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궁남지 등 화려함 뒤에 가려진 낙화암·황산벌의 아픔

부여라는 나라가 있었다. 우리역사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오래 전에 세워진 이 나라는 고구려에 통합되어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이름은 고구려 지배층 일부가 한강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세워진 왕국 백제의 마지막 수도에서 다시 나타났고 백제시대로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렇듯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부여’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는 충남 부여는 완성된 백제 문화의 흔적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지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는 왕궁터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좁은 땅에 모여 있다. 하지만 화려한 백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낙화암에서 뛰어 내린 백제여인들이나 황산벌에서 스러져간 백제 남정네들의 아픈 역사 이야기도 그대로 전해 내려온다. 백제의 마지막 왕조가 겪었던 치욕의 역사마저 남아있는 부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부소산에 올라 백마강을 바라보며 백제의 한(恨)을 발견해 낸다.

부여 여행은 보통 부소산에서 시작한다. 부여의 진산(鎭山)인 부소산은 백제의 마지막 왕조가 살았던 왕궁과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곳. 그리고 부소산을 둘러싸고 있는 백제의 도성(都城) 부소산성은 평소에는 궁성의 정원 형태로 사용되다가 전쟁이나 환란이 닥쳤을 때 방어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부소산성 탐방은 산성 남쪽문인 사비문에서 시작해 삼층사와 영일루를 거쳐 부소산 정상에 있는 사자루까지 간 다음 낙화암을 거쳐 고란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고란초로 유명한 고란사 아래에는 백마강을 오가는 황포돗배가 떠나는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백제 멸망의 전설이 얽힌 바위 조룡대와 궁녀들의 투신 현장 낙화암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황포돗배는 청룡사와 대제각이 있는 부산(浮山)을 보고 백제대교에서 배를 돌려 백제시대부터 이용되던 큰 나루터 구드래로 가는 노선과 구드래로 바로 가는 단축 노선으로 운행된다. 물론 배 삯도 다르다.

부여 시내의 중심에는 정림사 절터가 있다. 부여 흥망을 가장 중심에 지켜 본 정림사터에 남아 있는 것은 오층석탑. 좁고 앝은 단층기단과 배흘림 기법의 기둥 표현으로 멀리서 보면 석탑보다는 목탑에 가까운 느낌이다.

백제는 ‘석탑의 나라’로도 유명했다.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던 시기, 사비성의 모습을 중국의 사서 가운데 하나인 주서(周書)에서는 백제를 “절과 탑이 매우 많다(寺塔甚多)”라고 기록할 정도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 석탑 가운데 조형미가 뛰어난 탑으로 지금까지도 제 자리에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어느 고도(古都)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물의 대부분은 박물관에 모여 있다. 백제의 왕도 부여의 자존심도 역시 국립부여박물관에 담겨 있다.

부여 근방 백제유적지에서 발굴된 1만여 점이 넘는 유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이 향로는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제작기법에서 백제 미술의 깊이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머리에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는 금동관세음보살입상도 놓치지 말아야 할 귀중한 작품이다.

부여 읍내 남쪽에 가면 궁남지라는 연못이 있다. 백제 무왕이 만든 이 연못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연못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백제의 서동(나중에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연못은 연꽃 천국으로 소문나 있다. 여름이면 수 만 송이의 연꽃이 피어나고 연못가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아름다운 이곳은 부여 사람들이 아끼는 소중한 휴식처다.

1. 고란초로 유명한 고란사
2. 백마강 위의 황토배
3.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4. 부여 도성 부소산성입구

■ 역사와 문화체험의 감동이 있는 백제문화제

10월 첫 주가 되면 부여에서는 백제문화제가 열린다.

지난해부터 공주시와 함께 여는 백제문화제는 올해로 54회 째. 개막식은 10월 3일 오후 6시에 부여 구드래에서, 폐막식은 10월 12일 오후 6시에 공주 연문광장에서 각각 열린다. 700년 대백제의 꿈 ‘교류왕국 대백제’를 재현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이번 축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백마강에 설치되는 대규모 부교(浮橋).

부여읍 구교리 구드래선착장과 규암면 신리 왕흥사지 터를 잇는 이 부교는 총연장 250m, 폭 2.5m 규모로 부교의 중심부에는 관람객이 강물에 발을 담그고 부소산 및 낙화암 등 주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휴게시설이 갖춰지고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제공할 경관조경이 설치된다. 백마강 부교는 1921년 처음 설치됐으나 1968년 11월 백제대교가 개통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이번에 백제문화제를 앞두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 정보상 약력

1960년생. 자동차전문지 카라이프 기자를 거쳐 여행과 자동차 전문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지낸 후 현재는 협회 감사로 있다. 여행전문포털 와우트래블(www.wawtravel.com), 자동차전문 웹매거진 와우(www.waw.co.kr)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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