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짧은 여행을 하였다. 온통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녘이 한없이 풍요롭고 그래서 아름다웠고, 집집마다 주렁주렁 익어가는 감나무 구경은 보는 일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세상은 더 할 수 없이 어렵고 각박해졌는데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는 느낌은 도심을 떠나 몇 시간을 떠나온 사람들이 떠난 한적한 그 곳에 살아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나무는 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큰키나무이다. 세계적으로는 감나무 집안 식구들은 이 백 종류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열대 또는 아열대지방에 나며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방에서는 감나무와 고욤나무 두 종류가 있다.

대부분의 문헌에서 감나무의 원산지가 한국, 일본, 중국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나라 땅에 그토록 흔하게 자라건만 모두 마을이나 집안에 심은 나무들이지 아직까지 깊숙한 숲속에서 야생하는 감나무는 나는 구경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감나무의 자생지가 어디이든 그 오랜 옛날부터 함께 해온 감나무는 누가 뭐래도 우리 나무이다.

감나무는 다소 따뜻한 지방에서 잘 자란다. 중부지방에서 이북에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점차 그 한계가 올라오고 있는데 대략 서울이 그 경계가 되는 것 같다. 같은 서울하늘 아래여도 햇볕이 좋고 겨울에 찬바람을 적절히 막아주는 곳에서는 잘 자라기도 하니 말이다.

가을 풍광의 주인중의 하나인 감나무는 보기만도 좋지만 뭐니 뭐니해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감나무가 지천인 동네에 가면 길가는 길에 담장 너머 온 단감하나 뚝 떼어 베어 먹는다고 나무라는 이 하나 없다.

잘익은 감을 바라보며 “色勝金玉衣 甘分玉液淸” 감나무의 색은 금빛나는 옷보다도 더 아름답고, 그 맛은 맑은 옥액에 단맛을 더한 듯 하다고 했으니 과실에게 주는 찬사에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또 감나무집안을 나타내는 학명은 디오스피로스인데 여기에서 디오스는 신이란 뜻이고 피로스는 곡물이란 뜻이고 보면 서양에서도 과실의 신이라 칭할 만큼 훌륭히 여겼나보다.

가을에 단단한 생감을 잘 저장해 두면 색은 더욱 붉어지고 맛은 더욱 달콤해져 먹음직스런 말랑한 감이 되는데 이를 두고 홍시라 부르고, 생감의 껍질을 벗겨 햇볕에 잘 말리면 쫀득한 곶감이 되어 겨우내 두고 먹을 수 있는데 이를 백시라고 부르며 이때 곶감의 표면에 생기는 서리같이 하얀가루를 감의 서리라 하여 시상이라 부른다.

감을 좀 더 응용하면 그 유명한 수정과에서 시작하여 잘 익은 홍시를 체에 걸러 쌀뜨물로 죽을 쑤어 꿀을 타는 홍시죽, 찹쌀과 껍질을 벗겨 말린 감을 가루로 만들어 대추를 삶아 으깨어 말려 꿀과 섞어 빗은 후 밤과, 대추를 부수고 계피가루와 잣가루까지 묻혀 만든 것을 감기설떡, 감식초, 심지어 감을 얼려 두었다가 일년내 즐기는 감샤베트까지 등장하였다.

약으로 치면 생약명을 한자이름 그대로 시(柿)라 부르고 열매를 시자, 꽃을 시화, 마른 것을 시병, 수피를 시목피라하며 쓴다. 민간에선 홍시는 술을 깨고, 술로 아픈 속을 다스려 주고 이로 인한 설사를 멎게 한다 하고 감꼭지는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먹는일 이외에는 도 감나무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제주도에는 갈옷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는 제주도의 농부들이 입는 옷인데 바로 감물을 들여 만든다는 것이다. 윗저고리를 갈적삼, 아래옷을 갈중이 또는 갈굴중이라고 한다는데 풋감을 찧어 물들인 제주도의 감옷이 기능이나 때깔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고, 감나무의 심재는 검은빛이 나는데 아름다울뿐더러 심재가 굳고 탄력이 있어 전통가구의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된다.

감나무 예찬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 “감의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다”마음에 닿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요즈음 사람에 힘든가 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