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계'로 시작 사실주의 실험극·뮤지컬로 발전 대표적 대중 예술로 자리 매김'소극장 네트워크페스티벌' 등 기념 공연·출판·세미나 준비도

올해 11월이면 한국 신연극 100년이 된다. 이인직의 ‘은세계’에서 시작된 한국의 신연극은 사실주의와 실험극, 뮤지컬 등으로 발전하며 대표적인 대중예술로 자리 잡았다. 김우진, 유치진, 이해랑 등 예술계 거목과 백성희, 박정자, 오영수 등 걸출한 배우 등이 배출되기도 했다. 신연극 100주년을 맞아 한국연극사를 정리한다. 아울러 연극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기념행사도 소개한다.

■ 은세계로 시작된 신연극


한국 근대극은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에서 공연된 이인직의 ‘은세계’를 기준으로 한다. 이 공연은 마당에서 행해지던 전통극과 달리 옥내극장에서, 동시대 삶을 화술과 연기로 표현했기 때문에 구극과 구별해 ‘신연극’이란 별칭을 얻었다. ‘은세계’는 강릉 농민 최병도가 강원관찰사에게 억울하게 죽은 실화를 극으로 옮긴 작품이다. 명창 강용환, 김창환 등이 연출과 연기를 맡아 창극 형태로 공연됐다.

이후 신파극과 영화를 결합한 연쇄극이 인기를 모은다. ‘이수일과 심순애’ ‘육혈포강도’ 등이 1910년대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1900년대와 1910년대 ‘신연극’ ‘신극’ ‘신파극’ 등 혼용돼 불리던 이 새로운 형태의 극은 1920년대 들어오면서 장르개념으로 분화됐다.

20년대 김우진과 박승희가 주도한 극예술협회, 토월회 등 학생 신극단체들이 일본식 멜로인 신파극에 대항해 서구 근대극을 가져와 근대극 정립에 노력했다.

특히 김우진은 ‘이영녀’ ‘난파’ 등 희곡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극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기 활동한 연극인 홍해성은 일본 스키지 소극장에서 활동하다 1931년 극예술연구회가 창설되자 이곳에서 활동했다. 극예술연구회는 ‘춘향전’‘촌선생’등 창작극을 비롯해 ‘인형의 집’‘벚꽃동산’ 등 서양근대극을 공연하며 사실주의 장을 열었다.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김성희 교수는 한국연극사에 대해 “한국연극은 처음엔 전통극과 단절되어 번역극과 창작극이 공연됐고, 이 세 갈래의 연극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70년대 초에 이르면 전통극과 융합하면서 현대극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 연극의 뿌리가 된 리얼리즘 경향은 1930년대 태동됐다.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활동한 유치진은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등 40여 편의 리얼리즘극을 발표하며 한국 근대극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1940년대 전반기 전개된 친일 어용극 ‘국민연극’은 일제 정책에 노골적으로 복무하는 극들로 국내 연극사의 굴절사례로 기록돼있다.

전쟁 후 한국현대극은 또 다른 변화를 맞는다. 분단으로 반공이념이 국시가 되고 전쟁으로 사회 혼돈을 겪으며 가정문제가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대두했다.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미국연극과 뮤지컬 영향이 커진다. 1950년대에 국립극단, 신협, 제작극회 등 사실주의 연극이 발전하는 가운데 서사극적 기법이 절충되면서 다양한 현대 극작술이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1960년대에는 비사실주의, 반사실주의 운동을 토대로 부조리극과 서양의 실험극 등 다양한 장르가 쏟아져 나왔다. 한편 1966년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선보이며 창작뮤지컬 실험이 시작됐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위),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아래)

■ 뮤지컬, 해외공연 등 장르 다양화


70년대에는 마당극, 민중극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서구 번역 연극에서 벗어나 전통극적 표현기법을 수용해 재창조하는 실험이 계속됐다. 70년대 초 대학가를 중심으로 김지하의 ‘진오귀’‘소리굿 아구’‘함평 고구마’ 등 대표적인 민중연극이 발전했다. 80년대에는 민주화 경향을 타고 사회풍자극이 유행했다.

역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늘근도둑이야기’‘칠수와 만수’등이 유행했다. 당시 대학시절을 보낸 영화감독 장진은 “89년 ‘늘근도둑이야기’ 초연이 올라왔을 때는 정말 ‘억!’소리가 났다.

늙은 두 할아버지 도둑이 코미디연기를 하면서 군사정권이 어떤 식으로 나왔고, 우리가 어떻게 허무맹랑하게 당해왔는지를 말한다. 정말 속 시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작품은 그 시대였기 때문에 빛난 거라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80년대는 또한 여성주의 연극이 유행했던 시기다. 극단 산울림의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셜리발렌타인’‘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대표적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소외의식, 모녀애 등을 그린 작품들은 극단 산울림의 주요레퍼토리로 아직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이후로는 사회문제보다는 여성과 대중문화 등 일상적인 문제들이 주제로 부각된다. 특히 대중문화와 해외 뮤지컬 공연으로 뮤지컬이 대중적인 연극 장르로 떠올랐다.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지하철 1호선’‘블루 사이공’ 등은 모두 90년대 탄생된 뮤지컬이다.

2000년대는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순수연극과 대중연극의 경계가 모호해진 점도 최근 연극의 특징이다. 동국대 예술대학 김방옥 학장(한국연극평론가협회장)은 “2000년대 이후 한국연극은 하나의 장르로 정리하기 힘들다. 뮤지컬이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한쪽에서는 소극장을 중심으로 해서 자기 나름의 작가의식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순수연극이 있다. 그러나 스케일은 영세해졌다. 축제가 많아지면서 해외 연극이 많아지면서 관객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갔다. 라이선스 해외공연, 뮤지컬, 순수연극의 삼각형 구도로 보인다”고 정리했다.

■ 100주년 기념행사 어떤 게 있나


한국연극협회(이사장 박계배, 이하 연극협회)는 한국연극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사업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기념사업은 공연사업과 출판사업, 기타사업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공연사업 부문은 지난 3월 27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극단 미추의 ‘남사당의 하늘’을 개막공연과 6월 ‘젊은 연극인들의 고전 넘나들기’ 사업으로 김우진의 ‘산돼지’, 박승희의 ‘고향’이 공연된 바 있다.

하반기 대표적인 100주년 기념사업은 ‘소극장 네트워크 페스티벌’과 ‘대한민국 연극페스티벌’이다. 전국 소극장 네트워크 페스티벌은 오는 9월부터 10월까지 열린다.

지역 연극인들의 참여로 꾸며지는 전국 소극장 페스티벌은 전국 18개 소극장 및 18개 극단이 참여한다. 12월 9일부터 31일까지는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대한민국 연극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축제에서 전국 15개 시도 극단의 무대를 볼 수 있다. 100주년기념으로 공모한 창작희곡 당선작 ‘인간의 시간’(배봉기 작) 공연은 12월 23일부터 2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한국연극 100년사를 담은 책도 출판된다. 이 책은 근․현대 공연사와 인물사, 지역연극사, 영문판 등 총 5권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기타 사업으로 ‘한국연극 100년을 돌아보고, 200년을 내다보며’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11월 15일 개최된다. 또 ‘한국연극 100인&100선’, ‘연극인 핸드프린팅’이 11월 15일 정동 극장에서, 대한민국연극대상이 12월 29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