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후문에 설치된 재일 설치미술가 최재은(55) 씨의 작품 <시간의 방향>. 94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지름 3m가 넘는 원형 받침 위에 13m 높이의 원뿔체가 날렵하게 서 있는데 꼭대기는 바늘 끝 같은 직경 2mm로 뾰족하다. 재료는 표면이 벨벳처럼 부드러운 알루미늄이며 색깔은 프랑스 누보 레알리즘 화가인 이브 클랭의 블루 가운데 형광효과가 가미된 ‘IK블루’를 사용하였다.

<시간의 방향>은 작가가 일관되게 천착해 온 ‘시간과 존재(생명성)’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오래도록 축적된 시간은 인간존재를 농축적으로 더 잘 말해주는 재료가 된다. 시간이 담긴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다”고 말한다.

최재은은 20대 초반이던 1976년 의상 디자인을 배우러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예정에 없이 일본 전통 꽃꽂이 공예 이케바나를 배우면서 ‘공간과의 만남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를 만드는’ 테크닉을 익혔다.

그가 수학한 소게츠 회관은 일본에서 첨단 실험 예술을 선보이던 곳으로 당대를 호령한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의 퍼포먼스,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데이비드 내쉬의 작업을 접할 수 있었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은 1990년 장충동 경동교회에 45일간 설치된 으로 3,000개의 대나무를 교회 건물 머리에 꽂은 형국이다. 이 작품을 전후로 88년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 <과거 - 미래>, 94년 삼성의료원 <시간의 방향>, 98년 합천 해인사의 성철 스님 사리탑 <선의 공간> 같은 굵직한 공공 조형물을 작업했다.

사람들은 <시간의 방향>이란 작품에서 눈물을 떠올리곤 한다. 모양새가 마치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 듯 슬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이 장례식장 앞에 설치될 것을 고려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