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화낙락(花花樂樂)' 展쪼우춘야·이구치·이진이 작품 통해 문화적 특질과 의미 감상

흔히 한자문화권, 혹은 유교문화권으로 통칭되는 한·중·일 삼국은 지리적으로 뿐 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진 숙명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들 삼국은 상호 교류하며 작용하는 가운데 일정한 문화적 틀을 공유하며 각자 나름대로의 특질을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문화의 전파, 혹은 전개 양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원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하여진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서구세력의 동진에 따른 사회적 변화는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견지되었던 전통적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리게 되었다. 특히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시작된 이른바 근대화, 현대화 과정은 삼국의 역사발전에 근본적인 변혁을 몰고 왔으며, 오늘날과 같은 개방과 세계화된 새로운 시공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삼국의 상황은 이전의 일방적인 영향과 수용의 단계를 지나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양상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특히 정보가 공유되고 물리적인 시공의 개념조차 희박해진 오늘의 상황은 전에 없던 새로운 생존의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번에 베이징 공화랑이 한ㆍ중ㆍ일 세 작가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화화낙락전>(花花樂樂展)은 바로 그러한 문화적, 역사적 시공과 특질을 공유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라는 새로운 시공을 여하히 수용하고, 새로운 상황 하에서 본연의 특질을 반영하며 생존하고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ㆍ중ㆍ일 삼국은 근대 이후 서로 다른 상황과 조건하에서 지난한 발전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비록 동일한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문화벨트를 형성하고 있지만, 보다 내밀하게 살펴본다면 한ㆍ중ㆍ일 삼국은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질을 확보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 중 중국은 치열한 내전을 통한 공산혁명 성공 이후 이른바 ‘죽의 장막’으로 표현되는 폐쇄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공산혁명과 문화대혁명 같은 동탕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간 축적되어 온 전통의 역사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예술의 순수성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세계에 얼굴을 드러낸 중국미술은 그간 사회주의 미술의 경직된 표정에서 벗어나 질곡의 세월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현대미술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할 것이다. 비약적인 중국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단연 서구사회의 주목을 받은 중국미술은 분명 오늘의 세계 미술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화화낙락전의 쪼우춘야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대변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마치 전통회화에서의 운필을 연상시키는 호방하고 활달한 필치에 더해지는 복사꽃의 흐드러진 이미지는 일정한 운필의 속도감과 어우러져 독특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일단의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과거 자신들이 체험하고 감내하였던 체제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저우춘야의 작업 역시 일정한 선입견을 갖게 한다.

쪼우춘야, 이구치

붉고 흐드러진 봄날의 안온함은 사회주의가 약속했던 이상향의 상징이거나, 혹은 봄날 한껏 흐드러지다 이내 허망하게 스러질 구호 같은 것으로 읽혀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러한 내용들을 상징하거나 은유하는 것인지, 혹은 단순한 문학적 서정성을 전제로 한 것인지는 세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지만 구상을 전제로 한 독특한 이미지의 구축은 충분히 이러한 독화(讀畵)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의 문화적 기질은 한국이나 중국 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것이어서 가장 먼저 서구와의 접촉을 통한 근대화를 실천한 경우이다. 서구를 통해 새로운 일본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던 일본미술은 탈 아시아적 가치를 통해 현대미술로의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모색과 추구는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성숙되고 정착되어진 문화적 특질을 인식케 하고 그 본연의 가치를 확인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히로유키 이구찌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일본화의 정치한 화면을 연상시키는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로 명명되어진 작가의 연작들은 몽환적인 푸른빛과 특유의 다듬어진 화면으로 은은하고 섬세한 서정과 시적 감수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현상계의 현란한 변화를 푸른빛으로 개괄하여 표현하는 그의 작업들은 동양회화 특유의 평면적인 표현과 일본화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질을 적절히 조화시킨 일본 현대미술의 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작가 이진이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분방한 여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형상에 집착하거나 작위적인 표현을 배제한 채 재료의 작용과 현상의 변화 자체를 화면에 수렴해 내는 그의 작업은 정리되고 다듬어진 조형의 전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행위를 통해 파생되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들을 용인하고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무작위적인 비정형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여겨진다. 그것은 이른바 우리문화의 특질로 거론되는 무작위성, 자연성 등과 같은 내용들과 흡사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틀과 꼴을 고집하기 보다는 오히려 함축과 절제, 그리고 재료와 표현에 대한 너그럽고 여유로운 용인과 수용은 결국 이미지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파생되는 또 다른 시각적, 감성적 심미에 주목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미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욱 활발하고 급속하게 이루어 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은 대부분 서구 현대미술의 조형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마련이다. 오늘의 동북아는 지구상 가장 생동적인 지역 중 하나라 할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에 따른 위상 변화는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이어져 세계 미술시장을 견인하는 한 축으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봉건시대의 문화의 흐름이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라는 일방적인 경로를 지닌 것이었다라고 한다면, 근대 이후의 상황은 일방적인 서구지향이었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이정의 설정이 절실한 때가 아닐 수 없다.

동일한 문화권을 바탕으로 독특한 민족적 특질을 지니고 있는 한ㆍ중ㆍ일 삼국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파악하여야 할 것은 단순히 작가 개개인의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이들이 작품이 발현하고 있는 개별적인 문화 특질의 보편화와 그 결과라 할 것이다. <화화낙락전>(花花樂樂展)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주목하고 지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서울 인사 아트센터 8월27일~9월18일 전시. 문의 02)735-9938, 736-1020


김상철 미술평론가 ksx@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