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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넘치는 춤의 향연
서울세계무용축제·서울국제공연예술제·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등 풍성




심정민 무용평론가, 비평사학자 21critic@naver.com

1-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작인 한국 작품 '처용굿'
2-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굳힌 장이머우가 연출한 중국 국립발레단의 무용극 '홍등'
3- 2008 춤 춘향
4- 서울국제공연예술제-돈키호테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용계에서는 살이 쫙 빠질 정도로 뛰어다녀야 하는 시기다. 무용계를 대표할만한 축제들의 상당수가 이때 몰려있기 때문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같은 국제적인 축제뿐만 아니라 서울무용제 같은 국내 축제까지 9-10월에 겹쳐서 포진되어 있다. 극장들의 굵직한 기획공연이나 무용가 개인공연도 이 무렵 많아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춤공연의 가을 집중은 풍성하다 못해 넘칠 정도다.

■ 무용계를 대표하는 축제들, 대부분 가을에 집중

올해 가을에 별들의 전쟁, 아니 '춤관련 축제들의 전쟁'의 서막을 알린 것은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이다. 9월 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우리나라 국립극장의 주도로 펼쳐진 이 축제는 각국 국립극장에 소속된 단체들의 공연예술을 공유하는 자리다.

무용분야에서는 '춘향전'을 원전으로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그리고 장예모 연출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중국 국립발레단의 <홍등>이 주목할 만하다.

이와 겹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는 9월 18일부터 10월 1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과 예술의전당 등지에서 연극과 무용을 중심으로 13개국 38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SPAF의 무용분야는 해외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국내의 우수한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특히 올해 우리 무용가들의 작품을 16개나 소개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용계 최대 행사의 반열에 올라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에서 안은미의 <봄의 제전>, 허용순의 <천사의 숨결>, 안애순의 <갈라파고스>, 손인영의 <지붕 아래>, 김윤정과 마코스 그롤레의 <단 한 번의...>, 박호빈의 <엘리베이터 살인사건>, 이용인의 <소녀와 죽음> 등이 눈에 띠었다.

11회째를 맞이한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SIDance)는 10월 10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과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졌다. SPAF와 열흘 가량이나 겹쳐져 있는 셈이다.

해외초청공연에서 네덜란드 갈릴리무용단의 <영원토록>, 독일 에곤 마젠&에릭 고띠에의 <돈큐>, 그리스 로에스댄스시어터의 <엘렉트라, 가해자>는 SIDance의 수준을 결정짓는 빅 트라이앵글이었다. 축제의 규모에 비해 매우 적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수준 높은 공연을 선사한다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기획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10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국내 무용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서울무용제가 펼쳐졌다. 여러 부문의 수상자를 뽑는 경연형식의 서울무용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춤축제 중 하나다. 올해에도 30개의 무용단들이 참가해서 어울림의 한마당을 벌였다.

위의 축제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행사로,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은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공연예술의 국내유통망체계화와 해외진출지원을 목표로 하는 PAMS는 같은 시기에 벌어진 SIDance나 SPAF와 폭넓게 연계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포럼과 부스전시 그리고 쇼케이스를 통해 국내외 무용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 하이서울페스티벌2008가을은 10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들을 한데 묶어 홍보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앞에 언급한 축제들도 모두 아우른다.

특성화되기보다 포괄하는 성격이 짙은 행사인 것이다. 서울광장이나 청계광장의 야외무대에서 다채로운 공연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시민과 소통의 장을 직접적으로 도모하기도 했다.

5- 서울국제공연예술제
6- 소녀와 죽음
7- 돈 큐
8- 프랑스 오데옹 국립극장-소녀, 악마, 그리고 풍차, 생명수


■ 춤관련 축제들의 가을 편중의 득과 실

가을이 되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일 년 중 가장 활동하기 좋은 선선한 날씨에다가, 연말로 향해가는 길목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기 때문이다. 무용계에서도 가을은 굵직한 공연들이 몰리는 이른바 '시즌'이다.

이렇게 몰려있는 공연들의 상승효과도 만만치 않다. "가을에는 좋은 춤공연이 풍성하다."라는 인식이 형성된 것도 이미 오래다. 또한 서울아트마켓(PAMS)이나 하이서울페스티벌2008가을처럼 여러 춤관련 축제들을 하나의 범주로 연계해서 홍보해주는 또 다른 축제가 생겼다는 것 역시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관련 축제들의 가을 편중이 이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에 대해서는 짚어 봐야할 것이다. 시기적으로 9-10월에 그것도 서울이라는 지역에 치우친 경향은 우리 무용계의 규모를 놓고 볼 때 다소 과열경쟁 조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역량있는 국내 무용가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축제들마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암암리에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예산규모가 적은 축제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작품제작비용을 감수해야하는 무용가들이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곳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용가들이 욕심을 부려 한·두 달 사이에 축제들 여기저기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안무가는 불과 20일 사이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서울아트마켓(PAMS),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모두 다른 공연을 펼쳤다. 그 밖에도 축제와 축제, 축제와 개인공연 등을 짧은 기간 내에 소화해야하는 무용가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감수해야하는 것은 무용가 본연의 역량에 비해 공연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로, 관객들이 한·두 달 사이에 볼 수 있는 공연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여력 모두에서 그러하다. 일반관객이, 사명감에 불타는 평론가나 무용관계자도 아닐 테고, 자발적으로 즐기는 예술향유에는 상한선이 있기 마련이다.

근래,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해외무용단의 초청공연에서도 빈자리가 눈에 띠었다는 점은 가을 편중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관객 수가 많고 좋은 공연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긴 하지만, 이쯤 되면 그에 대한 메리트를 최대한 보장받기는 힘들 것 같다.

이와 같이, 무용계의 굵직한 축제들이 가을에 몰리는 현상은 무용가의 자기표현이나 관객의 예술향유을 버겁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축제들이 이미 갖고 있는 지향성을 심화시켜 스스로 차별화시켜가는 한편, 타이트하게 겹쳐져 있는 축제들의 일자를 좀 더 벌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서울에서 10월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축제가 총 72개나 된다고 하니 축제의 가을 집중도는 비단 무용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게다가, 춤관련 축제는 양질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각 축제마다 선별력을 발휘하여 어느 정도 예술수준을 보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춤관련 축제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작품제작비로 인해 사실상 자비로 개인공연을 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무용가에게 긍정적인 혜택을 주어왔다.

이런 이유로 춤관련 축제는 21세기 들어 활성화되어왔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리라 본다. 실제로 우리 무용계를 대표하는 축제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국내외적으로 대단히 높은 인지도와 평판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국립극장들 간의 축제로 두 돌 째를 맞이했다.

사반세기를 훌쩍 넘긴 서울무용제는 국내무용가들을 자기표현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현시점에서 축제들이 어떻게 현명한 공생을 유지하면서 서로 간의 상승적 활기를 이어갈 것인지는 계속 숙고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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