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의 거인이 악수하다대중음악의 전설 '롤링 스톤즈'에 경의와 찬사 필름에 담아

거장은 음악과 불멸성에 집요한 관심을 갖는다. 우디 알렌은 재즈를 영화에 조미료로 사용했으며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음악으로 자신의 영화 주제를 밑줄 긋게 하였다.

홍콩의 왕가위는 이미지에 음악을 덧칠하여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를 완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셀롤로이드에 이미지를 새겨 불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으며 동시에 음악에 영화만큼 매혹된 우리시대 거장이다.

마틴 스콜세즈는 이미 세계영화사에 자신의 작품을 몇 작품 등재시킨 영화 작가다.

그는 영화를 통해 사회와 대화하고 소통한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행보를 해왔다. 배트남 전에 대한 상처와 우울을 <택시드라이브>로 드러내며 남자의 성적 불안감은 <분노의 주먹>을 통해 극단적으로 밀고 갔다. 스콜세지의 지지자인 로저 애버트는 “<분노의 주먹>은 스콜세지를 치료한 작품이자 스콜세지를 부활시킨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스콜세지는 영화와 삶을 동행했으며 음악과 생을 실과 바늘처럼 살아온 보컬 그룹 롤링 스톤즈는 그와 심정적 형제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예술가 중에는 예술과 생활을 한 몸으로 살아오거나 삶보다 예술에 더 방점을 찍으며 살아온 소수의 작가가 늘 존재해왔다.

인간은 단지 옷 잘입은 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글쓰기에 전념한 플로베르는 <보봐리 부인>을 남겼다. 그는 셔머셋 모옴에 의하면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그에게는 인생의 목적이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10대에 만났던 유부녀 엘리자 쉴레젱제르를 평생 사랑했다.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커서 ‘살아가면서 관계를 가진 모든 여자들은 몽매에도 잊지 못할 여인을 대신한 “침대용 매트리스”에 불과했다’고 극언할 정도로 냉담하게 살아왔다. 그에게 예술과 사랑은 늘 삶보다 앞자리에 서있는 거인이었던 것이다. 창조적 작업이 삶보다 우선하거나 생활과 연동될 때 예술은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게 된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는 1962년 결성된 영국 국적의 록 밴드이다. 리드 보컬인 믹재거와 리드 키타인 키스 리차드, 드럼의 찰리 와츠, 기타리스트 로니우드는 1976년 롤링 스톤즈를 재편성한 다음 지금까지 30년 이상 공연을 해왔다.

그들은 1964년 데뷔부터 시작하면 44년, 현 구성원이 활동하던 시기로 치면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서양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집필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역사를 넘어 하나의 신화로 진입하고 있다. 보컬 믹 재거는 “우리에게 음악은 늘 현재 진행형”이라고 했지만 미국의 대중음악도 그들과 함께 늘 현재 진행형으로 생명력을 유지해갔다.

필자는 규모의 경제와 수치의 수사학을 선호하지 않지만 잠시 롤링 스톤즈의 위상을 설명하기 위해 몇 마디 통계를 언급해야할 것 같다. 그들은 데뷔 이래 수익은 거의 9천억 원에 달하며 이 영화가 필름에 담아낸 ‘비거 뱅 공연(Bigger Bang Tour)'은 단독공연 최다 수익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현재 수많은 20대 스타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는 콘서트 시장에서도 공연료 수입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60대 실버 보컬그룹이며 리더인 믹재거가 한국나이로 예순 여섯이라는 고령의 한계를 무시하고 연주만 하는 현역이 아니라 시장에서 관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 인기보컬이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 작가 마틴 스콜세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스콜세지는 이미 음악 영화인 빔 밴더스의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을 제작하여 음악 영화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뉴욕 영화의 자존심으로 살아온 스콜세즈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롤링 스톤즈의 공연 현장을 수많은 카메라로 누비는 것은 롤링 스톤즈라는 록밴드, 아니 그들의 음악이 갖는 미국사회에서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죽어서 전설이 된 음악가와 작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살아서 신화가 되거나 생전에 신화로 살아가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소수에게만 허용되어 왔다. 그 소수에 의해 역사는 지평이 넓어지고 동시대 청중과 관객은 밀도 있는 예술의 공기를 호흡하게 된다.

요절 작가는 사후 숭배자를 배출한다. 하지만 장수 작가가 생전에 항구적 지지자를 유지하기는 야구장에서 관중석으로 날아오는 홈런 볼을 손으로 잡는 일 보다 드물고 어렵다.

비틀즈과 롤링 스톤즈는 락의 황금기를 견인하는 쌍두 마차였다. 비틀즈가 그룹이 해체되고 사후에 노래로 신화에 등극했다면 롤링 스톤즈는 살아서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이미 전설이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은 롤링 스톤즈에게 그다지 화려한 찬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샤인 어 라이트>의 공연 장면을 지켜본 관객에게 설득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세계 영화계에서 거장의 칭호를 받는 스콜세지 있지만 기꺼이 노구를 이끌고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촬영했던 것은 음악의 불멸성에 대한 개인의 환호와 살아서 전설이 된 락 그룹에 대한 영화적 숭배다. 영화의 거장이 대중음악의 전설에게 바치는 경의와 찬사는 라이브 공연을 16개라는 복수의 카메라로 포착하려는 시도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공연의 분위기는 필름을 통해 포획되며 공연장의 노래는 음악의 믹싱을 통해 더 생생하게 귀에 들릴 수 있다는 영화적 자긍심을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대중음악과 대중영화의 거인이 악수하는 우리시대의 대중문화의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롤링 스톤즈가 미국 대중음악의 대부라면 마틴 스콜세지도 미국영화계의 원로라는 사실을 변죽 울린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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