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5만 명 최다 관람 기록 · 국내외 유망작가 지원 · 공공미술관 전문성 · 대중성 선도

미술관은 그 나라 문화의 자존심이자 얼굴이다. 한 나라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위상에 따라 그 나라의 격(格)과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이는 21세기 문화중심 시대에 미술관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문화중심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 올해로 개관 20년째를 맞은 서울시립미술관은 1천만이 넘는 거대도시 서울의 문화중심지이자 한국의 문화대표 선수다.

그 미술관이 지난해 유희영 관장을 새 수장으로 맞아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한해 105만명이 시립미술관을 찾아 개관 이래 최고의 관람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국내 미술관 중 ‘즐겨찾는 미술관’ 1위로 꼽혀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미술관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국내외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신진작가들에 희망을 주고 한국미술의 국제화에도 앞장서는 거의 유일한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전문성과 대중성을 공유해야하는 공공미술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미술의 저변과 지평을 넓히는데 시립미술관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5일 미술문화의 신개념을 창출해가고 있는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을 만나 미술관의 비전과 한국 미술 전반에 관한 고견을 들어봤다

- 2007년 초 취임 후 1년 반 가량이 지났습니다.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입니까

“미술관이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를 위해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양질의 전시회를 열고 미술감상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했습니다. 아울러 전시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신진작가를 지원하는데 힘써왔습니다”

- 부임 후 성과를 자평하신다면

“외부 출장교육인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의 성공적인 운영과 신진작가들의 전시활동, 작품활동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가동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 서울시립미술관은 공공미술관으로서 전문성과 함께 대중성을 결합해 문화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보는데 전문성과 대중성의 조화에 대한 견해를 말씀하신다면

“미술관에서 전문성을 갖춘다는 것은 크게 세가지를 말합니다. 즉, 수준 높은 작품을 전시하고, 양질의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인구의 확대를 위한 교육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전문성은 미술관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 기능이고, 더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전시를 한다해도 관람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전시기간 중에는 전문해설가를 배치해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작품감상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눈높이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미술관에서 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봅니다. 우리 미술관은 이러한 기본 기능에 항상 충실히 하려고 하고 있고 대중성의 문제는 바로 이 기본이 갖추어졌을 때 저절로 확보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술관의 대중성과 관련해 취임하시면서 ‘찾아가는 미술관’등 미술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여 시민과 소통하는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신다면

“‘찾아가는 미술관’의 취지는 크게 두가지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미술관에 오고 싶어도 사정이 허락지 않는 대상을 직접 찾아가자는 것이었고, 둘째는 미술감상을 어려워하는 분들께 눈높이에 맞는 감상법을 알려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에 얽매인 직장인과 저소득 맞벌이 부부의 초등생 어린이들을 일차 대상으로 삼았지요. 작년에는 직장인강좌 30여 회를 통해서 약 3,000여 명의 직장인 수강생을 만났고, 어린이강좌 10여 회를 통해서 약 1,000명의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반응이 워낙 좋아 올해는 횟수를 좀더 늘려서 직장인 강좌 40여 회, 어린이 강좌 20여 회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찾아가는 미술관의 수강 대상을 매년 확대하고, 강좌 회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서 궁극적으로 미술감상인구가 저변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서울시립미술관을 전시 외에 각종 문화행사, 작가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구체적인 성과와 진행 상황은 어떠합니까

“먼저 문화행사에 대해 말하자면 서울시 중심에 위치한 공공기관으로서 천만 서울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년 봄, 가을 두 번에 걸쳐서 음악회를 개최해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고, 어린이날이 되면 페이스 페인팅과 같은 행사를 여는데 매년 수백명의 어린이와 가족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외국인을 위한 미술강좌를 열고 있는데 도자기, 서예 등을 통해 한국의 전통미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도 활성화하고 있는데 해마다 전국에서 배출되는 1만2,000여명의 작가 지망생 중 형편은 어렵지만 유망한 신진작가들에게 전시를 열 수 있도록 전시장소 대관비와 도록 제작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작가를 위한 상암동 난지 창작 스튜디오를 최근 증설 개관해서 현재 30여개 독립 스튜디오가 활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파리 씨테 데라르(세계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에 한국 작가를 위한 몇 개의 스튜디오를 확보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세계 유수의 창작 스튜디오와 연계해서 한국 현대 미술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나갈 계획입니다“

- 취임의 주요 정책으로 각국의 대표적인 공공미술관과의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을 동북아 허브 미술관으로 추진하겠다고 하셨는데 진척 상황이 궁금합니다

