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신한류 이끄는 문화 콘텐츠허성임·차진엽 등 국제무대 두각… 최리나·박세은 샛별 반짝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현대무용가 허성임은 지난 5월 개막한 ‘국제현대무용제’에서 가장 주목 받은 무용수다. 얀 파브르 안무의 <여자가 남자의 주역이었을 때>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올리브 기름이 뿌려진 무대 바닥을 뒹구는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외설적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동물적 본능과 신의 성스러운 영역,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대화 등을 표현하며 인간의 본질과 순수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이 작품으로 전 세계 13개국에서 90여 차례나 무대에 오른 허성임은 자신만의 에너지와 개성을 ‘몸부림’으로 표현하며 이제 유럽에서 주목받는 무용수가 됐다. 그는 지난 9월부터 세드라베 무용단의 전속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낯선 이름의 무용가(혹은 단체)들이 전방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주로 발레에서만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현대춤(컨템포러리 댄스)을 비롯해 전통 창작춤, 심지어 비보이 퍼포먼스까지 ‘코리아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연령도 다양하다. 30대에 접어들면 무용수로서의 기량이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것이 무용계의 정설이었지만, 춤 한류를 이끄는 무용수들은 나이도 잊은 듯 더욱 더 성숙된 기량으로 공간을 가르고 중력에 도전한다.

■ 세계로 뻗는 한국발 현대춤

춤 평단과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용수 겸 안무가 안성수는 1991년 뉴욕에서 결성된 픽업그룹과 함께 조이스극장,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ADF), 센트럴파크 써머 스테이지, 링컨센터 야외 축제, 댄스시어터 워크숍 등에서 공연하며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예술적 예민함과 완벽주의로 무장한 프로 안무가로 평가받아온 그는 2005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 <볼레로>로 작품상 후보에 올라 무용계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도발적인 안무로 외국 관객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세계음악극축제(World Music Theater Festival) 초청으로 20일까지 공연하는 <신 춘향>은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4개국 7개 도시를 돌며 안은미식 춤을 선보일 예정이다.

춤 공연의 경우 개런티가 제대로 보장된 경우가 거의 없는 관행에서 20일간의 공연 제작을 페스티발측이 모두 책임지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어서 국제무대에서의 안은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네덜란드 랜덤콜리전 컴퍼니 단원인 차진엽은 국내 무대에서 이미 전도유망한 젊은 무용인으로 주목받았다. 한국무용협회 주최 ‘젊은 안무가를 위한 창작공연’에서 1위로 입상해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정됐고, 이후 영국 호페시 세히터(Hofesh Shechter) 단원, 네덜란드 갈릴리 무용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유럽에 춤 한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무용수로서 뿐만 아니라 최근 안무가로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의 발전가능성을 계속해서 높이는 중이다.

한편 무용수 겸 안무가 이선아는 얼마 전 독일에서 간행되는 세계적인 무용전문지 ‘발레탄츠(Ballettanz)’ 특별호에서 ‘2008 주목해야 할 젊은 안무가’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지난해 1월 일본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에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는 이선아는 프랑스 국립안무센터를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독일, 핀란드, 우크라이나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춤과 안무를 유럽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발레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댄서들

3- 유지연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단원
4- 김지영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5- 김주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6- 안은미 현대무용가
7- 최리나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단원
8- 박세은 로잔 콩쿠르에서 <라 바야데르>의 감자티 솔로를 추는 모습

1990년대 후반 한국의 발레스타였던 김용걸은 국내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발레의 종가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연수단원으로 입단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5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군무에서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로 한 단계씩 올라 이제는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파리를 찾은 사람들에게 춤 한류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 발레 붐을 일으킨 두 주역인 국립발레단의 김주원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김지영은 여전히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각각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김주원은 순수 국내파지만 2006년 발레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으며 세계 무용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았다. 김지영은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5년만에 수석무용수에 오르며 한국 발레리나의 위상을 드높였다.

유지연은 발레 강국 러시아의 키로프 발레단에서 받아들인 최초의 외국인 무용수로 유명하다. 그는 최고의 발레학교로 유명한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전례없이 곧바로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했다.

볼쇼이 발레단의 유일한 외국인 단원인 배주윤 역시 모스크바 발레아카데미를 마치고 명문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기록을 세웠다. 두 사람은 한국 무용수만의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표현으로 발레의 나라 러시아에 한국 발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 새로운 춤 한류를 이끄는 기대주들의 도전

올해 열린 ‘2008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여느 해보다 어린 무용수들로 구성되었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의 딸이자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최리나는 얼마 전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에서 주역 폰멕 부인을 맡을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기대주다.

같은 발레 부문의 스웨덴 왕립발레단의 남민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유서연과 한상이도 20살을 갓 넘긴 어린 무용수지만 각각 스웨덴과 네덜란드에 춤 한류를 전파하고 있는 실력파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 외에도 20살 이하의 어린 무용수들도 또래의 무용수보다 월등한 기량을 발휘하며 해외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USA 발레콩쿠르(잭슨콩쿠르)와 로잔 발레 콩쿠르를 잇따라 제패한 박세은이 그 좋은 예다.

이들은 비록 국내에서도 그 이름이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수상을 하거나 저명한 해외 단체에서 손짓을 함으로써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예술계의 젊은 추동세력들이다. 어려운 국내 예술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취월장한 기량을 바탕으로 세계에 진출한 이들은 한국 춤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