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정거래조정원 신호현 초대원장당사자 합의 유도로 비중 작고 사적 성격 강한 불공정거래 분쟁 해결공정위 몸집 부풀리기 비판 있지만 경쟁당국 효율 높이는 계기 될 것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경제적 약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공정거래조정원(www.kofair.or.krㆍ이하 조정원)이 지난 2월4일 공식 업무를 개시하며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조정원은 국내 시장경제 질서의 수호자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형제 기관’에 해당한다. 공정위가 대기업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굵직굵직한 불공정거래 사건 해결에 주력한다면, 조정원은 그보다 비중이 작고 사적(私的) 분쟁의 성격이 짙은 불공정거래 사건 처리를 도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 위주의 공적(公的)인 처벌을 가하는 데 비해, 조정원은 당사자간의 합의와 조정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민간의 자율적인 공정거래 문화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출범한 기관의 첫 번째 수장으로서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나가는 중책을 맡은 신호현 초대 원장을 만나 조정원 설립 배경과 운영 방침 등을 들어봤다.

-그 동안 공정위가 경쟁당국으로서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다뤄온 터에 조정원이 별도로 설립된 배경은 무엇인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공정위에 접수된 공정거래법 관련 전체 신고사건만 무려 5,000여 건에 달했다. 또 그 중에서 약 70%는 사적 분쟁 성격이 짙은 ‘작은’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사건의 경중을 가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공정위는 중요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자는 취지에서 조정원이 설립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거래위원회와 법무부 독점금지국 등 양대 경쟁당국은 한 해에 수십 건 정도의 사건만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가령 MS(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문제 등 주로 사회적 영향이 크고 복잡한 사건 해결에 주력하는 것이다. 비록 소수의 사건만을 다루지만 미국 경쟁당국의 심판은 일벌백계의 효과가 있다.

조정원 설립에는 또 다른 배경도 있다. 무엇보다 불공정거래로 인한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공정위가 그들의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행위자에게 시정 명령이나 과징금 부과 등 제재 조치만 가할 뿐, 피해자가 보상을 받으려면 공정위 결정을 근거로 삼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내렸더라도, 피해자는 또 다시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보상을 받을 길이 열리는 이중고에 시달려온 셈이다.

이에 비해 조정원은 당사자간 자율적 합의를 유도해 분쟁을 빨리 해결함으로써 경제적 약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법정 소송이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 반면 조정원의 분쟁조정은 2~3개월 안에 완료된다. 당사자간 합의는 민사상 합의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조정원 신설에 대해 공정위의 몸집 부풀리기라는 비판도 있었는데.

“차고 넘치는 사건을 공정위가 모두 처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건은 시간에 쫓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면 어차피 증원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공무원을 늘릴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3의 조직을 만드는 게 나은 것 아닌가. 조정원 신설은 공정위의 기능 효율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조정원은 민ㆍ관의 성격을 함께 가진 정부출연 기관이다. 교수, 법조인 등 전문가들로 위촉되는 조정위원은 비상근이며, 행정 실무자는 민간에서 선발된다. 조정원 출범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따랐다. 국회도 처음에는 규제기관이 더 커진다며 반대했었다. 당초 공정거래진흥원으로 출범하려다 일부 기능을 떼내고 조정원으로 ‘격하’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적 분쟁의 성격이 강한 불공정거래 행위로 어떤 사례가 있나.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거나 거부하는 행위, 가격이나 거래조건을 차별하는 행위, 불합리하게 싼값을 책정해 경쟁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하는 행위 등이다. 사적 분쟁을 대화로 풀어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내면 이후로도 당사자들이 원만한 거래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조정원을 통한 분쟁조정 제도의 수요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

“한국프랜차이즈협회에서 담당하던 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 사건이 70~80건 정도 이관된 데다, 일반적인 공정거래 분쟁조정에 대한 문의도 벌써 상당수 들어오고 있다. 이미 조정신청을 한 사례도 있다. 대략적으로 연 평균 1천 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정원은 분쟁조정을 주된 기능으로 삼고 있지만 연구기능의 비중도 적지 않다. 최근 세계 각국의 경쟁당국은 신(新)경제 출현, 기술발전, 산업융합 등 경제환경의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정책 연구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경제학자나 법무법인 등 일류 전문가들을 동원해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려는 기업들의 예봉을 효과적으로 꺾기 위해서다. 이런 추세에 맞춰 조정원도 ▦시장 및 산업 분석 ▦업종별 거래관행 분석 ▦경쟁정책 효과 분석 ▦개별사건에 대한 경제분석 등 조사ㆍ분석 기능을 통해 공정위의 정책 집행을 측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시장경제 발전과 경쟁질서 확립에 대한 평소 철학이 있다면.

“경쟁당국은 시장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틀’만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한 책무다. 스키어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스키장의 울타리처럼, 시장의 룰을 만들어 참여자들이 스스로 지켜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가급적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노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조정원의 초대 원장으로서 소임이 크다. 앞으로 조정원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목표와 포부를 말한다면.

“조정원은 공정위가 처음 만든 산하기관이다. 초대 원장으로 조직을 잘 ‘세팅’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경쟁문화를 확산하는 데 일익을 맡고 싶은 것은 당연한 희망이다.”

■ 신호현 원장은…

행시 22회 출신으로 1980년 공직에 입문했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사실 등을 거쳤다. 다자(多者)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 관련 실무를 맡는 등 다자통상 업무에 밝다. ‘국제통’이라는 평판 덕분에 94년 재정경제원 출범 때에는 외무부로 발령을 받아 2년간 일하기도 했다.

공정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96년부터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경쟁당국과 협력채널을 구축하는 등 국제업무를 주로 맡았다. 주미 대사관에 파견됐을 때 현지 인맥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에 돌아와 국제 카르텔 적발에 공을 세운 적도 있다.

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아시아지역 경쟁센터 소장, 몽골 경쟁당국 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경쟁당국과 경쟁정책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G7’에 들 것”이라고 말할 만큼 국내 경쟁제도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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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