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서울 '피에르 가니에르' 오픈 앞두고 지배인 등 3명 현지 연수

프랑스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 받는 미슐랭 3스타(star)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에서 책임 조리장 겸 경영자로 일하는 피에르 가니에르가 지난 해 국내에서 만찬 디너를 가졌다. 롯데호텔서울이 새로이 시작한 '세계 유명 조리장 초청 행사'차 방한한 그가 마련한 저녁 한끼 식사 가격은 무려 50만원. 하지만 120명 한정 인원으로 열린 '갈라 디너'에서 남은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이 때 '임시로나마' 한국을 찾았던 그의 레스토랑이 마침내 서울에도 문을 연다. 바로 10월 오픈을 앞둔 '롯데호텔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다. 이 레스토랑의 준비를 위해 베테랑 경력의 지배인과 셰프 등 3명이 현지 연수를 다녀왔다. 공승식 지배인과 봉준호 정상섭 셰프. 그리고 3개월 여의 '적잖은' 시간을 보낸 이들은 지금 '할 말'이 매우 많다.

"왜 그렇게 살이 빠졌어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다녀온 거 맞나요?"

"머리는 또 왜 그렇게 짧게 잘랐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지…"

파리 현지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3개월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 지금까지 한결같이 받는 질문이다. 어림짐작컨대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왔으면 '당연히 잘 먹을 기회가 많고 또 살이라도 쪄 올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 모습은 정반대였기 때문.

"왜 세계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는지, 도대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은 무엇이 다른지를 톡톡히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이들이 지난 3개월 현지에서 겪은 경험담은 '고생'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막상 가서 1주일 일 해 보니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밤에 집에 돌아 오면 새벽 1시, 그리고 새벽 6시면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생활을 매일 했으니까요." 이들은 처음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이유가 뭘까?"하고 고민했다고 털어 놓는다.

그들이 경험한 피에르 가니에르는 2006 영국 요리전문지 '레스토랑'이 선정한 세계 최고 레스토랑 3위에 오른 명성을 자랑한다. '요리계의 피카소' '식탁의 시인'으로도 불리는 가니에르는 한 마디로 '프랑스 요리의 지존'급. 때문에 한 끼 식사에만 수십 만원이 넘는 가격대임에도 그의 레스토랑은 항상 전세계에서 찾아 온 고객들로 넘쳐 난다. 예약만 3개월 전에는 신청해야 겨우 한 자리를 확보할 정도.

이들 3명도 처음에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명성과 레스토랑이 어떻게 운영되고, 또 음식 맛은 어떤지 궁금증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파리로 향할 때만 해도 마음 속에 가득찬 것은 '기대와 호기심' 수준. 하지만 이는 곧 '고생(?) 속에 자리한 고심과 정성, 그리고 열정' 속에 모두 파묻혀버렸다.

"어떻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 어떤 레스토랑이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 마디로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은 거지요." 그래서 이들이 내린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비결은 '몰두'로 요약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음식과 요리, 맛에 '미쳐야 한다'는 것.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출근부터 시작됩니다. 유리를 닦고 문틈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하고 물걸레질 등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완벽히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점검을 마친 후 11시 이후 시작되는 점심 시간, 손님 서빙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3~4시가 넘습니다. 잠깐 휴식 시간이 주어지곤 5시부터는 곧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가죠. 저녁 식사를 다 마치는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서 입니다."

홀 서빙을 담당하는 공승식 지배인은 '한국에서의 지배인'이라는 호칭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잡일부터 시작해 '많이 배우고 가져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현지 말단 직원들과 똑같이 움직였다.

프랑스 파리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에서 가니에르 셰프와 주방에서 한 컷(롯데호텔 제공

"저만 고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저는 현지 직원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에요. 오히려 현지 직원들이 제가 고생(?)한 것 보다 그 이상으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보다 정확합니다."

많고 많은 레스토랑을 다녀 보는 이들에게도 '홀 서빙 직원이 웬 고생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에서는 짐작이 간다.

이 레스토랑 식사는 대부분 코스로 제공된다. 적게는 3~4가지부터 저녁 만찬 경우는 10~15가지에도 이른다. 그런데 코스 마다 음식이 한 가지씩도 아니고 몇 가지가 함께 오르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릇도 다 따로따로. 심지어는 디저트 한 단계에 10가지가 되는 음식이 제공되기도 한다.

그리고 음식 메뉴 마다 매니저의 친절한 설명이 잇따른다. 평균 3~4분. 음식을 들고 나르고 설명하는 데 걸리는 모든 시간만 계산해 봐도 결코 짧지 않다. 그래서 점심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3시간. "점심 때 2시간 전에 가시는 손님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녁 코스는 점심 시간의 2배는 걸린다고 보면 된다.

"직원들이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도 불평하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순간순간 배우면서 스스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공 지배인은 "현지 직원들이 근무중 휴대폰 통화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근무 시간 내내 휴대폰을 가져 오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최고로 가기 위해서는 느슨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정열을 쏟아 붓고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방에서의 음식과 맛은 물론, 서비스, 브랜드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모든 직원들이 한결같았습니다." 일단의 대화, "너 왜 여기서 일하니?" "천직이에요!"

