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돈으로 직업과 신앙 상반된 주제 다뤄

요즈음처럼 언론 매체가 돈 이야기로 채워진 적도 드물 것 같다. 일간지는 온통 금융시장, 달러환율, 경상수지, 증권 등등 돈 말로 도배되어 있고, 라디오를 틀어도 들려오는 소리는 코스피 지수가 어떻고, 키코 피해가 저렇다는 등, 저마다 돈 거래를 분석하느라 야단이다. 한마디로 아메리카에서 아시아의 지역사회에 이르기 까지 온 세계는 돈의 전쟁에 돌입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네 일상과 비일상 모두가 돈과 연결 되지 않은 일이 없게 되었다.

미술동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의 경매와 아트페어 매출액이 3,000억원대로 추산된다는 보도,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그린 '행복한 눈물'의 추정가격이 200억대에 육박했으며, 데미안 허스트의 박제된 소나 해골 작품이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 되었고, 네덜란드 출신 반 고흐의 작품 하나가 800억을 오래전에 넘어 1,200억원에 육박했다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박수근의 '빨래터'도 45억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으며, 잘 나가던 블루칩 작가들의 위기론이 등장하고, 억억하는 소리가 차창의 바람과 뒤섞여 귓가를 스친다. 이런 추세에서 정치인들이라고 가만 있을리 없다. 정부가 미술품 거래에 양도소득세를 매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요지는 2010년부터 4,000만원 이상의 개인 소유 미술품을 팔 때 생기는 차익에 대해 20%의 양도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정책안에 대해 화랑협회, 미술협회, 평론가협회, 민족미술인협회, 전통문화보존회 등의 미술단체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고 돈으로 환산된 그림의 가치는 곧바로 미술시장의 자본과 투자 그리고 세금으로 이슈화 되면서 점차 예술 본연의 색채가 퇴색되어 간다.

이제 예술이 무엇이며 예술작품이 왜 만들어지며 예술가는 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가를 성찰하는 일이 대학에서나 하는 일이 되어간다. 학생들조차도 강의실 밖에서는 미술시장으로 통하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아직도 미학적으로 설익은 작품의 마케팅을 위한 전략에 신경을 곧추세운다. 학교 교정과 주변의 대안공간에서도 재학생들을 위한 미술시장이 심심치 않게 열린다.

돈의 위력에 대한 성찰 역시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돈을 만들거나 거두거나 장사하는 사람 즉 세리나 대금업자나 은행가를 주제로 삼은 적지 않은 미술품들이 이를 증거한다.

위에 제시한 그림은 북유럽의 화가 쿠엔틴 마시스(Quentin Massys, 1464-1530))가 그린 <대금업자와 그의 부인>이란 제목의 유화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이던 어느 네덜란드 상인의 일상을 그린 것으로 돈에 대한 의미를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탁자 앞에서 금화의 무게 측정에 열중인 남편과 그 옆에 앉아 돈을 바라보는 부인을 주제로 삼은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등장인물의 교감 없는 상황에 미루어 부부의 사랑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는 부정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대금업도 하느님이 주신 직업의 하나로 신성한 것임을 나타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마시스는 돈을 주제로 직업과 신앙이라는 두개의 상반되는 주제로 화면을 구성했다.

즉 남편은 저울을 들고 동전의 무게를 측량하는 세속적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옆에 앉은 부인은 성모자상이 그려진 기도서를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위치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며 적어도 탐욕의 눈빛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시선은 돈이라는 하나의 사물에 모아져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결국 돈의 종교적 의미를 나타내려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 곳곳에는 종교적 암시가 숨겨져 있다. 가령 두 인물의 앞에 놓인 볼록 거울에는 십자가 형태의 창문이 비치고 그 배경 하늘에는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볼록 거울안의 풍경은 크기는 작지만 이들 부부를 둘러싼 환경 즉 신앙심을 크게 나타내는 요소들이다.

더 따지고 보면 금융활동에 관한 문서기록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의 경우 돈은 종교나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금융거래의 도덕성이 중시될 수밖에 없었고 금융거래를 관장했던 관리들은 종교의 엄격한 율법에 대한 지식을 기준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주화의 무게와 치수를 측정하고 위조품을 검사하는 일 역시 이들의 몫이었다. 가톨릭 국가의 경우 대금업자 또는 은행가로 가장 명성을 날렸던 집단으로서는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태리 르네상스의 주체이자 문예부흥의 후원자로서 또한 교황을 다수 배출한 가문으로서 메디치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화가 마시스의 그림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앞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에 없이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그림을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들 시선의 타락에 있다. 그리고 타락에는 물신주의에 빠진 언론 매체의 극성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 김영호 교수

중앙대와 동대학원 졸업.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 박사(미술사학), 현대미술학회 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ACA) 회원, 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김영호 objet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