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사진전원형경기장 안의 숙명적 삶과 연계, 자신의 운명 껴안아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섬광처럼 짧기도 하지만 영원의 무게를 지니기도 한다.피사체를 투시하는 ‘눈(心意)’에 따름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내 가나포럼 스페이스에서 23일부터 열리고 있는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의 사진전에는 켜켜히 쌓인 시간의 궤적이 진하게 묻어난다. 경남 진주의 싸움소 ‘한명이’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다름아닌 윤현수 회장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한명이’를 원형경기장 안의 숙명적인 삶과 연계해 자신의 삶으로 비추어 본다.

지난 2월 첫 번째 사진 에세이집 ‘Andante Sostenuto(느리게 더 느리게 유지하며)’를 발표, 금융인으로 느끼는 ‘삶의 속도’에 대한 단상을 그려낸 바 있는 윤 회장은 두 번째 사진 에세이 ‘한명이’를 통해 삶을 관조하면서 동시에 직접 부딪는 격렬함을 내보인다.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제어하고 때로는 한발짝 물러나 풀어주는 여유가 은은히 배어난다.

‘Andante Sostenuto’가 서사적 소설이라면 ‘한명이’는 단편 서정시에 비유할만하다. 이번 사진에서 ‘사람’ 냄새가 더 나는 것은 그런 이유일께다. 1년 넘게 바쁜 일정에도 진주까지 한명이를 찾아 새벽부터 밤까지 함께 하고 대화하는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성실한 시간들은 오롯이 사진에 담겨 있다.

구경꾼으로 가득한 원형경기장, 바닥을 파고들어 상대 소의 뿌리를 공격하는 흙과 뒤엉킨 눈빛, 뿔 사이로 흐르는 피, 그리고 한없이 순한 눈망울과 눈물…. 찰나의 시간들과 한명이의 숨소리, 근육의 떨림, 감정의 기복까지 잡아낸 사진을 보노라면 한명이와 윤 회장이 일체화됐음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온다. “나는 한명이다. 한명이는 싸움소다”라는 그의 독백을 사진들은 빈틈없이 보여준다.

또 하나 사진을 음악에 빗댄 것은 윤 회장 만의 표현법이자 사진(작가)을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통로다. 윤 회장은 첫 직장인 산업은행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면 LP판부터 샀을 정도로 클래식 애호가이다.

첫 번째 사진집 제목으로 ‘안단테 소스테누토’란 음악용어를 차용한 것이나 사진집의 흐름을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960 제 2악장을 연주하는 느낌으로 가져간 것이 그러하다. <한명이>에서는 소싸움에 집중할 때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 제3악장으로 본다. 거칠고 격렬한, 비극의 절정은 싸움소 한명이의 운명이자 인간(작가)이 겪는 삶의 풍랑이기도 하다.

한명이가 숙명 같은 소싸움을 받아들이듯 작가는 ‘비창’의 끝에서 삶이 주는 깨닮음이 있다고 보고 인생과 적극적으로 부딪는다. “부딪치고 또 부딪쳐라.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면.” 윤현수 회장에게 사진, 음악은 인생 자체인 셈이다.

윤 회장은 ‘한명이’ 작업을 하면서 ‘아버지와 나’를 형상화했음을 밝혔다. 다음에는 ‘어머니’를 표현해보겠다고 하는데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한명이’ 사진전은 이달 30일까지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