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007인데 몸은 전원일기?"전형적인 첩보 영화 속에 '부조화가 주는 희극성' 대중적 지지

욕심있는 감독은 모든 장르를 섭렵하며 재능있는 감독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에 천착한다.

김지운은 모든 장르를 실험하고 뛰어난 흥행 성적을 올린 전자의 성공 사례다. 양윤호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 했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노력에 비해 성적이 초라했다. 홍상수는 지식인의 공격과 형식의 실험이라는 집요한 반복으로 자기 복제라는 혐의와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성을 잘 쌓아갔다.

물론 상업적 성적표는 부진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류승완도 홍상수에 가깝다. 그는 단편영화 감독 시절부터 형사와 조직폭력배가 싸우는 <현대인>과 공고생과 인문계고등학생이 동네 당구장에서 패싸움을 벌리는 <패싸움>에서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편향성을 보여 왔다.

그 후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작성해 왔지만 불변의 공통점은 폭력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다. 결국 대중영화의 양대 산맥인 섹스와 폭력 중에서 류승완은 폭력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류승완이 가장 만들고 싶었을 영화이며 동시에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장면으로 채워졌다. 이 영화는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와 197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일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제목은 기존의 액션영화와 자신의 단편영화를 참조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970년대 한국 영화 제목은 명령형 종결어미를 선호했다. 예를 들어 <검은 장갑을 껴라>, <인간 사표를 내라>, <작크를 채워라>, <고향을 묻지마라>,<쇠사슬을 끊어라> 등이 있다. 1970년대 액션영화의 간판 스타인 전설적인 배우 박노식이 연출한 영화 제목이 바로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이다.

이 영화의 배경도 1940년대 이며 류승완의 영화 배경도 1940년 일제 강점기로 유사하다. 제목은 '열차가 급행열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제목을 다찌마와리 다음에 붙인 것은 1970년대식 후시녹음의 기름진 대사와 남자 배우의 과장된 표정연기와 여자 배우의 고개를 휙 돌리고 토라져서 뛰어가는 행위 등이 1970년대 한국영화 스타일의 패러디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정직함이 돋보인다.

제목의 <다찌마와리>는 1970년대 액션 영화를 다찌마와리 영화로 통칭한 충무로 은어이기도 하지만 개념의 기원을 거슬러 가면 일본의 시대극에서 유래한 것이다. 김려실에 의하면 초기 일본영화의 시대극은 사무라이들의 검술 액션을 펼칠 때 칼날이 부딪칠 때 소리나는 의성어인 찬찬과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흩뿌려질 때 나는 바라바라를 혼합 ‘찬바라 영화’로 폄하되어 지칭되었다고 한다.

검술액션이 많은 찬바라 영화에서 등장하는 격투 장면을 ‘다찌마와 리’라고 불렀다. 이 다찌마와리가 한국 액션영화를 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급기야는 1970년대를 회상하고 숭배하는 한 감독에 의해 다시 제목으로 부활하였다.

한국 액션 영화의 계보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전 지식이다. 왜냐하면 류승완은 1970년대 액션영화에 대한 기억과 만주를 배경으로 한 만주활극에 대한 향수를 연출의 급수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과거 영화에 대한 숭배의 태도는 있지만 한국 액션영화의 적자로서 계보를 잇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한국 액션영화는 영화의 서사를 제공하는 원텍스트와 유희적 카니발을 가능케 한 패러디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여기서 한국 액션영화의 리바이벌이나 재생산이라는 위험성을 벗어나서 과거의 영화로 인해 현재 만들어낸 <다찌마와리>가 풍부한 해석의 여지와 곳곳에 지뢰처럼 매복된 유머의 뇌관을 만들어낸다.

다찌마와리(임원희 분)는 특수요원 명단이 담긴 불상을 찾기 위해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그리고 그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는 전형적인 첩보영화의 서사다. 감독의 변에서 ‘생각은 007인데 몸은 전원일기’같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불균형이 주는 희극성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가 가는 곳은 대부분 자막으로는 미국과 스위스 등 세계 각국의 지역을 표기하지만 정작 한국 공간을 활용한 것 같다. 등장하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와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발음만 각국의 억양으로 흉내내는 변용된 조어이다. 이 조어는 자막이 한글로 처리되면서 독특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자막과 외국어라는 엄숙한 분리가 아닌 한국어와 외국어의 무질서한 섞임과 자막의 임의적인 번역이 주는 혼란과 무질서는 웃음을 유발한다.

불균형은 2008년 한국 영화를 제작하면서 배우의 대사를 후시녹음처럼 표정과 동떨어지게 발음하게 하며 1970년대 한국 배우의 연기 스타일을 과장하여 흉내내기와 지나친 과장이 만들어내는 희극적인 장치가 모든 장면에 편재되어 액션영화와 코미디가 넘나들게 한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온 관객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영화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코미디라고 생각하니까 재미있었다”라며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품평회를 하고 있었다. 류승완은 자신이 선호하는 폭력의 소재와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스타일을 패러디하여 독창적인 2008년 산 액션 영화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1970년대 액션영화는 현재의 관객에게 코미디로 수용되며 1940년대 일제 강점기는 역사적 맥락이 지워진 결투의 스펙터클로 자리한다. 역사는 장르거나 수난기거나 무비판적으로 상업적 선택이라는 그물망에 포획되는 충무로 현실이 섬뜩하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문학산 cinemh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