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 책 읽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보는 책은 보통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는 데, 자격증 참고서, 토익 문제집과 같은 구직․승진용 서적, 소설과 같은 문학 서적, 그리고 자기계발서다. 인문․사회과학서나 시집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살 찌푸리며 집중해야 하는 사회과학서는 차치하고서라도 시집을 읽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현실에서 시 한편 읽고 사색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집은 존재감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독서의 계절을 맞아 책과 함께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올 가을 출간된 시집 4권을 골랐다.

올 해 가장 화제가 되는 시집은 단연 고은의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허공>이다. 시력 50년의 노장, 고은은 조로와 요절이 잦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경이로운 존재다. 그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 대담에서 말했듯 '두 번 요절이 가능한 세월' 동안 우리 문단을 지켜왔다. 기념시집 <허공>에는 표제작 허공을 비롯해 100 여 편이 실려 있다.

최근의 신작들로 빽빽한 이 책에는 고은 문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시집에 대해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고은 시인은 자기 세계를 지켜나가는 데서 더 나아가 마치 우주의 무한 팽창을 연상케 하는 불가해한 역동성과 놀라운 추진력을 거듭해 새로운 넓이와 깊이를 얻고 있다"고 평했다.

2003년 출간된 바 있는 정호승의 시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개정증보판도 이번 가을 독자를 찾는다. 35년의 세월동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순수함과 정결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 정호승은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몇 안 되는 시인 중 하나다. 이번 시집 에는 시인이 "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 절경의 시 93편이 수록돼있다.

시인 정희성은 <시를 찾아서>이후 7년 만에 <돌아다보면 문득>을 냈다.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슬픔을 썼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절제된 언어와 더 깊어진 여백의 미로 시대와 사람을 품어안은 사랑을 노래한다. 잔잔한 성찰의 시와 더불어 웃음과 유머가 있는 작품을 한께 실었다.

송찬호의 '가을'을 수상작으로 낸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도 눈길을 끈다. 지난 1년간 창작, 발표된 모든 시를 대상으로 한 이번 심사에서 수상작 가을은 전통적인 감각과 언어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했다. 이 작품은 '미당 서정주의 언어 감각과 백석의 분위기와 어조를 느끼게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외에도 최금진, 이영광, 김행숙 등 10명의 작품이 실려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