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통해 데뷔유명가수와 함께 공연하며 실력 과시… "아이돌 스타 부럽잖아요"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 신예 인디밴드 알케미스트

떠오르는 신예 인디밴드 알케미스트(R★chemist)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콘서트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함께 열광해봐야 한다. 남자 다섯 명의 폭발적인 무대를 보다 보면 어느새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동동 뛰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Dance with Rock’, ‘1과 2분의 1’, ‘스파이더 맨’, ‘토.토.즐.밤’ 등의 대표곡으로 이들은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라이브홀을 마룻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열광의 도가니로 빠트렸다.

알케미스트는 상상마당의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를 통해 데뷔한 그룹이다. 지난해 5월 팀을 결성해 주로 서울 홍익대 주변이나 신촌 일대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정규앨범 발표, 콘서트 개최, 예술감독의 멘토링 등 상상마당이 제안한 ‘달콤한’ 혜택에 반해 컨테스트에 지원했다.

“인디밴드의 사전적 의미를 아시나요?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밴드’란 뜻이죠. 뜻은 참 멋지죠. 저도 이런 이유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인디밴드로 살아 남기란 녹록치 않거든요.”

기타 치는 친구가 멋있어 보여 무작정 따라 치다 인디밴드 기타리스트가 된 승자(이승진)씨의 이야기다. 이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인디밴드로 살아가기란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는 것’, ‘정규앨범 발표는 마치 선택된 자들에게 오는 기회 같다’는 것이다.

음악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실력 외에 경제적인 여건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알케미스트가 각종 페스티벌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상도 받았지만 밴드를 이끌어가기 위한 궁여지책이었기에 큰 보람은 못 느꼈다.

초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스틱을 잡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줄곧 드러머로 활동 중인 까막(김창현)씨도 거든다. “인디라는 말엔 자유란 뜻도 함께 있어요. 밴드에게 진정한 자유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와 인기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인디밴드로 살아가려면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야 하죠.”

팀에서 맏형이자 기타리스트인 써비(김호섭)씨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앨범이 제작되기를 기다리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와 관객을 기다리는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죠. 하지만 알케미스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지닌 밴드로 거듭 탄생했어요.”

알케미스트는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 동안 독립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실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큐베이팅 과정 동안 수많은 콘서트를 열고 윤도현 밴드 전 멤버 유병렬씨(현 이퍼블릭 기타리스트), 음악평론가 임진모씨 등에게서 멘토링을 받으며 훌쩍 컸다.

지난해 여름 어느날, 인큐베이팅 컨테스트 소식을 접한 보컬 가우(주영민)씨는 자신들이 찾던 게 ‘바로 이거다’ 싶었다. “콘서트 무대를 지원해주고, 정규앨범 발표나 인디밴드의 유명한 선배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을 기회를 준다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그룹이 어디 있겠어요. 꼭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가우씨는 중학교 때 우연히 영국의 4인조 록그룹 퀸(QUEEN)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매료되었다. “퀸이 누군지도 몰랐고, 음악도 듣지도 못한 채 영상만 보았죠. 그런데 그들의 멋진 무대 공연에 관중이 그토록 열광하는 거예요. 그때 꿈꾸었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밴드 인큐베이팅 1기에 선발되고 최종 4팀에 뽑혀 앨범까지 내는 행운을 차지한 알케미스트는 다양한 콘서트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태지 15주년 기념 공연에서 ‘빅뱅’과 게릴라 콘서트를 함께 했고, 올 3월에는 디지털 싱글앨범 ‘Radio spy’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알케미스트가 주인공이었고, 유명가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알케미스트는 무대에 오른 순간에야 자신들이 온전히 ‘알케미스트’임을 실감한다.

그런 다음 관객과 영혼이 통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마치 보컬 가우가 처음 음악을 시작한 계기처럼 관객이 열광하도록 멋진 무대를 선사하는 것이다. 큰 무대에서 유명가수들과 함께 하는 공연도 좋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는 경북 울진에서였다.

서울에 비해 콘서트 무대가 많지 않은 울진에서 그토록 많은 여고생들이 공연을 보러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관중에게 보답하듯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공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순간은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스타가 부럽지 않았다. 이제 알케미스트가 기다리는 것은 정규 EP(Extended Playㆍ싱글에 비해 길고 보통 앨범보다 짧은 CD) 앨범이다.

“일년 동안 알케미스트는 꿈을 쫓아가듯 공연을 했어요.” 밴드의 막내이자 베이시스트 호현(윤호현)씨의 말처럼 멤버들은 각자가 원하는 꿈을 이룬 셈이다. 밴드 인큐베이팅 1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에서 인디밴드로 살아 남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는 정규 앨범이 나온 이제부터 시작이다. 떨리고 긴장되지만 음악에만 전념해 왔기에 잘할 자신도 있다.

