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다' '우린 액션 배우다'등 신선함 다양성으로 관객 갈증 풀어줘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 그의 앞에 다가와 노래를 듣는 한 여자. 두 사람은 함께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다 그렇게 헤어진다.

지난해 9월 개봉했던 아일랜드 음악영화 '원스(Once)'의 줄거리다. 우리 돈으로 고작 1억 4,000만 원의 제작비를 들인 저예산영화 '원스'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이야기로 국내에서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초대박’을 냈다. 기존의 저예산 예술영화들의 흥행 수치를 고려할 때 <원스>의 국내 수입사는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셈이다. 영화 OST도 국내에서 4만 2,000장을 팔며 부가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 명확한 컨셉트와 양질의 콘텐츠, 성공의 비결

'원스'의 성공 비결은 작지만 ‘좋은’ 음악영화였다는 데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심지어 주인공들이 연애도 하지 않는(?) 이 영화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만으로 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거머쥐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예산영화라도 분명한 컨셉트를 가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있다.

지난 8월 개봉한 이스라엘영화 '누들' 역시 한 달 남짓 만에 4만 관객을 돌파하며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원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예산영화에서 1만 명의 관객은 곧 주류 상업영화의 1백만 명과 같다는 것을 감안하면 4만이라는 수치 역시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관객이 ‘낯선 이스라엘영화’라는 점이 아닌 ‘가족영화’라는 점에 관심을 가진 결과이다.

'누들'의 홍보를 맡은 프리비전의 고영삼 씨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저예산영화의 특성이 영화를 더욱 탄탄하고 알차게 만들어준다고 분석한다. “'누들'은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이미 해외에서 인정받았던 작품이고, 국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정서와 긴장이 유지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관객들의 취향 역시, 한국영화나 할리우드영화 위주로 편식해왔기 때문에 새롭고 다양한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한 마디로 양질의 콘텐츠와 영화의 다양함에 관객의 갈증이 만나 '누들'과 같은 ‘낯선’ 제3국의 영화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일본영화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아기자기한 면이 발휘된 '텐텐'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진 배우 오다기리 죠가 주연을 맡아 개봉 전부터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홍보사인 스폰지는 오다기리 죠의 팬층 외에도 드라마 '시효경찰',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등 미키 사토시 감독의 팬을 겨냥해 홍보에 주력했다.

이와 함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여정을 옮긴 산책 지도를 만들어 관객에게 배포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일본영화 특유의 서정성과 유머, 그리고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텐텐'은 개봉 3주 만에 1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호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3- 작은 영화의 성공시대를 연 '영화는 영화다'
4- 제3세계 영화의 핸대캡을 극복한 '누들'
5- 일본영화 고유의 특성을 잘 반영한 '텐텐'

■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아우르는 작은 영화들의 성공

지난달 11일에는 ‘1만 관객 돌파기념 축하파티’가 열려 영화인들이 한데 모였다. 천만도 백만도 아닌 ‘1만’에 축하파티까지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로 1만을 넘긴 전례는 두 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운 기록이다.

'송환' '우리 학교', '후회하지 않아'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 독립영화로서 1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정병길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 최고의 액션 장면을 위해 몸을 던지는 액션 스쿨 동기생들의 혹독한 액션 훈련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촬영 중 실제로 부상을 당할 정도의 리얼한 액션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비록 스타 배우도 없고 제작비도 겨우 4,500만 원(!)밖에 안 들었지만 따로 대역을 쓰지 않은 사실적인 액션과 연기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성공은 일반관객의 ‘독립영화’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비록 독립영화의 저변과 기대관객층은 여전히 미약하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패기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진부한 주류영화의 트렌드와 만나며 영화팬의 눈을 이끈다.

액션과 유머가 결합된 '우린 액션배우다'는 스턴트맨의 고된 삶을 결코 비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낙천적으로 묘사해 관객의 동감을 얻는데 성공한다. 힘든 여정이지만 '인간극장'식의 동정 대신, 희망과 웃음과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관객을 미소짓게 한다.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우린 액션배우다'가 주목받고 성공하는 이유다.

이제까지 저예산영화는 주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가리켰지만 이제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시도가 늘고 있다. 우선 디지털 작업 환경의 보편화로 제작비를 아끼고 인원수도 줄일 수 있는 고화질(HD) 영화 제작이 늘어났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저예산영화를 방송에서 상영하는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익 창출의 활로를 찾겠다는 시도도 한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는 반드시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몸집을 불린 영화로 수익을 내겠다는 기존의 태도에서 변화된 모습이다.

지난달 9월 11일 개봉한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소지섭과 강지환 등 톱스타가 출연한 ‘주류영화’지만, 10억 원 미만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은 영화다.

순제작비는 6억 원 정도지만 2주 만에 벌써 백만 관객을 넘기고 10배 이상의 수익을 남기며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 대신 각본과 제작을 맡은 김기덕 감독이 더 부각되는 바람에 개봉 전 흥행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각색을 통해 액션과 웃음에 치중하면서 대중의 호감을 산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는 영화다'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제까지 저예산 상업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적은 '달콤, 살벌한 연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제작비 9억 원으로 무려 24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해 저예산영화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었다. 하지만 그 하나의 사례가 특별했던 만큼 '영화는 영화다'의 성공을 통해 이런 사례가 보편화된다면 작은 영화의 제작이 하나의 틈새 시장으로 정착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멋진 하루'의 전도연과 하정우는 제작비 감축을 위해 스스로 개런티를 낮춰 제작사의 부담을 덜어줬다. 절감된 '멋진 하루'의 제작비는 19억 원. 또 최민식도 제작비 10억 원의 저예산영화 '히말라야-바람이 머무는 곳(가제)'에 참여하며 스크린에 복귀할 것으로 알려져 작은 영화의 트렌드는 당분간 계속될 추세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 원인을 높은 제작비로 보고 저예산영화, 즉 작은 영화로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제작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도 보다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를 제외하고 일정 수준의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한국영화의 현재에서 잇따른 작은 영화들의 성공은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의 새로운 대안을 말해주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