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드로잉전, 시인의 밤, 특별 사진전, 영상음악제 문신삶·예술 조명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조각가 문신(1923~95)의 예술과 삶이 문화의 달 10월을 풍성하게 수놓는다. 드로잉전을 비롯, 특별 조각 전시, 시인들의 신작시 낭송, 음악제, 사진전 등 문신 예술을 매개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것. 지난 4월 문신미술연구소 개관 후 7월부터 시작한 ‘문신예술 60년(1948~2008) 여정’의 향기가 더욱 짙어진 셈이다.

당시 특별전이 도록, 초대전 포스터, 신문기사 등 자료를 중심으로 문신의 예술과 생애를 조망하고 ‘올림픽 1988 드로잉전’, ‘미공개 에로스 드로잉전’ 등 그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이번 행사에선 문신 예술이 얼마나 다양하게 확산되고,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본질이 무언지, 그리고 인생 파노라마의 사진을 통해 문신과 그의 예술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다.

우선 17일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열리는 ‘문신예술을 노래하는 시인의 밤’ 행사는 예민한 감성의 촉수를 지닌 문인들이 문신 예술의 핵(core)을 어떻게 터치하고 메시지화하는가를 볼 수 있는 무대다.

같은 날 문신미술관에서는 ‘문신, 구상드로잉전’과 ‘문신예술 60년 여정 : 고독&우정 사진 특별전’이 열려 시(詩)의 울림을 더한다. 여기에 창작 40주년 기념으로 문신 조각의 독창적 테마를 이루는 ‘개미(프랑스 참나무)’가 특별 전시된다. 이날 행사는 문화전문 인터넷 매체인 ‘문화저널21’이 실시간 중계하는 등 관심이 높다.

이어 28일에는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람사르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최되는 것을 기념해 경남 마산에서 ‘문신미술 영상음악제’가 열린다. 지난 9월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된 ‘앙상블 시메트리(문신국제음악단)’의 내한공연(국립극장)에 이은 행사로 이 음악제에서는 문신 작품을 모티브로 한 창작곡을 선보일 예정이어서 세계에 한국 예술을 알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 행사Ⅰ- 문신예술을 노래하는 시인의 밤

문단의 원로ㆍ중진인 이건청, 오세영, 허영자, 고창수, 장석용 등 5인이 문신 예술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들을 나름대로의 운율과 시상으로 전한다. ‘미와 우주의 원리 표현’ ‘생명ㆍ조화ㆍ선율의 환타지아’ ‘극동의 명상’ ‘생명의 율동’ 등 문신 예술이 담고 있는 다양한 메타포를 시인들은 새로운 생명의 노래(시)로 합창한다.

그 중 이건청 목월문학포럼 회장은 <어느 힘 센 일꾼에게>의 시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 힘 센 일꾼 문신의 삶과 예술을 꿰뚫는다.

“예술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힘 센 사람 하나 있었는데, 쇠와 돌 속에서 노예처럼 살면서/흑단을 깨뜨려 ‘태양의 인간’을 불러내고(…), 살을 부르고 피를 부르고 체온까지 불러낸 사람/전 세계가 우러른 힘 센 사람 하나/있었는데, 있었는데”

장석용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은 <발카레스의 神>에서 “발카레스의 혼으로 찾아낸/개미의 눈물, 게르니카/참회로 빚은 시메트리로 우주와 소통하던 그대/노스트라다무스의 예지로 누에 천을 탄 그대”로, 문신 작품의 원형을 이루는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노래한다.

4- 파리 유학시절인 1963년 파리세느강변에서 동료 작가들과 망중한을 즐기던 모습이다. 왼쪽부터 세계적 조각가로 명성을 떨친 문신, 한국적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인 김창락 화백, 그리고 한묵.
5- 지휘자 파벨 발레프 연주모습

■ 행사Ⅱ - 문신, 구상드로잉 전(1949-1994)

문신은 10대 후반 세계미술에 대한 연구를 드로잉을 통해 시작했으며 초기 국내 전시에 드로잉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67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 창작에 몰두할 때도 드로잉과 채화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신은 이역만리에서 치열한 작업을 하면서 ‘아직도 남의 나라에서 작업을 하는 설움’을 글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법주사 쌍사자 석등, 조국 산천의 풍물 등의 구상드로잉을 창작하여 조국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귀국의 갈망 등을 달랬다.

80년 영구 귀국한 문신은 1988년 <올림픽 1988> 창작과정을 전후해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광폭적으로 아우르면서 격정과 낭만의 조형언어로 인간과 노동의 아름다움을 창작했으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그리움과 영원함에 대한 갈망 등을 구상적인 표현 언어로 생의 끝까지 밀고 갔다.

구상 드로잉전은 그러한 문신의 치열한 예술세계를 풀어내는 또 다른 바로미터다. 한편 이번에 전시되는 68년 작 프랑스 참나무 <개미>는 문신 스스로 소중한 작품으로 생각해 출품하지 않고 보관하다 80년 영구 귀국 시 들여온 것으로 ‘문신예술 여정 60주년’을 맞이해 특별 전시한다. 12월 31일까지.

■ 행사Ⅲ - 문신예술 60년 여정 :'고독&우정(Ⅰ)특별사진전'

“예술의 세계는 제자도 스승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이다.”

문신은 70여년 평생을 ‘예술을 위하여, 예술 속에서만 살다간’ 예술지상주의자이다. 오로지 위대한 독창적인 작품 창작을 위해 예술 외적인 것에 대해서는 생의 의미마저 포기하면서 인간의 모든 감정과 우주의 삼라만상까지도 자기예술의 용광로에 용해시키켰다.

예술에 생명을 다 바친 문신의 예술정신과 인생 파노라마를 ‘고독&우정(Ⅰ) 특별 사진전’ 을 통해 다가갈 수 있다. 11월 18일까지 전시.

■ 행사Ⅳ - 세계 람사르총회 개최기념 '문신미술영상음악제'

세계 람사르총회 개최를 기념해 지난해 8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큰 성황을 이뤄 새로운 문화 지평을 연 ‘문신미술 영상음악축제’를 재연한다. 오는 28일 마산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리는 음악제는 유럽지휘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바덴바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파벨 발레프가 내한해 지휘한다.

발레프는 “문신예술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ㆍ조화ㆍ상생ㆍ사랑의 예술정신의 실현은 ‘예술을 통한 지구인은 모두 하나’란 문신예술의 명제에 대하여 우리만의 언어로(뿌리 깊은 유럽음악으로) 화답하는 것”이라며 내한공연의 의의를 밝혔다. 문신교향곡 ‘Eleonthit’ 가 국내초연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