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110x210cm, 나무판에 유채, 1951, 파리 피카소미술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벌어지던 지난 8월 8일,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루지아의 수도 근교 바지아니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양국간 전쟁이 터진 것이다. 세계 정상들과 함께 개막식장에 참석해 미소 짓는 푸틴 대통령을 보면서 정치인들이 지닌 양면적 속성을 읽을 수 있었다. 평화의 제전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통치자의 모습이 TV 매체를 통해 20억의 시청자들에게 방송된 것이다.

전쟁은 인류의 발자취와 걸음을 함께 해 왔으나 전쟁의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가령 중세에는 이교도들을 제거하고 신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계몽주의시대의 전쟁화는 말 그대로 계몽의 빛을 비추기 위한 국가의 이념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술이 특정 종교나 집단의 구속(지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시작한 근대주의에서부터 전쟁화는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규정한 것처럼 야만적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영토를 병합하고 식민지를 확대하기 위한 또 다른 야만화의 과정이었다. 이번 그루지아 전쟁의 경우도 구 소련의 꿈을 미처 저버리지 못하는 러시아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변하지 않은 사실은 전쟁은 무참한 폭력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본질은 폭력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폭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한국전쟁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떠오르는 것이 피카소가 그린 <한국의 학살>이라는 작품이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전쟁 중인 1951년에 제작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알려지는 데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전쟁화 차원을 넘어선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다. 스페인 태생의 화가였던 피카소는 극동의 나라 한국을 방문한 적도 없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바도 없었다. 다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프랑스 공산당원으로서 ‘세계평화운동’ 등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 대한 국내외 비평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무장된 폭력집단이 미군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의 난폭성과 잔인함을 나타낸 작품이며 비약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카소 자신은 “미군이나 어떤 다른 나라 군대의 헬멧이나 유니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언급하였고 “나는 모든 인류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의 학살>이 특정 집단과 권력이 내세운 명분아래 인간이 동류의 인간을 잔인하게 파괴하는 광적 행위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피카소는 이미 1937년에 파시스트의 잔혹상을 고발한 <게르니카>를 통해 현대적 폭력 그림의 전형을 세웠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전쟁 중에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작품을 둘러싼 해석의 다의성을 실감케 한다.


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 교수 objet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