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배경 영화·드라마·음악 구세대엔 향수, 신세대엔 새 문화 아이템

유행은 돌고 돈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은 언제나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몇 가지 아이템을 시간차를 두고 좋아하는 것이다. 이 아이템은 주로 패션에서 확인된다.

사람들은 옷을 살 때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고르는 듯하지만 집에 와 옷장을 확인해보면 비슷한 색과 스타일 투성이다. 결국 “기호”라고 부르는 좁은 선택의 폭 안에서 약간의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경기가 불황일 때 더 하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 바로 모험이다. 문화적 기호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경기에 가장 먼저 매출이 줄어드는 문화적 아이템이 영화인 반면 책의 판매는 늘어나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책과 영화는 비슷한 정도의 지출을 요구한다. 그런데 영화는 소비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책은 소유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물질적으로 서재를 채울 수도 있고 정서적으로도 채운다는 느낌을 선사해주는 것이다.

최근 문화계를 주도하는 아이콘은 바로 ‘복고’이다. 복고,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과거로 되돌아간다기보다는 과거의 것이 되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우리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 이제는 지나가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이 현재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과거의 것을 지겨워하지 않고 그 되돌아옴을 반기는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로는 ‘퇴행심리’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힘겨울 때 자신의 어린 시절로 퇴행하는 버릇이 있다. 유년기를 인생에 있어 가정 안온하고 편안했던 시기로 간직하고 있는 까닭도 유사하다.

과거를 돌이킨다는 것은 한편 지금 이곳의 “내”가 과거를 관통하는 데 성공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만일 사춘기를 괴롭게 보낸 사람이 사춘기를 회고한다면 지금, 나는 그 괴로움의 시기를 무난히 넘기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들이 “복고적 움직임”에서 회고하는 것은 이처럼 무난히 넘긴 그 일들이다.

이런 움직임들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에덴의 동쪽>과 같은 드라마나 90년대 말부터 유행한 7080 콘서트들을 들 수 있다. <에덴의 동쪽>은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식의 전개로 진행된다.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배경으로 지난했던 정치사와 함께 급박하게 변했던 경제사를 한꺼번에 훑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70~80년대는 잘 모르고 있는 과거라기보다는 너무나 잘 아는 어떤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 발전과 정치의 불균형이 올바른 세상에 대한 낭만적 전망을 자극했던 시기로 기억되는 것이다.

“자본”이 절대 가치가 된 2000년대에 비해 70~80년대의 이야기들은 나름의 비장미를 지니고 있다. <에덴의 동쪽>이 혈연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비장미로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 바로 70~80년대의 분위기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1- 드라마(1986년) '사랑과 야망'
2- 영화 '드림걸즈'
3- 7080 콘서트

두 번째 복고 문화의 열풍 이유에는 바로 정보로서의 과거를 들 수 있다.

원더걸스의 새 노래 ‘노바디’는 60~70년대 한창 유행했던 스타일을 흉내내고 있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슈프림스’ 등의 모타운 걸 그룹 사운드의 음악 스타일과 안무, 무대 스타일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원더걸스’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 음악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로 다가온다. 그것을 소비하고 경험했던 구세대들에게는 ‘복고’지만 10대, 20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아이템인 것이다.

<노바디>는 단순한 멜로디와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이들의 노래를 “보는” 관객뿐 아니라 듣기만 하는 구매자들에게도 호소한다. 원더걸스의 화려한 의상과 클래식한 헤어스타일, 화장은 이 노래를 구매하는 계층에게는 새롭고 세련된 ‘다른’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호기심으로서의 ‘과거’는 최근 역사적 사건을 다소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영화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정지우 감독의 <모던 보이>나 최호 감독의 <고고 70>과 같은 영화들 말이다. 정지우 감독은 항일 혹은 친일의 이분법으로 판단되던 1930년대를 사랑으로 인해 목말라하던 모던 ‘껄’과 ‘보이’들의 공간으로 재해석해낸다. 시대가 가혹했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감정적 문제에 골몰하던 개인주의자들이 있었다며, 그들을 조명한 것이다.

이는 최호 감독이 ‘고고족’을 통해 70년대를 재구성하는 의도와도 닿아 있다. 아직껏 한 번도 70년대가 ‘고고’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서술된 적은 없었다.

금지와 규제로 핍박받던 당대의 젊은이들을 고고라는 문화적 흔적을 통해 재구성해봄으로써 70년대의 삶은 입체화된다. 이 영화를 소비하는 10대 20대들에게 70년대란 잘 알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전혀 몰랐던 어떤 ‘곳’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일종의 반동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바로 복고이다. 그런데 이 복고 분위기는 지난 세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복하고자 하는 반동 효과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스키니 열풍이 불고 간 지금 그 자리를 대체하려 하는 것은 바로 와이드 팬츠이다.

스키니 팬츠와 짝꿍처럼 붙어다니던 플랫 슈즈가 부티와 같은 강렬하고 투박한 슈즈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한 연쇄현상이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의 모든 스타일들이 획일화될 때쯤 패션계는 완전히 정반대의 의상 형태를 새로운 유행으로 제공한다. 일종의 반동 효과인 셈이다.

마지막으로는 상품화의 논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7080은 90년대 이후 가장 성공한 문화 소비의 아이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명절 연휴 가족 단위 영화가 집중 개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여유를 즐길만한 준비가 되었지만 막상 그 대상을 찾지 못한 ‘40’대들을 ‘7080’이라는 호명으로 특화시킨 것, 그것이 바로 7080 복고 문화의 중심에 놓인 상업 논리이다. 이러한 상업 논리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에 걸쳐 다방면에서 발견된다.

10대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기록해 ‘학창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최인호의 <머저리 클럽>이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다. 과거는 돌이켜보면 고통마저 아름답다. 별이 된 과거를 그리워하는 습성, 복고 열풍에는 현재의 고단함을 완료된 과거형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본능이 자리잡고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