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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 서양의 그늘을 벗어나라
[특집·한국 사진을 말하다]
판단의 척도로 삼아온 오랜 관행에 묶여 한국적 다양성 위축





박평종 (미학, 사진비평) paixaube@hanmail.net

1-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아트갤러리에서'2008 SBS 희망 TV 24 CEO 사진전'이 열린 가운데, 참여한 CEO및 초대작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심현철 shim@koreatimes.co.kr
2- 환경재단 자선사진전 '마음의 정원'
3- 장 콜로나 의상-다리를 도둑맞은 남자와 30개의 눈: 사진에 옷을 입히는 남자 고초와 30인의 한국 패션사진전
4- 구본창 작가의 '태초'
5- 2008 유니세프 자선전




최근의 한국사진이 급격한 성장세에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그 판단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은 그 말이 추상적인 느낌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 작가의 수가 많아지고 작품의 질과 양도 차차 상승곡선을 긋고 있으며, 시장의 호응 또한 예전과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또한 국외로 진출하여 활동하는 작가도 늘고 있으며 그들 작품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사진전은 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으며 다양한 형태의 기획전이나 대규모의 사진행사도 급증하여 대중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눈에 띄는 현상들이 알려주는 바는 자명하다. 한국의 사진문화가 역동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잠시 동안의 유행으로 그치게 될지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문화의 가파른 상승세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조금씩 감지되어 온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요즘의 진단은 뒤늦은 감이 있다. 요컨대 오늘의 현상은 그간 차곡차곡 쌓여 온 한국사진의 역량이 조금씩 터져 나오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역동성은 축적된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에 대한 일반의 인식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는 삶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문화를 자율성의 원리에 따라 분야별로 나누고 거기에 위계를 부여해 온 서구의 근대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틀 속에서 사진은 문화의 일부라기보다는 항상 문화를 생산하는 도구처럼 간주되었다.

사진을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딸을 시집보내려는 부모가 미래의 사위에게 사진관을 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릴 것이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는 흔한 일이었다. 성숙한 인문주의자들조차도 사진을 기술의 일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사진을 도구로만 생각해 왔던 고루한 인식의 틀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진의 가능성을 밝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가능성은 다시 한국문화 전체의 풍요로움을 더해 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역동성이 일시적인 흐름에 그치지 않으려면 내적 역량을 꾸준히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한국사진의 역량이 그에 부응할 만큼 탄탄한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한국사진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지표는 국제적 위상이다. 사진문화를 우리보다 먼저 가꾸어 나갔던 서양과의 비교는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 비교는 객관적인 척도에 따라야 한다.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우리 사진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의 척도는 자기갱신의 문제에 걸려 있는 듯하다. 남이 입고 있는 옷이 멋져 보인다고 해서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그 옷을 따라 입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삶과 맞지 않은 문화란 기이한 것이다. 삶과 유리된 문화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허나 우리의 근대는 서양의 가치와 제도를 수용해 온 역사이기도 했다. 그 또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타자의 문화에 배울 만한 것이 있다면 제대로 익혀 내게 맞게 가져다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내면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기 삶 속에 용해시켜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간단한 자기갱신의 방법이다. 서양의 사진을 배워 온 우리의 사진문화에는 이러한 자기갱신의 과정이 부족했다. 따라 하는 데 급급했던 탓이다.

물론 자성도 있었고 극복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 ‘한국적인 사진’에 대한 강박관념은 그 부산물이다. 사라져 가는 전통과 문화유적, 토속적인 소재의 기록이 ‘한국적인 사진’처럼 각광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 또한 의미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갱신을 향한 치열함이 부족했다.

6- 서울 금호 아트홀내 한국 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세르비아의 사진작가 드라고류브 자무로비치의 땅 그리고 사람들 사진전시회
7-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 두번째 사진전
8- 사진전문미술관
9 매그넘코리아 전 -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과 상황은 분단으로 인한 영향과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본 작가전에서 크리스 스틸-퍼킨스는 분단을 한국의 군인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포항 해병대 2007


한국사진의 취약한 위상은 다른 한편으로 서양사진에 대한 열등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삶에 천착한 뛰어난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명 작가들이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 대중들의 인식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화랑이나 미술관조차도 우수한 국내 작가들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 국공립 미술관에는 사진 전문 큐레이터가 없어 사진전을 유치할 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국내 작가들에 대한 평가절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서양사진에 대한 막연한 신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국내의 작품 구입 경향이나 기획전의 성격은 서양에서 입증된 작품경향을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화랑이나 미술관의 시장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는 그 점을 고려함으로써 다시 서양사진의 경향을 확대재생산한다.

구조적인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젊은 작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던 독일의 유형학적 스타일의 사진이 단적인 예가 되겠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한국사진의 국제적 위상 정립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역량을 인정받는 작가들은 대개 서양에서 사진을 배워 익혀 온 경우가 많다. 특히 80년대 이후의 작가들은 서양사진의 흐름을 민첩하게 수용하는 경향을 보여주곤 했다. 서양 유학은 서양사진을 알기위한 간편한 수단이나 그 흐름에 합류하기 위한 지름길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문제라고 해서 작가들만 탓할 수는 없다. 서양사진을 판단의 척도로 삼아 온 오랜 관행이 작가들을 그러한 길로 내몰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실제로 진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시장성이 없다거나 국제적 트랜드에 부합하지 않아 전시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이다.

한국사진의 다양성은 그렇게 해서 위축되어 간다. 어쨌든 이러한 현상들이 한국사진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국외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문제의식이다. 타인의 문제의식이 제 아무리 깊고 진지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문제의식이 될 수는 없다. 서양의 작가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서 나온 작품이 경쟁력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 문제의식이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판단의 척도를 서양의 그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작가는 여전히 국외 전시에 출품하는 것을 동경하고, 일반의 인식 또한 대체로 국외에서 인정받은 작가를 우위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열렸던 매그넘 전시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해외 유명 사진가들이 한국을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되었던 그 전시는 국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국내 작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국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구경꾼의 시각으로 본 외국 유명 작가들의 사진은 그저 잘 찍은 여행사진 정도라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제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진정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그 사진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지 못한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 작가들의 사진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만약 그것이 한국사진의 위상이라면 우리는 초라한 미래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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