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정희경 사장- 내가 읽고 싶은 인문학 서적 직접 만드니 재미 두 배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사장- 동물 전문 서적으로 두터운 마니아층 확보해M&K 구모니카 사장- 2030세대 여성의 삶과 사랑 대변하는 트렌드세터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 "독자 잡는 법이요? 책으로 '연애'를 걸어보세요!"

1인 출판사의 모든 걸 알려준다고? 매년 가을 홍익대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올해 행사(9.26~28) 주제는 ‘책, 연애를 걸다’이다. 그래서일까?

출판사별로 홍보 부스를 차린 ‘거리로 나온 책’ 이벤트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자연스레 유혹하고 있었다. 그 중 작심하고 독자들과 1:1 상담 및 카운슬링을 하겠다고 나선 부스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대형 출판사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세 명의 1인 출판사 여사장들이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출판사인 마티의 정희경 사장(31)은 ‘인문학 울렁증 극복하기’란 주제로, 2030 여성들의 일과 사랑, 공부와 놀이에 관한 실용서를 펴내는 M&K의 구모니카 사장(35)은 ‘여자의 성공과 성취’란 주제로 각각 카운슬링을 맡았다.

동물 관련서적 전문출판사 책공장 더불어의 김보경 사장(38)은 최근 출간한 고양이 소재 만화 <나비가 없는 세상>의 원화(原畫ㆍ출판에서 복사, 복제의 바탕이 되는 원그림) 전시회와 작가 미팅을 기획했다. 인문과학, 실용서, 동물관련 출판 분야에서 각각 일가를 이룬 젊은 여사장들에게 필자는 직접 상담과 카운슬링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1인 출판이란 기획, 편집, 진행, 디자인, 제작, 유통, 인쇄, 홍보, 마케팅 등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련의 과정을 한 사람이 책임지고 완수하는 출판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혼자 이 모든 걸 다할 수 있을까? 이들의 답은 물론, “노 프라블름(No Problem)”이었다.

■ 마티 정희경 사장

1인 출판계의 최연소 사장인 마티 정희경 사장이 처음 출판사를 차릴 생각을 한 건 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출판사 한길사에 입사해 4년 정도 경력을 쌓았다. “출판사 사장이 되어 사업으로 대박 나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저 소박하게 ‘제대로 된 인문출판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거죠.”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어느덧 2년 반을 넘었다.

벌써 만만찮은 내공도 쌓인 듯했다. “출판사를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분야를 선택하세요. 그 분야에선 누구보다 으뜸이어야 하고, 또 재미있어 미칠 정도는 돼야 해요”라고 답한다. 그는 스스로가 대학생 때부터 출판사 근무시절까지 10년 넘게 인문학 서적에 푹 빠져 살았다. “인문학 서적을 시작으로 독서 영역을 넓혀가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되었죠. 혹자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는 ‘인문학이 가장 쉬웠어요’라고 해둘까요(웃음).”

남들은 무겁고 어렵다고 하는 인문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재주는 정 사장만의 노하우에서 비롯됐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미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서양문학사까지 공부하게 되는 식이었죠. 마치 ‘사다리 그리기’처럼 끝없이 파고 들어가는 거죠.” 인문학 울렁증을 극복하는 첫 걸음 역시 바로 한 가지 분야에 재미를 붙여 파고 드는 것이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벌써 28권의 책을 펴낸 정 사장은 영어는 기본이고 독어, 불어까지 능통하다. 게다가 책 디자인도 자신의 몫이다. 인쇄소에서 책을 찍어내는 것을 빼고는 다 한다. “인문사회과학 전문출판사를 하려면 어학은 필수예요. 직접 번역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텍스트를 가장 잘 이해하는 편집자가 낸 책은 독자들에게도 인정을 받더라고요. 디자인요? 발등에 불 떨어지면 다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랍니다(웃음).”

물론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출판사를 열었을 때는 돈에 대한 ‘감’이 없어 수금도 제대로 못했다. 한 번은 양장본으로 펴낸 책에 적잖은 오타가 발견돼 출간 나흘 만에 2,500여권을 전부 리콜한 적도 있었다.

가혹한 인생수업은 오히려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직 베스트셀러를 내지는 못했지만 인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선 제법 입소문이 나 있는 출판사로 키워냈다. “이왕 차렸는데 대박이 나야 재미를 보는 것 아니냐고요?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기획해서 탄생시키고, 인문이라는 분야에 발 담그고 있는 지식인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요.”

■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사장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사장은 모든 생명체, 특히 동물과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육아 전문지, 패션지 등 전문지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 출신이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 딱 10년만 기자생활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서른다섯 살이 다가왔고, 거짓말처럼 ‘이제 때가 됐다’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고.

“기자생활 10년이 지나고 나니 그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직접 잡지를 만드는 ‘공장’(기자들이 언론사를 지칭하는 은어)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그는 워낙 동물을 좋아해 ‘동물전문잡지’를 창간할 마음을 먹었지만, 주변에서는 광고가 붙지 않을 거라며 만류했다. 성격이 느긋한 편이어서 몇 달 동안 창업 아이템 준비기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동물과 의사소통하는 사람) 리디아 히비가 동물과 대화하며 병을 치유해주는 장면을 보았다. 때마침 키우던 개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음 아파하고 있던 그는 ‘저 여자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게 바로 출판사를 차린 계기다.

