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연계전공 고려대·호서대 철학과의 변신·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창설 대표적

인문학의 위기인가 인문학자의 위기인가.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대학 인문학과의 변신이 구체화하고 있다. 본격적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을 압두고 ‘인문학과 법’이란 연계전공을 만들어 활로를 찾는 고려대 문과대학이 대표적이다.

특별한 경우인 고려대를 제외하고 상위권 대학에서 이런 움직임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연세대 관계자는 “신설학과는 없다”며 “인문학 사업단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이런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홍보팀은 학과간 혼융을 주창하거나 인문학과의 학제개편을 추진하는 움직임은“아직 없다”고 밝혔다.

변신은 위기에서 나온다. 난립한 대학숫자에 비해 학생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방대들은 인문학과의 변신에 적극적이다.

호서대 철학과는 문화기획학과로 변신했고, 이 대학 국문학과는 한국어문화학부로 바뀌어 국문학과 외에 문화콘텐츠창작전공을 더했다. 상지대는 교양학부 교수들을 중심으로 문화콘텐츠학과를 창설했다.

정준영 방통대 문화교양학부 교수는 “많은 대학들이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한 현재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문학과를 과잉공급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면서도 “만들때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세분화된 학과를 만들어 낸 것이 문제였던 것을 교훈 삼아, 대학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인문학의 시각과 유효성을 보다 현실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인문학과와 인문학 모두가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신’이 아니라 ‘포기’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건국대는 최근 아시아 유일의 중동 히브리어학과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성신여대 역시 내년 1학기부터 미디어 정보학부와 컴퓨터 정보학부를 IT학부로 통합하고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기존 학과와 학생의 반발을 샀다. 성신여대는 야간대학 전체를 폐지할 방침이다.

■ '인문학'과 '법'의 만남
고려대 '인문학과 법' 연계전공


고려대 문과대학은 올해 1학기부터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법에 대한 기초 문화적 배경을 가르치는‘인문학과 법’ 연계전공을 만들었다. 이 전공은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 논리적 글쓰기, 말하기 등을 가르친다.

변신은 위기에서 나왔다. 조규형 고려대 문과대학 부학장은 “문과대 학생들의 경우 너무 진출할 곳이 많아서 오히려 길을 잃은 것 같다”며 “학부생들의 진로를 구체화하고 국제전문가로서 나아갈 수 있는 몇가지 패스(방향)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또 하나의 전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인문학과 법’교육과정은 ‘소통을 위한 효과적인 언어표현’, ‘귀납논리’ 등 전공필수 4과목, ‘다인종 다문화사회의 이해’, ‘법과 사회’를 비롯한 전공선택 20과목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은 법의 내적 논리와 사회문화적 연관성을 탐구해 법학분야 진출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의 호응은 아직 그리 높지 않다. 현재 50여명의 학생이 이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 고려대는 2004년 입학자부터 2개 이상의 전공 이수를 의무화했다. 학생들은 1전공 이외에도 2중전공이나 연계전공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각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내년 3월 문을 연다. 이에 따라 학부과정의 법학과는 더 이상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3- 상지대학교 전경
4- 호서대 벤처산학협력관

■ '철학'의 과감한 '변신'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문화콘텐츠창작전공


호서대(충남 아산 소재) 철학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호서대는 8년전 철학과를 폐지해 교수들 일부가 문화기획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생존이 가장 절박한 문제였다. 당시 이 대학 철학과의 진학율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학과를 옮긴 교수들 역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문화기획학과로 옮긴 철학교수들은 순수한 원론만 강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이론에 부합한 ‘발상의 전환’, ‘동서양의 문화상징’, ‘문화비평’ 과목 등을 개설했다. 실무자 중심의 외부 초빙 교수들은 ‘공연기획’, ‘실습’등의 과목을 강의한다.

국문학과는 한국어문화학부로 변신해 국문학 전공외에 문화콘텐츠전공을 하나 더 만들었다.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옮긴 국문학 교수들은 ‘스토리텔링 창작 실습’, ‘디지털콘텐츠 시나리오’를 비롯한 실무적인 과목을 개설했다. 또, 외부 강사들을 초빙해 ‘게임 시나리오’, ‘전자출판과 출판기획’등의 실무과목을 맡겼다.

변신의 노력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문화기획학과의 평균경쟁률은 4대 1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재학 비율 역시 매우 높다. 학생들이 원래부터 공연기획자 등 구체적 직업을 선택하고 연관 학과를 지망했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학문에 열심이라는 전언이다.

김성동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는 “인문학의 위기는 서비스의 부재에서 온 측면도 있다”며 “문화철학으로 정점을 바꾼 것은 살아남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동시에 그동안 순수학문인 철학이 사회에 대한 서비스를 얼마나 해왔나하는 반성에서 출발한 차원도 있다”고 말했다.

■ '교양학부'에서' 문화콘텐츠학과'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상지대(강원 원주 소재)는 이미 성공한 인문학과 변신 사례의 하나다. 상지대는 2006년 당초 교양학부 소속이었던 불문학, 사회학, 여성학 교수들에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을 더해 문화콘텐츠학과를 만들었다. 폐지 위기에 놓인 학과의 변신을 모색했다기 보다는, 인문학 전공교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경우다.

교수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김정란 교수는 ‘람세스’를 번역한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다. 홍성태 교수는 도시생태학 등의 사회학 분야에서 이름이 났다. 초빙교수인 강도영(필명 강풀) 교수는 온라인만화의 대표주자다. 강 작가는 상지대를 졸업했다.

이 학과는 ‘공연기획’, ‘애니메이션 기획론’등의 실무형 과목을 개설했다. 또, ‘신화의 세계’, ‘신비주의와 이미지’등의 과목을 가르쳐 영화 시나리오를 비롯한 문화콘텐츠 창작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수요창출은 숫자로 입증된다. 이 학과의 경쟁률은 10대 1에 이른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상지대를 2008년 특성화교육 기관으로 선정했다. 상지대는 각국에 존재하는 신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 개발할 수 있는 인재 양성 사업을 주제로 응모해 2억 3천 4백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성공 비결은 수요에 기반한 학과 콘셉트와 과감한 지원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공제욱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장은 “요즘에 문화산업이 부각돼는데, 이 산업에서는 기술적인것보다는 소재 기획력이 중요하다”며 “신화를 기반으로 원소스 멀티유스가 가능한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한 커리큘럼이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이어 “실무 위주의 과목들이 많아 기자재가 많이 필요한데 학교에서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