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와 현대미술로서의 생존 가능성 모색

미술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화랑이나 옥션의 추이를 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대회화(서양화)가 주류를 이룬다.

서울의 전통적인 화랑가인 인사동은 물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강남의 주요 화랑들 역시 대부분 서양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전문 콜릭터 뿐 아니라 일반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미술과 수요자의 소통이 일방적이고 편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그만큼 동양화는 홀대를 받고 있다.

한국 회화사에서 전통의 본류는 동양화였다. 그 중 문인화는 ‘문인’이라는 시대의 엘리트가 당대의 덕목과 자신의 사상을 회화 형태로 표출한 독특한 양식으로 오랫동안 동양회화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해 왔다.

고려시대 이제현, 김부식 등의 작품에서부터 조선 전기의 강희안을 비롯,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17세기 이후 강세황, 이인상, 신위, 심사정 등을 거쳐 19세기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절정을 이뤘다.

,그렇게 위세를 떨쳤던 문인화는 역사 발전과 함께 ‘옛 영광’의 아스라한 기억과 기록속으로 밀려났다. 시대의 가치관이 변하고 ‘문인’의 비중과 역할이 예전과 달라진 까닭이다.

문인화는 형식으로는 지필묵을 중심으로 한 고유한 조형체계와, 내용으로는 독화(讀畵)라는 독특한 감상체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조형과 감상체계는 독자적인 완정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타 회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인화가 처한 암울한 현실은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것을 요구한다.

당신의 기념일 94x45cm 수묵 담채 2008

유강 유수종(53) 화백은 오랜 작업을 통해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문인화의 새로운 가치와 현대미술로서의 생존가능성을 모색해 온 드문 작가다.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전통적인 문인화가 시서화인(詩書畵印)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종합적인 조형체계라 한다면, 유수종은 그 중 화(畵), 즉 조형에 관한 부분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며 “이는 문인화를 단순히 여기(餘技)의 방편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 건강한 생존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라고 평가했다.

모필(毛筆)로 상징되는 전통회화의 심미관과 음양관으로 대변되는 동양사상을 사변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삼고, 이를 현대라는 어법에 맞게 재구성해 보는 것이 바로 작가가 지향하는 문인화의 새로운 경계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수종 화백이 전통적 문인화의 특장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전형을 표출하는 작업에 천착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유 화백이 전통적인 문인화의 형식에서 비껴가면서도 지나친 파격을 지양하고 경박한 실험을 경계하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 은사의 먹을 갈며 사군자를 그리면서 깨우친 문인화의 기본 정신과 품격을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은데 있다 할 것이다..

유 화백이 필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조형체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최근작 ‘당신의 기념일’ 이란 작품들에선 문인화에서 금기시되는 ‘하트’ 모양을 형상화하거나 규석, 장석 같은 광물성 안료와 특수한 물질을 배합해 사용했다. 대학에서 요업공학을 전공한데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예술에 접목한 셈이다.

유 화백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붓이 가는데로 조형이 자유롭고 작가로는 드물게 담묵(淡墨)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문인화가 중시하는 그만의 사의(寫意)로 해석되며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중국의 개성있는 화승(畵僧) 석도(石濤, 1642~1707)의 ‘일획론(一劃論)’을 떠올리게 한다.

「 그림이란 마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그 이치를 파고들면 결국 일획의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멀리 떠나고 높이 오르는 것도 모두 한 자 남짓한 거리에서 시작되며 일획은 천지개벽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다시말해 억만 번의 필묵도 일획에서 시작해 일획으로 끝난다 」

유 화백의 작품에는 점과 선이 역동적인 추상표현으로 된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현대추상미술의 선구자격인 칸딘스키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해 수용한 결과다.

탄생 90x35cm 수묵 담채 2008

유 화백이 문인화의 지평을 넓히는 주목할 작가로 평가받는데는 고루한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와 시대의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조형적 요구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문인화의 완고한 형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전형을 구축해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전통이라는 것이 시대를 따라 변할 뿐 아니라, 변화를 통해 새로운 기운을 수혈 받음으로써 그 생명력을 이어 가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유 화백의 실험과 모색은 충분히 긍정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유수종 화백은 경희대(교육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대학원 동양화과를 수학 중이며, 총 10회의 개인전을 비롯 다수의 국제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국 문인화대전 대상을 비롯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대전, IACA2007,1st International Art&culture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동방예술연구회 회원(월전미술관) 및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며, IACA International A&C 위원장(한국화)을 맡고 있다.

유 화백의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문인화는 월간 미술세계가 주최하는 ‘유수종 초대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인사동 공화랑에서 7월 16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