현지 직원들이 근무 태도나 문화도 여기와는 크게 달랐다. 점심 시간 1시간은 웬 말, 직원들은 1분도 아까워 10~20분 만에 서둘러 먹고는 일터로 향했다. '커피 한잔, 담배 한 대'로 상징되는 휴식 시간도 남의 말. "직원들이 돌아 가면서 코피를 흘리는 거예요.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는 진정시키고 돌아와선 다시 일! 우리 같으면 '하루 쉬라'고 말하는 풍토지만 거기에서는 '도리어 자기 체력 관리를 잘 못한 것'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메뉴와 음식은 맛은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여느 레스토랑과 크게 차별화된다. 기본은 프랑스 전통에 있지만 다양한 디자인과 아트컬러로 대변되는 그의 창작성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인 것.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식자재를 사용하거나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을 그는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분자 요리로 대변되는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무궁무진한 '맛의 조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탁월한 그의 능력이다.

주방에서 그의 메뉴와 음식을 체험한 봉준호 정상섭 두 셰프의 얘기 또한 공 지배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미친 놈'들 같았어요. 제정신이 아니고는 그렇게 일할 수 없겠다 싶었거든요." '우리한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러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잠시 뿐. 두 셰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들처럼 머리와 모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서 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이 20대 중반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얕잡아 볼 뻔했는데 큰 사고(?)가 날 뻔 했지요." 대부분 15살이면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이들의 평균 조리 경력은 10년. 그런데 노동법에 따라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이 아니고 그 2배는 일한다. 그렇게 근무 시간을 따지면 실제는 20년 경력. 국내 조리사들이 20대 중반에 시작해 40대에 셰프가 되지만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것이다. "그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생전에 처음 봤습니다."

봉 셰프는 지난 해 잠깐 피에르 가니에르를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 아침 7시부터 준비했는데 밥도 안 먹고 일하는 거예요. 어떻게 요리 준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밥 먹으러 갈 수 있냐는 것이 그가 들은 대답이다. "그들은 완전한 프로입니다. 그러니 세계 최고가 됐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빵, 케이크 등 디저트류를 전문으로 만드는 파티쉐 정상섭 셰프는 고생이 조금 더했다. 고객들의 식사 코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디저트까지 준비해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퇴근 시간이 더 늦었던 것. 그 역시 현지 직원들의 집중력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선배들이 가르쳐 준 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좀 더 쉽게, 편하게 해 보기도 하는데 이들은 그런 요령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가니에르 셰프가 하고자 하는대로, 그가 제시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그건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이 아닌 것이죠. 선배가 시킨 것은 곧 가니에르가 시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너 셰프인 가니에르를 옆에서 지켜 볼 기회를 가진 정 셰프는 그가 가진 카리스마에 흠뻑 반했다. "일할 때는 무섭게 합니다. 강력하면서도 절대 양보는 없습니다. 그의 직원이라면 그가 생각하는, 그가 원하는, 그가 제시한 음식을 만들어 줘야만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석에서 그는 온화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유로 2008 축구 경기 내기를 하는데 제가 10달러 지폐가 없는 것을 보곤 대신 내줬어요." 옆에서 공지배인이 거든다.

해외 출장이 많아 레스토랑에서 머무는 시간이 적은 가니에르 셰프가 절대적으로 지키는 철칙이 하나 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음식이 손님에게 제공되는 순간 만큼은 항상 와서 지켜 봅니다. 적어도 파리에 있는 동안 만에는요." 그의 색깔이 묻어나는 음식이 제대로 전달되는 과정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의 요리 철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 디저트 아닌가 싶습니다. 그 역시 신경을 매우 많이 쓰면서 손님들 또한 그의 디저트 메뉴를 보곤 놀라기 일쑤이니까요." 그의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감탄사는 그래서 '맛 있다'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맛을 냈지?'이다.

전세계를 돌아 다니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 자신도 직원들에게 여러 외국 책자를 보여주면서 설명하거나 얘기해 주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음식은 항상 창작되면서도 새로운 시도가 벌어진다. "맛은 물론 그의 조리 솜씨는 시각적으로도 놀라움을 던져 줍니다." 그의 레스토랑에서 메뉴는 거의 3개월 마다 바뀔 정도.

세계 각지에서 오는 그의 고객들은 식사 후 주방을 찾는 것을 주저 않는다. 직접 주방에 들어 와 조리사들과 인사하고 어떤 곳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확인하는 과정도 갖는 것. 그렇다고 주방이 넓고 현대적이지만은 않다.

그의 레스토랑 또한 규모나 시설이 크거나 결코 화려하지 않다. 오래된 건물에 놓여진 테이블은 14개 뿐. 하지만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홀 직원만 16명이나 된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요. 가니에르만의 창작성과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성공의 요소는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이들은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의 한국 상륙은 '한국 음식 문화의 혁명'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가진 음식의 철학과 색깔, 그리고 그가 보여준 열정과 노력이 모두 한국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레스토랑 하나, 브랜드 이름 하나가 소개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가 오는 것이지요." 이들은 "피에르 가니에를 통해 한국 사람들에 의한, 한국 레스토랑이 세계적인 레스토랑 반열에 오르는 그 날까지 열정과 정열을 바치겠다"고 입을 모았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