>가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된 것은 회화적으로 표현된 누구나 이루고 싶은 희망적 삶의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에 열광한 대중의 진짜 속마음은 다를 수 도 있다.

어쩌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려진 장밋빛 미래와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대한 불만의 대리대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규성 대중문화 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