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건설 모델하우스 '크링', SKT '아트센터 나비' 대표적MB공약 서울화력발전소는 부처간 이견으로 답보상태

수익 창출을 위한 상업공간이 문화공간으로 변화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존의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변화한 금호건설의 크링(Kring), 사무실 공간을 개조해 미디어 아트 전시 및 교육공간으로 변화시킨 SK텔레콤의 아트센터 나비, 이명박 정부가 화력발전소에서 문화창작공간으로 변신을 약속한 바 있는 서울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변신은 기업의 사회공헌과 문화예술의 사회전반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들은 이 공간에서 각종 봉사, 기부 활동을 벌이기도 해 문화를 마케팅의 차원에서 활용하면서도 일반시민에 혜택을 돌려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메세나에 대한 근시안적 태도와 부족한 이해로 기업들이 기획 과정에서 본 목적인‘공공성’의 윤리를 저버린다든가, 예술을 또 다른 이윤 창출의 도구화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모델하우스가 아닌 실제 아파트 개발 과정에서는 예술생태계를 밀어내버리기 일쑤다.

이들은 대부분 전체 개발부지의 1%에 공공예술작품을 설치하게 돼있는 ‘1% 법’을 무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문화사업을 핑계로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또 다른 수익창출 목적으로 메세나를 악용하거나 미술품 등을 통한 자금세탁 경로 활용하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정부는 공무원 특유의 ‘책임회피’와 ‘보신주의’ 때문에 상업시설의 문화시설 전환에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화력발전소의 문화창작발전소 변경계획은 부처간 이견으로 연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시민의 문화체육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싼값에 일반시민에 개방했던 난지도 골프장을 일부 비난여론을 의식해 갈아엎기 시작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메세나 활동은 일단 긍정적”이라면서도 “개별적 메세나가 악용되는 사례가 있는만큼 선진국과 같이 기업이 협의체를 만들어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이어“예술창작을 단기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지원한다면 문화예술의 저력은 결국 기업과 사회 모두의 경쟁력으로 환원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 ▦'수익창출'에서 '사회공헌'공간으로_복합 문화공간, 크링(Kring)

건설사의 수익창출에 최우선을 둔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예술공간으로 진화해 시민들에게 문화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금호건설은 지난 6월 23일 서울 대치동에 복합문화공간 크링(kring)을 개관해 시민들에게 영화관, 미술전시관, 카페, 공연장 등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건물의 용도는 수익창출보다 ‘사회공헌’ 성격이 강하다. 기존의 모델하우스를 용도 변경해 전체 3개 층에서 한 개 층으로 대폭줄이고 1, 2층은 문화공간으로 일반에 개방했다.

이용료 사용 방식이 참신하다. 1층에 있는 예술영화 중심의 소규모 영화관 <크링 시네마>에서는 영화표값 대신 5천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는다. 기부금은 독립영화 중심의 비상업 영화제인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 관람객 명의로 기부한다.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의 후원사는 금호 아시아나다. 2층에 있는 카페는 자율기부제로 운영하고 있다. 수익금은 홀트아동복지회와 한국소아암협회에 기부한다.

이용료 대신 기부금을 받는다고 해 서비스의 질이 낮을 것이라는 예단은 기우다. <크링 시네마>는 64석 규모의 소규모 영화제지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중심으로 한 품격 있는 비상업영화를 상영한다. 2층 라운지에 있는 커피명가는 우리나라 바리스타 1호인 안명규 씨가 운영한다.

미술관 기능도 한다. 1층의 아트리움에서는 신진 아티스트의 다양한 설치미술과 조형물 등을 전시한다. 이달 27일까지는 작가들이 각자의 작품 내용 안에서 생성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해석을 본인들의 제스처로 표현한 ‘아이러니 & 제스츄어’, <영국현대미술전>을 한다.

하지만, 모델하우스 공간이 양적으로 축소됐을 뿐 기존보다 더 강한 상업 목적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3층에 있는 분양관은 ‘미래 주거 트랜드 및 명품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V.I.P. 고객은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 이 공간에서는 소수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금호건설이 분양하는 전원주택 등의 모델하우스를 전시하고 있다.

