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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비몽'
꿈꾸는 자와 꿈을 행하는 자의 톱니바퀴
꿈과 현실·부재와 존재·남과여의 일체감 표현, 영화적 언어 깊이·상상력 탁월





문학산 (부산대 교수)





영화의 출전은 꿈이다. 미국의 영화 스튜디오가 밀집한 할리우드가 꿈의 궁전 혹은 꿈의 공장으로 지칭된 것도 꿈의 제조가 바로 영화라는 사실을 검증한다.

김기덕의 <비몽>은 꿈을 소재로 하여 꿈에 관한 동양 철학과 미학의 각주달기를 시도한다. <비몽>은 겉으로는 한국의 한옥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두 배우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장자와 불교의 철학을 영화로 재해석한 해석학에 가깝다. 김기덕의 영화 해석학은 재미보다는 의미에, 구체성 보다는 모호성으로 추가 기울어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대로 관객에 대한 친절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친절함은 진(오다기리죠 분)이 꾸는 꿈을 몽유병 환자 란(이 나영 분)이 현실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의학적 이름붙이기다.

의사(장미희 분)는 란이 몽유병으로 인해 진이 꾸는 꿈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다. 꿈꾸는 자와 꿈꾸는 대로 행하는 자의 역할분담이 이 영화 핵심적인 서사 방식이며다음 장면과 시퀀스가 이어진다.

첫 시퀀스는 진이 심야에 운전 도중 추돌사고를 낸다. 진은 꿈에서 깨어나며 자고 있던 란은 감시카메라에 얼굴이 찍히며 자신의 차가 망가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경찰은 란을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진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꿈을 꾸는 자와 꿈꾸는 대로 행하는 자가 범한 범죄는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이 영화는 거부한다.

다만 꿈을 꾸는 자와 꿈의 세계의 주인공이 현실과 꿈의 세계에서 감금된 내면을 강조한다. 아니 꿈과 현실의 상호 역할분담으로 두 인물은 운명적으로 서로 하나로 묶이게 되는 것을 철학적, 미학적으로 해부한다.

흑백이 동색이며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귀속되는 것은 장자철학이다. 한옥의 미장센과 갈대밭으로 걸어 들어가 네 명의 남녀가 하나로 통합되어 충돌하고 분열되는 장면은 미학적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며 “사랑하는 두 사람의 과거,현재,미래가 꿈속에서 공존하고 충돌하고 섞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꿈은 시간의 통합이지만 이 영화는 꿈과 현실, 부재와 존재, 남과 여의 하나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낸다. 오히려 꿈은 일종의 맥거핀이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 나서 영화는 꿈꾸는 진과 이를 행동으로 실행하는 란의 이야기가 톱니바퀴로 굴러간다. 다시 말하자면 김기덕 감독의 서사의 원형이 반복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계절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는 것처럼 혹은 <빈집>에서 서로 다른 집을 방문하고 그 공간에 걸맞는 행위를 나열하는 것처럼 아니면 <숨>에서 사형수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물하는 여자처럼 진은 꿈이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란은 자동인형 배우처럼 연기한다. 꿈의 내용과 연기의 강도가 달라지면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두 번째 친절함은 진과 란의 죽음 다음에 등장하는 나비다. 나비는 란의 목걸이로 걸려있었다. 란은 정신병동이 감금되어 나비 목걸이를 삼키고 자살을 감행한다.

올가미에 앉은 나비는 창문 밖으로 나가 한강에 투신한 진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진과 란이 손잡고 누워있는 것을 바라본다. 진이 조각한 글씨가 흑백동색(黑白同色)이다. 검은 색과 흰색이 하나이듯이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귀결된다. 이는 장자의 철학의 핵심이다. 영화 속의 나비 역시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나비를 인용한 것이다.

호접지몽의 철학은 물아일체 사상이다. 호접지몽은 장주의 꿈 이야기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다. 나비는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날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잠에 깨어 보니 자신이 누워있었다.

장주는 스스로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그가 된 것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때 문득 장주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빈부(貧富)·화복(禍福)”을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만물은 하나의 세계로 귀일한다는 사실이다.

김기덕은 <비몽>에서 나비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면서 까지 각조로 처리해주는 친절함을 베푼다. 흑백이 동색인 것처럼 여자와 남자, 사랑과 증오, 난과 진,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모두 경계없는 하나임을 역설한다. 그의 주제 혹은 목소리는 독창적인 한 줄의 경구이거나 영화적 발언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란의 자살에서 나비로 변환 그리고 얼어붙은 죽음의 한강으로 이동은 영화 언어의 깊이를 보여준다. 죽음의 이미지인 검은 색과 눈의 이미지인 흰색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은 인상적인 칼라의 사용이다.

죽음의 올가미와 나비의 탄생,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며 감금과 해방의 문을 빠져 나오는 나비의 행보와 서로 다른 공간을 한 컷으로 넘기면서 한강의 연인에게 도달하는 것은 영화적 상상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주석은 목어다. 란과 진은 보광사로 간다. 이 장면은 거의 유일하게 두 남녀에게 휴식과 즐거운 추억을 제공하는 쉬어가는 장면이다. 란과 진은 범종을 치고 범종루에 걸린 목어를 두드린다. 목어의 두드림과 종의 타종은 흥미로운 행위다. 그들은 꿈에 포박되어 삶이 송두리째 감금되어 있다.

목어는 조석으로 예불 때 두드린다. 목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도 항상 깨어나 용맹정진하라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물 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항상 깨어있고 싶은 진과 란은 즐겁게 목어를 두들기지만 감독은 깨어있어야만 하는 진과 란의 상황에 항상 깨어있으라는 수행자에 대한 권면이라는 불교적 의미를 삽입하여 미묘한 의미적 유사성을 배치한다.

<비몽>은 김기덕의 영화언어와 동양 문화의 주석이 공조한 합작품이다. 이 합작품은 김기덕의 영화적 낙인은 흐려졌으며 동양 철학은 교양서 수준에 머무른 것 같다. 중견 감독이 연출한 장편 옴니버스 중에서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영화가 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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