“취임 초인 작년 봄에 시티넷 아시아 교류전이 열린 바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 교류전은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표 작가들을 초대해서 동시대 아시아미술의 현주소를 소개하고 이들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는 격년제 미술제인데 매우 성황리에 전개되었었습니다. 또 올 해의 경우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나 퐁피두 전시와 같은 범 국제적인 미술제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국제적 규모의 전시와 행사를 서울시립미술관이 주도해서 꾸준히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하는데 전시의 ‘기준’이 있는지요

“기준이라기보다는 현대미술관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조화롭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보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미술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대중성과 예술성을 잘 조화시키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작품을 전시하고 고품질 작품을 수집하며 그러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 재임 기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반 고흐전입니다. 전시 100일 동안 82만명이라는 국내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는데 오픈 당시 네덜린드 반 고흐 미술관장에 물어보니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은 1년에 100만명이 다녀간다고 합니다. 반 고흐가 세계적 거장이지만 3개월여만에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이 찾은 것은 시민들의 높은 안목과 수준 높은 문화에 대한 감상 욕구를 말해주는 것으로 미술애호가들의 저변확대에 큰 계기를 마련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운영과 관련, 일각에서는 공공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전시, 특별전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을 잘못 알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미술관은 한 해에 자체기획전, 연례기획전, 신소장품전, 특별전을 합쳐 대략 15개 정도의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82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불멸의 화가 - 반고흐’전에서처럼 특별전은 우리 시민들이 양질의 예술 감상 욕구와 향수를 충족시켜주는 의미가 있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세계적 문화도시 서울의 위상에 걸맞는 미술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여행이 자율화되고 많은 시민들이 세계유수의 미술관을 가본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관의 특별기획전이 양질의 작품으로 더욱 자주 열려야 하는 책임도 일정부분 있다고 봅니다.

우리 미술관에는 전시담당 큐레이터 6명이 한사람당 연간 2~3개의 기획전과 연례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초대한 작가만해도 1년에 국내외 500여 명에 이릅니다. 그 전시내용 또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수준 높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특별전이 성황을 이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다른 많은 전시들이 간과되고 그래서 마치 시립미술관이 상업성이 농후한 특별전만을 기획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에 관장으로서 섭섭하고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 미술관은 한 나라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민족의 정체성과 지혜를 계승 발전시키는 곳으로 그 나라 문화의 자존심이자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을 한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우리 미술관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더불어 서울이라는 문화도시가 갖는 컬러를 전달하는 기본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우리의 목소리와 이미지를 당당히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 세계 유수의 공공미술관과 비교해 서울시립미술관이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최근 반 고흐전에 82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은 공공미술관 개관 이래 전무후무한 일로 우리나라 미술관객의 수준이 선진국 못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한 시민들의 높아진 수준에 걸맞는 전시를 계속하고 아울러 세계 공공미술관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관을 다양한 측면에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전문인력의 충원과 예산 확보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도쿄, 베이징 미술관 정도의 내용과 규모를 갖추려면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잇어야 합니다“

- 한국 미술계의 현실과 관련, 화단의 원로로서 미술계 발전을 위해 고언을 해주신다면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 파리, 런던을 가보면 19~20세기 근ㆍ현대 미술이 건강하게 공존하고 있어요. 파리만해도 19세기 인상파 그림이 많은데 이것은 현대미술을 수용하면서 과거의 것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마인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에반해 우리의 현대미술은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양성이 부족하고 변화, 발전하는데 균형을 잃은 것 같아요. 미술의 흐름을 급하게 받아들이고 급하게 잊다보니 다양성이 부족하고 한쪽으로 편향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한국미술이 보다 국제화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있다면

“한국작가만이 품어낼 수 있는 독창성과 우리의 정체성을 발휘해서 국제 무대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내년 1월이 임기인데 남은 기간 동안 중점을 둘 분야는

“불교에 ‘초발심(初發心)’이란 말이 있듯이 임기 초에 구상했던 일들을 끝까지 중심을 잃지않고 완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미술관의 국제교류를 보다 다각도로 추진하는 기회를 찾고자 합니다“

■ 유희영 관장 약력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하학적인 색면추상 미술의 한국 대표적 화가로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국전에 데뷔해 1974년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국전 심사위원과 초대 작가를 지냈고 13회의 국내외(서울ㆍ뉴욕ㆍ파리) 개인전을 가졌다. 이화여대 미술학부 교수와 미술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있다.


박종진 부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