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보양식 달고 살았던 허약소년이 유럽 빅 리그서 종횡무진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에도 전문가들 '저돌적 돌파 능력' 극찬

지난 22일 새벽 3시, 수많은 국민들이 뜬 눈으로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07-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첼시 전을 관전했다. 멘유에서 뛰는 ‘국민영웅’ 박지성을 보기위해서였다. 끝내 박지성은 그라운드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우승컵을 안고 환호하는 그의 모습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찾았다.

그렇게 박지성은 축구 마니아 뿐만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축구를 뛰어넘는 희망의 판타지다.

이름 : 박지성

키 : 175cm

수원공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1999년 입학, 학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축구선수 박지성을 검색하면 이런 프로필이 뜬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펙’이다.

어릴 때부터 허약해 보양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그는 외모도 스펙만큼이나 평범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언제나 ‘꽃미남’, ‘톱스타’가 아닌 ‘훈남’이다. 그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남성들이 소개팅 나온 ‘평범한 여성’을 지칭할 때 ‘예쁜’이 아닌 ‘귀여운’을 수식어로 붙이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이 소박한 남자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장 열광하지만 그들의 애인과 절대 나눌 수 없었던 이슈인 ‘군대와 축구 이야기’ 중 ‘축구’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한민국을 축구 광풍에 몰아넣은 2002 한일월드컵의 주역이자 최대 수혜자이며 축구의 본가 유럽 무대를 밟은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백과사전에는 ‘대한민국 프로 축구선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본선에 PSV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참가해 AC 밀란과의 4강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득점을 기록했다. 2005년 6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 06-07 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고 부연 설명이 붙여져 있다.

■ 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박지성은 수원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6학년 때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으나, 왜소한 체격에 고 1때까지 심한 훈련이 성장에 영향을 줄까봐 수원공고 이원종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고 1때 그의 키는 158센티미터였다.

그의 체력 절반은 부모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박종성 씨는 지난 2005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강철 체력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려서 개구리 진액과 산삼을 먹였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지성은 이원종 감독의 추천으로 99년 명지대로 진학한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허정무 감독에 눈에 띄여 올림픽 대표로 선발됐다.

2000년 명지대를 휴학하고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한 그는 그곳에서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3년간 활동했다.

‘평범한 선수’ 박지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한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이적 초기 그는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매우 부진한 플레이를 펼쳤다. 팀 동료 마르크 판 봄멜이 박지성의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상 치료 후 페이스를 되찾으며 발군의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고 2004-2005시즌, 리그를 제패하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하는데 있어 공격진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그는 챔피언스 리그 4강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초반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한국인이 되었다. 박지성의 가치를 알아본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 성실함으로 체력·기량 키워

박지성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축구를 하면서 단 한번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몸 관리도 누구보다 성실했고 명지대 진학 전까지 통금 시간인 9시를 넘긴 적이 없었다. 맥주를 처음 마신 것도 대학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이런 성실함은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다.

박지성이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때, 국내 축구팬들은 박지성이 후보 선수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실제 2006년 9월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 이후 그는 부상과 수술, 재활과 복귀를 반복했다. 이런 시련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이번 시즌 그는 누구보다 빛나는 한 해를 맞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 해 후반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와의 원정 경기에서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서 유나이티드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기도 했다.

2008년 4월 9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4월 23일과 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합계 1-0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주 22일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07-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승을 차지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결승행을 밟는데 혁혁한 공의 세운 박지성은 아쉽게도 결승 무대를 뛰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박지성의 가치가 낮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영국 축구 칼럼니스트 밥 휴스는 20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실린 <한국인이 아시아 최초를 달성하게 될 것>이란 기사에서 박지성의 가치를 논했다.

그는 “박지성이 많은 골을 넣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아마 호나우두와 비슷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호나우두는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스타일도 뚜렷하다. 볼터치는 오만하기까지 하다. 반면, 박지성은 에너자이저(energizer)이고, 이기적이지 않고, 팀을 위해 봉사한다.

밥 휴스는 “박지성은 위험을 감지하고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양쪽 측면을 오가면서 풀백들의 수비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방으로 돌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그의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의 기를 꺾는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품성을 지녔다.

이제 박지성은 대한민국 축구 아이콘이 됐다. 이런 이미지는 뛰어난 기량만큼 성실함과 겸손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내 대중의 취향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그는 2007년 12월 선덜랜드와의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좋아하는 축구를 할 때마다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오늘도 역시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과묵한 청년의 말은 십년 간 보여준 모습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