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교육으로 인재양성·사회적 지원 제도 변혁 절실

굴욕적인 한일합방과 동시에 시작된 한국의 근대연극이 출범한지 벌써 100년이 되었다. 연극의 유구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100년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연극은 유치진, 차범석 같은 리얼리즘 연극의 대가를 낳기도 했고, 오영진 같은 걸출한 희극작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특히 60년대 이후 여석기가 이끄는 극작웍샵을 통해 박조열, 노경식, 윤대성, 윤조병, 오태석, 이강백 등 우수한 극작가들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연극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텍스트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이후 연극의 미학적 권력이 극작에서 연출로 이동하면서 임영웅, 유덕형, 안민수, 허규, 김정옥, 오태석, 손진책, 윤호진, 기국서 등이 현대성과 한국성이 강한 연극을 연출하면서 연출가 시대를 헤쳐나간다.

어두운 군부독재 시절에 연극은 지하로 숨거나 외진 마당으로 나아가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절의 대안언론으로서 기능한다. 민주화이후 극의 형식은 희극이 비극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희극은 다시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게 채색되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게 된다.

연극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민주화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극작과 연출을 겸한 예술가들, 이를테면, 오태석, 이윤택, 김광림, 이상우, 박근형 같은 멀티플레어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연극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사회와 문화의 변화, 또는 발전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연극은 세상’이라는 기본명제를 충실히 증명해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연극 100년’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 짝이 없다. 한국연극의 현주소가 민망할 만큼 빈궁하기 때문이다. 지원금, 극장 수, 극장설비, 기획능력 등 연극하는 환경은 15년 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는데 연극과 연극인의 사회적 의식과 예술적 기량은 심히 저하되었다.

예술에 대한 치열함도 갈급함도, 인생에 대한 사유도 비판도, 시대에 대한 통찰이나 애정도 느낄 수 없는 공연들이 부조리할 만큼 많은 극장공간들을 메우고 있다. 한국연극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의 대학로에만 극장이 이미 150개를 넘었다.

연극을 가르치는 대학의 수효도 거의 80에 이르러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연극인력을 무책임하게 쏟아내고 있다. 뿐인가. 연극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무엇보다 지원액수가 크게 늘었다.

게다가 해외의 우수한 공연들이 거의 일상적으로 초청되면서 연극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의 안목을 상당히 높였다. 당연히 이제는 국제경쟁력이 없으면 국내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양적 풍요와 질적 빈곤, 그것이 비단 연극에 국한된 현상일까 마는, 그래도 그렇지, 오늘의 한국연극은 고인물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치열하게 한국연극을 선도해왔던 중견연극인들의 극심한 부진이 주원인이다.

다른 나라의 연극인들에 비해서 한국의 연극인들이 앓는 조로증이 너무 심하다. 예술적 치열성을 이미 상실했으면서도, 그 뻔한 사실을 본인들은 보지 못하거나 안 보고 있다.

‘물보라’리허설 무대에 올라 연기를 지도 중인 오태석 씨. 바로 옆은 연극 동지 전무송. /배우한 기자(위)
올해 에딘버러 출품작-몽연(아래)
'물보라'리허설 무대에 올라 연기를 지도 중인 오태석 씨. 바로 옆은 연극 동지 전무송. /배우한 기자(위)
올해 에딘버러 출품작-몽연(아래)

절망을 넘어 자포자기에 빠진 이 시대의 존재형식에 대한 고뇌가 보이지 않는 글쓰기, 혼종과 복합을 시대의 미학으로 삼고 있는 연극을 하면서 다양한 훈련을 쌓는 기술적인 배우도, 시대를 고민하는 영혼을 소유한 배우도 없는 공허한 무대, 깊은 사유와 독창적 미학이 없어 예술적 권위를 갖지 못하는 연출. 이런 가운데 지금 100세의 한국연극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현상을 찾자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몸, 대중성, 일상성이 새로운 가치로 부각되면서 ‘새로움’과 ‘젊음’에 유독히 열광하고 편집하는 시대정신에 힘입어 양정웅, 배삼식, 구태환, 김한길, 장유정 같은 젊은 연극예술가들이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연극적 논리와 미학으로 개성 있는 연극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0년을 맞이한 한국연극이 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남으려면 몇 가지 핵심적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예술은 천재를 필요로 하는데 한국의 연극교육은 대중교육을 지향한다.

연극관련학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과 한국연극의 사회적 크기가 급격히 위축된 것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점점 아마츄어리즘이 확산되어가는 한국연극의 오늘은 한국대학의 연극교육에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의 혁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개방을 통해서라도 우수한 교수인력이 우수한 인재들을 훈련시키는 엘리트교육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래서 의식과 방법론을 갖춘 예술가를 배출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연극예술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이 시대에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시대의 연극정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끊임없이 그 해답을 내용과 형식면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소명이고 그 소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곳이 학교다.

인문학이 위기에 빠진 이 시대에 연극교육만큼은 연극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 예술 형식임을 명심해서 인문학을 소생시키는 것도 연극부흥의 확실한 길이다.

교육의 개혁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연극예술에 대한 지원의 성격과 형식을 바뀌어야 한다. 예술을 진흥시키는 것이 지원의 목적이라면 지금처럼 극단의 공연제작비지원을 위주로 한 일회성 소비적 방식은 크게 축소하고, 예술가를 육성하거나 재교육하고 예술향수층을 넓히는 데 투자하는 지속가능한 생산적 제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젊은 천재들에 의해 새로운 시대적 미학의 연극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특히 서구의 연극을 선봉에서 이끌고 있는 동유럽의 젊은 천재연출가들은 절대 자기를 반복하고 모방하지 않는다. 새 작품을 창조할 대마다 더욱 새롭고, 더욱 다르고, 더욱 진실하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한다.

완성을 향해 한없이 목말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유가 깊다. 한국연극100년을 맞아 한국의 연극 예술가들은 목적 없이 바삐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냉정하게 자신의 예술철학을 재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IATC (국제연극평론가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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