김 사장은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란 책을 직접 번역했다. 국내에 처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세계를 소개한 책이다. 그 후 버려진 개를 소재로 한 <고마워, 치로리>나 9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고 달걀, 우유, 곡류 등만 먹는 사자를 다룬 <채식만 하는 사자, 리틀 타이크> 등의 책을 펴내 각박한 세상에 감동의 파장을 만들어 왔다.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한 김 사장의 책들은 출판불황 시대에도 이미 2쇄까지 찍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르는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다 보니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체에 애정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다 책을 내기 위해 더 이상 나무를 베어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게 됐는데 바로 재생지를 사용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세 번째 책부터는 100% 재생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종이 색감이 일반 단행본보다 어둡지만 소신을 이루었기에 뿌듯하기만 했다. “대형 출판사들도 재생지로 책을 만들어줘야 저희 같은 소형 출판사가 어렵지 않게 책을 낼 수 있어요. 1인 출판사 사장이 이런 일을 감당하기엔 현실의 벽이 높지만, 그래도 고지율(古紙率) 100%의 재생지를 사용했답니다.”

김 사장은 1인 출판사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가끔 다른 출판사의 책을 기획ㆍ편집하는 ‘알바’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출판계에서 나름대로 소신을 펴면서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는 “동물뿐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따뜻한 책을 내고 싶어요. 그러면서 오래 기억되는 문화를 생산해내는 기획자가 되었으면 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 M&K 구모니카 사장

M&K 구모니카 사장은 1인 출판사 사장 중 대외활동이 매우 활발한 축에 든다. 방송에서는 30대 싱글 여성을 대변하는 패널로, 각종 잡지에서는 1인 출판사 사장을 대변하는 인터뷰이로, 요즘은 책을 집필한 저자로 활약 중이다.

구 사장은 대학시절부터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온 노력파다. 방송계에 몸담고 싶어 방송아카데미를 다닌 후 AD(보조PD)로 활동했었고, 기자 세계에 매료되어 각종 월간잡지에서 취재기자 생활도 했었다. 또한 잡지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 대학원에 진학, 출판잡지 전공으로 석사학위도 땄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할 때는 창업자 과정까지 수료했다.

“제가 생각해도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네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긴긴 방황이 출판사 사장을 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다. 그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생기면 그걸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공부를 한 셈이다.

구 사장은 출판사 설립 후 첫 타깃 독자층을 자신처럼 일과 사랑, 결혼과 출산으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로 결정했다. 그들에게 친구이자 멘토가 되겠다는 포부가 컸던 까닭이다. 이후 2030 시장을 분석하고 연구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누구보다 트렌드에 밝고 앞서가는 문화기획자가 되어 있더란다.

시작은 초라하고 무모했다. 무턱대고 M&K 간판 하나 달랑 만들어 놓고 자신의 방을 사무실로 삼아 첫 출발을 했다. 기획, 편집, 진행, 홍보, 마케팅은 혼자서 하고 나머지는 출판계 지인들을 통해 외주를 줬다. 3년째 접어든 지금은 편집부 직원을 둘 만큼 안정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었지만 아직도 몸과 마음이 힘든 건 사실이다.

“제 인생에서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바로 사람이에요. 지인을 통해 사람을 소개받고 함께 수다 떨다 보면 어느새 미래의 필자가 확보되고 테마도 정해져요. 웃고 떠들고 노는 와중에 새로운 기획을 하게 되는 거지요.”

소위 ‘놀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인 구 사장은 그렇게 만난 문화예술계 지인들이 무려 1,000여명이 넘는단다. 덕분에 그들을 자신의 출판 기획위원으로 모셔 풍부한 자문을 구하고 있다. “사람이 곧 재산이죠. 전문적인 ‘옵서버’들을 주위에 많이 두세요.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모두 제 일처럼 도와줘요. 물론, 술값은 그 이상으로 들겠지만요(웃음).”

구 사장의 하루 일과는 회의와 미팅의 연속이다. 심지어 일과가 끝난 다음 술자리도 기획회의다. 하지만 늘 행복하게 즐기면서 일하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M&K가 3년째 걸어오면서 수많은 일이 있었어요.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는 ‘오대수’ 정신이 때론 저를 구하기도 했죠. 일을 저지르세요. 그리고 수습하세요. 다음 단계로 곧바로 진입하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답니다.”

오늘도 만나야 할 지인들이 구 사장의 ‘기적의 다이어리’에 빽빽이 적혀 있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트렌드세터로 살아가는 그에겐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M&K의 미래요? 오지랖 넓은 사장 덕에 우리 회사 좀 바빠질 것 같은데요(웃음). 저의 인맥과 기획력을 발휘해 영상매체로 사업을 확장할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때, 저와 함께 하실래요!”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