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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의 '외톨이'
신인 감독의 가능성과 과제 제시
학교·가정의 폭력과 가부장적 과오 응징, 긴장·이완 리듬감 부족





문학산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



호남 화단의 거목인 소치 허련에게 두 분의 스승이 존재했다. 한 분은 해남 윤씨의 뼈대있는 가문의 후예인 공재 윤두서였으며 다른 한분은 당대의 거물 정치가이자 문인화가인 추사 김정희다.

소치 허련은 윤두서에게 직접 사사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화집인 <공재 화첩>을 후손에게 빌려서 밤낮으로 옮겨 그리면서 화인의 길을 걸었다. 두 번째 스승이자 평생 두터운 사제 관계를 유지해온 추사 김정희는 허련에게 청나라 서화가 왕잠의 화첩을 건네면서 “한 본 한 본마다 열 번씩 본떠 그려보는 것”을 권했다고 전해진다.

허련은 <공재화첩>과 청나라의 고화(古畵) 명첩(名帖)을 뼈에 새기듯이 쉬지 않고 방(倣)하여 결국 그림의 품격을 고양시켜 당대의 대표적인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소치 허련의 작가 수업은 대가의 화첩을 옮겨 그리는 학습에서 시작하여 창조적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길로 요약된다.

소설가 신경숙도 자신의 산문집에서 습작기에 글쓰기 훈련을 인상적으로 밝힌 적 있다. 신경숙은 학교 수업도 참여했지만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는 일이 더 잦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겨울방학의 낙향 기억이었다. 작가는 겨울 방학 때 고향으로 낙향하여 방학 내내 한 일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오정희, 김승옥, 서정인으로 이어지는 한국 중견 작가의 작품을 대학노트에 옮겨 적는 일이었다. 고향에서 방학을 마치고 상경할 때 중견 작가의 작품을 필사한 대학노트를 가방에 넣고 왔다고 한다. 그때 자신이 직접 작품을 쓴 것처럼 뿌듯하였으며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고 한다.

소설가 신경숙의 작가 수업 역시 기존의 대가급 작품의 필사라는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후 등단을 하게 된 그녀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영화도 화가와 작가의 수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장르영화는 공식에 의존한다. 대중영화 감독은 장르 스타일에 대한 반복 학습을 필수 과목으로 이수해야한다. 장르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 장르의 공식은 운전자가 지켜야할 교통 법규처럼 중요하다. 흥행에 성공한 감독은 반드시 장르 공식을 준수했으며 룰을 벗어난 예외적인 소수도 장르의 경계를 넓혔을 뿐 장르의 규칙을 백지화하지는 않았다. 장르영화의 성공여부는 단순하다. 장르의 룰을 지키는 영화는 우수한 점수를 받으며 장르의 룰을 망각한 작품은 낙제점을 받는다. 시장에서 낙제는 상업적 실패와 비평적 폄하로 귀결된다.

박재식의 <외톨이>는 공포영화다. 그리고 장르의 룰에 준수하려는 신인감독의 의지가 역력하다. 보통 신인감독은 의욕은 많으나 재능이 아쉬운 경우가 많다. 아니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비주얼이 너무 많아서 정작 보여주고 싶은 바와 말하고 싶은 한 줄을 놓치고 만다.

서사와 이미지와 주제의 과잉공급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뷔페에 찾은 손님에게 산더미 같은 산해진미를 제공하고 모든 음식을 다 섭취해줄 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무모하다. 박재식의 <외톨이>는 과잉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다. 하지만 신인 감독의 인정 욕구가 영화의 미장센과 사운드를 통해 지울 수 없는 것은 신인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외톨이>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자폐적인 삶을 사는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이다. 히키코모리는 스스로 선택이 아닌 주변의 상처와 폭력으로 만들어진다.

여고생 수나는 친구의 죽음과 출생의 비밀로 인해 히키코모리로 변하여 가족을 위협한다.

히키코모리가 된 친구는 학교의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방안에 칩거하며 주인공 수나는 가족사의 폭력과 상처로 인해 자신의 방에서 히키코로리로 살아간다. 두 인물이 히키코모리가 된 것은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에 기인한다. 두 폭력의 기원에 대한 응징과 공격은 뒤로하고 한 가족에 대한 피의 복수와 과거에 대한 속죄를 중심 이야기로 끌고 간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의붓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히키코모리가 된 소녀의 공포를 제시한다. 남성의 성폭력은 여성이 히키코모리가 되어 남성을 공격하고 위협에 빠지게 하는 영화적 설득장치다.

딸 수나가 히키코모리로 변한 것도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게 된 아버지 세진의 과오에서 비롯된다. 히키코모리는 학교와 가정의 폭력과 가부장의 과오에 대한 심리적 혹은 윤리적 응징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외톨이>는 공포영화 장르로서 이야기 구조는 무난하지만 긴장과 이완의 리듬으로 통해 결국 범인은 누구인가와 주인공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풀고 싶은 관객의 영화적 호기심을 얻어내는 수준에는 못 미친 것 같다.

금속음과 과장된 소리와 무시무시한 사건을 견인해내는 음악과 심리적인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미장센은 공포영화에 적합하게 사용되었다.

수나가 밤에 학교 교실로 찾아가는 장면과 비오는 밤과 천둥 번개치는 날씨와 앙감으로 올려다보는 흉물스러운 건물은 공포영화의 비주얼과 사운드 관습에 일치한다. 하지만 하나 놓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화면밖 공간활용과 문을 이용한 위협장면 만들기의 아쉬움이다. 조금 더 진솔하게 말하자면 공포영화의 위협 장면에 대한 학습 부족의 흔적이 엿보인다.

장르영화는 장르의 공식에 대한 선행 학습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국민적 지지를 못 받는 것은 관객의 취향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공포영화에 정통한 감독의 부재이거나 공포영화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한 연출자의 필사적 노력 부족도 한 요인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신인감독의 가능성과 한국 공포영화의 현재진행형 성찰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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