연금술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Alchemist’에서 앞 스펠링 ‘Al’을 과감히 빼고 ‘R’을 붙여서 록음악의 연금술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R★chemist’. 인디밴드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알케미스트의 목표다. “무대는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산소와도 같은 곳이죠. 무대가 있는 한 알케미스트는 언제라도 대중과 함께 숨쉬고 싶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인디밴드의 꿈이기도 하다.

■ 1기 인큐베이팅 밴드 졸업공연 가보니…
'알'깨고 나온 '샛별'들의 열광적 무대


밴드 인큐베이팅 1기 팀 케인즈토닉의 졸업공연

지난 10월12일 오후 5시 홍익대 인근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조금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우리 지금 상상마당 졸업했어요’가 바로 그것. 작년 이맘때 밴드 인큐베이팅 컨테스트에 합격한 11개 팀이 일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공연에는 데프닝스트리트, 스토리셀러, 알케미스트, 케인즈토닉, 비터스마일 등 5개 팀이 참가했다.

1기 밴드 인큐베이팅 팀은 옴니버스 앨범 ‘Beyond’를 발매한 상태다. 무대에 오른 밴드나 라이브홀의 스탠딩 좌석(서서 관람하는 좌석)에서 동료들의 무대를 함께 즐기는 동료 밴드나 감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중 남성 5인조 밴드 케인즈토닉은 “우리가 작년 밴드 인큐베이팅 컨테스트에 합격한 게 엊그제 같아요. 곧 독집 앨범도 나오고 너무 기뻐요. 1년 동안 성장한 모습 지켜봐 주세요”라며 무대에 올라섰다.

일년 동안 멤버가 바뀌는 등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혼성 밴드 비터스마일은 “졸업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치 여기가 우리 안식처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정들었거든요. 졸업 공연이라기보다 일년 동안의 성과를 뽐내는 자리로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인디밴드에게 음악적인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맘껏 연주할 수 있는 연습실과 꿈을 이룰 수 있는 콘서트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밴드의 휴식처란 뜻을 지닌 ‘뺀드家’ 콘서트에서는 선배 팀들과 합동공연을 했었다.

대선배들과 함께 한 공연은 개인 레슨보다 더 값졌고, ‘YB 윤도현 밴드’와 ‘이퍼블릭’, ‘블랙홀 콘서트’의 게스트로 오프닝 무대를 빛낼 때는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알을 깨고 나와 진정한 새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일년 동안 기획된 ‘R콘서트’는 각자의 실력을 다지고 동료 밴드들과 우정을 나누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들의 ‘음악코치’로서 멘토 역할을 했던 기타리스트 유병렬씨는 졸업공연을 지켜보며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몰라보게 성장해서 놀랍다”며 뿌듯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공식적으로 1기 과정은 끝났지만 밴드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돈독한 선후배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11개 팀 중 4개 팀(알케미스트, 소울라이츠, 케인즈토닉, 스패로우)은 EP앨범 제작을 마쳤다. 최종 한 팀에게만 앨범 발표 기회를 주겠다는 애초 계획이 변경된 셈이다.

유병렬씨는 “진행하다 보니 다양한 장르와 개성을 지닌 팀들 중 한 팀만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밴드의 이웃과 삼촌으로서 후배 밴드들이 성장해 훌륭한 밴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 역할을 했는데 더 잘해주지 못해서 아쉽다”며 “나의 멘토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제자 사랑을 내비치기도 했다.

■ "우리도 좀 키워주세요, 네!!"
밴드 인큐베이팅 2기 모집 뜨거운 반응


밴드 인큐베이팅은 1기를 세상으로 내보내고 이제 새로운 2기를 맞이한다. 총 99개 팀 중 1차 심사를 통과한 43개 팀이 이틀에 걸쳐 실연 심사를 거쳤다. 지난 8일에 진행된 2차 오디션 현장에서 지원자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한 곡씩을 선보였다. 이들 중 16개 팀은 다시 3차 면접을 통과해야만 한다.

2차 오디션에서는 당장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력 있는 밴드도 있었다. 하지만 지원자 대부분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연주실력을 지닌 아마추어였다. 아직 자신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음악이 좋아 도전한 지원자도 있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홍익대 인근 연습실을 빌려 밤새 연습했다는 팀도 있었다.

단 한 곡만으로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야 하는 무대. 오디션 현장은 인디밴드의 샛별을 발탁하는 실험실 같았다. 패기와 열정, 젊음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감히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누가 알겠는가.

이들 중 세상을 뒤집을 만한 스타밴드가 탄생하게 될지. 2기 밴드 인큐베이팅에 선발되면 일년간의 연습실 제공, 예술감독의 멘토링, 콘서트, 음반 프로듀싱, 정규 EP앨범 발표 등 갖가지 음악적인 혜택을 지원받는다.

아직 누가 선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밴드 인큐베이팅 같은 창작지원 프로그램이 많이 생긴다면 인디밴드들이 숨쉴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2기를 맞이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에 유병렬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일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업그레이드된 밴드 인큐베이팅 과정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원래 첫째보다는 둘째 키우기가 더 수월하다고 하잖아요!(웃음)”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