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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한명숙 노란 샤쓰의 사나이' 1961년 비너스레코드 VOL.1-하편
"쉰 목소리 이상해" 무더기 반품
전쟁 후 재건 분위기 타고 히트
위스트 리듬·허스키 보컬 한박자 늦게 라디오 통해 전국 강타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데뷔 10년 만에 발표한 한명숙의 첫 음반은 미8군 가수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컴필레이션은 ‘서울대 법대’출신으로 학사가수 열풍을 이끈 60년대 최고의 가수 최희준과 남성사중창단 전성시대를 연 ‘블루벨즈’의 데뷔앨범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이 음반엔 이들 외에도 김성옥, 계수남, 오사라 등이 참여했다.

총 8곡의 수록곡중 타이틀은 유일하게 2곡을 취입한 김성옥의 ‘이것은 비밀’. 국민가요로 등극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타이틀곡이 아닌 두 번째 트랙이었다. 이는 음반 발표 때 아무도 이 노래의 운명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흥미롭지 않은가?

음반이 발표되자 한명숙은 가슴이 터질 듯 마음이 설??? 하지만 처음 접한 허스키 보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음반 발매 직후 전국의 레코드 상에서 ‘한명숙이란 여가수 진짜 가수 맞나?

목소리가 쉰 것 같이 이상하다’며 무더기 반품사태가 빚어졌다. 일반대중의 반응은 고사하고 판매상들부터도 싸늘한 외면을 당했던 것. 어눌했던 그의 영어식 발음까지 싸잡아 ‘주체성이 없는 가수’라는 혹평으로 이어졌다. 가혹한 신고식이었다.

음반 발매 후 의기소침했던 분위기에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시대의 흐름을 알아 본 일부 방송국 PD들에 의해 그녀의 노래가 선곡이 되면서 KBS 라디오를 통해 간간히 흘러나왔다.

이에 기름에 불을 댕긴 듯 전국을 강타하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를 재건하려는 분위기가 탱천했던 당시. 경쾌한 트위스트 리듬과 허스키 보컬에서 뿜어 나오는 한명숙의 흥겨운 노래에 대중은 뒤늦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에 색채감이 없었던 이전 곡들과는 달리 그녀가 채색한 ‘노란’ 색깔은 온 나라를 빠르게 물들여 갔다.

이후 ‘빨간 구두 아가씨’등 밝고 강렬한 색채가 들어가는 노래들과 허스키 보컬이 꾀꼬리 보컬을 누르고 대중가요를 주도하는 트렌트까지 형성되었다. 웃음일이 없었던 당대 대중에게 이 노래는 경제 재건의지를 북돋아주는 노래 이상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미덕을 발휘했다. 진정 당대 대중에게 희망을 건네준 소중한 노래 선물이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원곡은 우리가 아는 경쾌한 트위스트풍의 노래가 아니다. 느리고 짙은 감성의 블루스 곡이었다. 빠른 템포의 트위스트 곡으로 작곡가 손석우가 이 노래를 재 편곡을 한 것은 정비석의 ‘자유부인’으로 대변되는 50년대의 춤바람 열풍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당시 온 나라는 맘보와 트위스트로 들썩거렸던 시절이었다. 갓 출범한 손석우의 비너스 레코드사는 물론 미8군 가수들에게도 탄력을 제공했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인기를 감지한 제작자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운 재반 형식의 비너스 11집을 재발매했다.

또한 전국의 남성들이 노란 샤스를 입는 열풍까지 불어대자 노란 샤쓰를 입은 사나이의 그림을 재킷으로 한 세 번째 음반까지 등장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단숨에 최고의 인기가수로 떠오른 한명숙을 위해 독집 앨범을 제작했다.

컴필레이션 음반이 대세였던 그 시절, 독집앨범은 최정상의 인기가수도 쉽게 넘볼 수 없었음을 상기해보면 당시 한명숙 열풍의 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음반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도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시 8군 미군들 대부분 복역 후 귀국 선물로 내 음반을 모두 가져갔다’고 한명숙은 당시의 열풍을 증언한다.

이후 이 노래는 한류열풍의 첨병이 되었다. 국내에서 후끈한 노래열풍으로 자신감을 얻은 미8군 <화양> 프로덕션은 1965년 쇼 단을 소집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순회공연에 나섰다.

현지의 반응은 대단했다. 한명숙은 아시아 톱 싱어로 떠올랐다. 태국에서는 그녀의 음반 취입이 이루어졌고 대만에서는 중국어로 번안되어 화교권에 널리 불리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지금도 대만에서는 이 노래를 자국노래로 알고 있을 정도. 화제의 중심이 된 한명숙은 1966년 베트남으로 파월 장병 위문공연은 물론이고 미국 공연까지 나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어갔다.

실제로 당시 미국인들은 동양인만 보면 ‘노란 샤쓰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하고 미군들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연주되면 어느새 기립을 할 정도로 경의를 표했다.

1962년, 노래의 빅히트를 업고 제작된 동명의 영화에 한명숙은 주연으로 발탁되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그해 내한공연을 한 세계적인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가 이 노래를 한국어로 취입하면서 한명숙은 서울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영화제 시상식에 가수 대표로 초대받았다. 국가대표급 가수로 떠오른 한명숙은 NHK의 초청으로 일본 동경에서도 기념공연을 했다.

‘마무라 미츠코’라는 여가수가 ‘노란 샤스의 사나이’를 정식 취입은 일본에서도 반응이 좋았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한명숙의 ‘노란 샤스의 사나이’는 대중가요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미덕을 성사시킨 한류열풍의 1호의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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