3- 스카이 가든
4- 서울 마포 당인리화력발전소
3- SKT 아트센터 나비
4- 서울 마포 당인리화력발전소

■ '사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개방_아트센터 나비

이동통신 독과점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SK텔레콤이 자신들의 사무공간 일부를 고객들의 문화향유 공간으로 내놨다.

SK텔레콤은 본사사옥이 지난 2004년 서울 종로 서린빌딩으로 재이전하면서 4층의 사무공간 일부를 개조한 아트센터 나비를 열어 일반에 공개했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자 최태원 SK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관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우려해 일부러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495㎡로 협소한 편이지만 설치 미술 전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기업이미지에 걸맞은 미디어아트 설치 예술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다음달 18일까지 열고 있는 <이상한글>전시는 한글을 모티브로 해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나 한글의 시각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미디어 아트를 무료로 선보이고 있다.

교육, 연구공간으로서 도심에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기술 워크숍, 예술가와 기술자들의 자발적 모임 지원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달 30일 까지는 <뉴미디어와 예술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를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을 불러 디지털 미학, 게임미디어와 예술 등에 관한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사회공헌으로서 공간 개방의 의미도 있다. 대부분의 전시와 교육을 무료나 최소비용으로 진행한다. 아트센터 나비는 저소득층, 새터민,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웹디자인 등의 교육을 4주간 진행하고 아트센터 나비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트센터 나비는 ‘재벌’의 또 다른 ‘소장고’ 역할을 의심 받기도 한다. 나비가 전신으로 소개하고 있는 워커힐 미술관은 SK의 전신인 선경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부인 박계희 씨가 운영하던 곳이다.

하지만, SK관계자는 워커힐 미술관은 일반공개를 중단했을 뿐, 현재 “300여점을 워커힐 미술관의 비공개 소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측은 “(회사가) 현재 총 451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워커힐 미술관 소장품을 제외한 100여점은 SK사옥에, 나머지는 SK사옥의 소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트센터 나비에서 SK소장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지는 않다”며 “SK사옥 내 소장고 위치를 밝힐 의무는 없지않나”고 말했다.

■ '전기'에서 '문화창작'발전소로_당인리 발전소

서울 마포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 발전소)는 ‘화력’발전소에서 ‘문화창작’ 발전소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부처간 이견과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의지 결여로 사업이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는 당인리 발전소 부지에 ‘문화창작발전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시 문화부는 “발전소를 개조해 영국의 데이트모던이나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의 데이트 모던은 2005년 5월 런던 템즈강가의 화력발소를 개조해 발전효율이 낮은 발전소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고급미술관으로 개방했다. 오르세 미술관 건물은 원래 철도역이자 호텔로 쓰이던 것을 1986년 미술관으로 개조해 지금은 파리의 명소로 정착했다. 인상파 미술을 전시하던 국립 주드폼 미술관의 수장품은 모두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관했다.

정부는 지난 8월에는 2012년까지 서울화력발전소의 발전시설 2기를 증설해 지하 30m로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테스크 포스 팀(TFT)을 구성한 주무관청인 문화부는 지난 10월 마포가 지역구인 강승규 한나라당 국회의원실의 서면질의에서 “발전소 등 전력계통 분야 담당부처는 지식경제부로 발전소 기본방향에 대해 기술적 검토, 비용산출, 로드맵 구상 및 조성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회피했다.

지식경제부 역시 테스크포스팀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은 1호 발전소로서의 상징성 등 때문에 발전소의 이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포구청은 “당인리 발전소는 1930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였으나, 국가 전력생산 능력 증가로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서 0.5%로 줄었기 때문에 발전시설로서 의미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가스누출의 위험성이 있는 LNG발전소를 지하에 그대로 둔채 문화공간으로 개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한강이 가까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부지를 효율성이 거의 없는 발전소로 쓰는 것보다는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돌려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