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역이용 삶 통찰, 프랑스서 15년간 활동 '귀국 1년 만에 개인전'

‘모국’이 지닌 구심력때문일까. ‘중력작가’ 전강옥(43)이 돌아왔다. 촉망받는 재불 조각가로 15년간 프랑스에서 활동, 고국에 돌아온지 약 1년만인 지난 6일부터 귀국 후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중력작가라는 타이틀은 프랑스 생활 15년 내내 그를 따라다닌 이름. 프랑스의 중견 미술평론가 미셸 비올라는 ‘이 시대의 진정한 조각가’라 칭했고, 비평가 아르멜 마냥은 ‘중력의 거대한 원리를 마술처럼 풀어냈다’고 평한 바로 그 작가다. 이번 전시회를 두고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또한 ‘물리적 진실을 넘어 삶에 관한 통찰을 이끄는 작품들’로 평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단순하고 엉뚱하며 이해하기 난감한 그의 작품들은 그러나 알면 알수록 관람자 내면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자극시킨다. 이번 <중력展>은 서울 관훈갤러리에서 12일까지. 사실상 국내 미술계에 대한 공식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그를 전시현장에서 만났다.

- 어떤 전시회인지 직접 간단히 소개한다면.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주제로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세분화하여 표현한 작품전이다. 운좋게도 귀국하자마자 국립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장기 입주작가로 선정돼 1년간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었고, 귀국전 준비로 고민하던 차에 공교롭게도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올해 처음으로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바로 그 첫 혜택을 입는 대상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주로 5년전부터 제작하거나 구상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 굳이 중력이라는 주제에 애착을 가진 이유는?

“중력이란 사실 조각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화두다. 작품을 만들 때 돌이나 쇠 등 대개 딱딱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막상 자기 작품을 세우자면 항상 중력, 즉 균형의 문제와 맞부딪칠 수 밖에 없다. 조각가들은 누구나 이 중력의 문제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누구나 항상 갖고 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이 근본적인 문제에 가장 마음이 쏠렸고, 이 본질적인 중력, 즉 균형의 주제를 정면으로 붙잡고 풀어보고 싶었다”

- ‘삐딱하게 서 있기’라는 작품의 경우, 책장은 곧 넘어질 듯 기우뚱한데 그 안에 꽂힌 물건들은 다들 말짱하게 안정돼 있다. 접착제로 붙인 것인가?

“다들 그런 줄 아는데, 아니다. 풀이나 접착제 같은 것은 전혀 쓰지 않았다. 순전히 내 손으로 균형을 맞춰 세운 것들이다. 중력의 원리를 역이용한 셈이다. 워낙 장기간동안 이같은 작업을 하다보니 작업이든 일상에서든 뭔가 균형을 맞추는덴 도사가 다 됐다(웃음)”

들추어진 벽돌(위 왼쪽), 무게, 메스, 공간(위 오른쪽), 라퓨타(아래)

- 그럼 지금 저기에 살짝 손이라도 대면 넘어지게 되나?

“ 그렇다. 저 삐딱한 책장 안에 놓인 병들은 각각의 무게, 간격, 위치 등을 일일이 아주 정확하게 맞추어 균형을 잡은 것이다. 그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전시작품도 누가 건드리면 바로 다 무너지게 돼 있다”

- 듣고보니 공연히 더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근질거린다.

“(웃음) 사실 그래서 전시 중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진짜 아무 접착제도 안 썼을까’ 궁금해서 건드려보는거다. 다른 작가들은 전시회를 했다하면 주로 작품이 팔렸느니 어떻느니 하는 전화가 걸려오지만, 나는 전시회만 했다하면 항상 받고 싶지 않은 전화들만 걸려온다. 주로 ‘부서졌다. 빨리 치워야된다’ 그런 전화다.(웃음)”

- 이렇게 아슬아슬한 작품만 만드는 이유는 또 무엇?

“피사의 사탑이 유명한 것은 그것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 작품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도 불안정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안정과 완전함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예술도 안정감이 핵심이다. 나는 그것을 반대로 뒤집어 본 것이다. 똑같은 추상적 주제라도 어려운 표현보다는 보다 사람들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접근하며 예술과 친해질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 프랑스에서 장기간 활동하다가 들어왔는데,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혹시 외국과 국내 관람객들의 차이가 있나?

“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외국인들은 물리학적인 점에서 접근하고 해석하는 반면,한국 관람객들은 선(禪)이라든가 정적인 어떤 의미로 풀이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일단 다들 신기해한다는 점이다. 갖고 싶다, 사고 싶다 그런 것이 아니라 놀라움, 신기함 그런 것들이다.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면 바로 호감을 느끼고 곧잘 다가간다. 그래서 사고가 많이 난다”

- 설치 미술 등 추상적 미술이라면 일단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적지않은데.

“사실 난해한 면이 있다. 특히 사전 이해가 없으면 일반인들에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만한 부분이 있다. 이번 전시를 예로 들면 나 역시 내가 관객들을 불안케한다는 것을 안다.(웃음) 하지만 한여름이면 무섭고 잔혹한 줄 뻔히 알면서도 공포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가. 내 작품도 공포영화를 즐기는 심정처럼 유쾌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 앞으로의 일정이나 계획은?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 주제를 좀 더 심도있게 다뤄서 한국 미술계의 다양성에 일조하고 싶다. 좀 더 좋은 전시, 큰 전시로 꾸준히 활동하고자 한다”

■ 전강옥 약력

프랑스 파리 판테온 소르본대 조형예술학 박사(2001). 프랑스 ‘예술과 실험 갤러리’ <금속의 뱀(1996)>개인전을 비롯, 프랑스내 개인전 약 10회. 프랑스 파세의 비엔날레 죈크레아시옹 다르플라스틱, 포낭(2000) 참여 등 단체전 및 살롱전, 비엔날레 참여 50여회. 파리 살롱 죈 크레아시옹 비평가상 수상 등 수상경력 다수. 파리 살롱 드 죈 크레아시옹 운영위원 등 활동(2001-2003). 2007년 귀국.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4기 장기 입주작가. 동아대와 경원대 등에 출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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