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디자인책 첫인상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유행따라 쏠림 현상 심해

“그다지 큰 공을 들인 디렉팅이 아니었다.”

11일 오전 대학로의 한 북카페에서 만난 북디자이너 정은경(33.여)씨는 의외의 대답을 털어놨다. 그는 정이현씨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의 북 디자인의 성공 비결을 묻자 그렇게 대답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만하다. <달콤한 나의도시>는 정이현 씨가 한 일간지에 연재해오던 소설로 이미 인기를 끌었다. 권신아 씨의 동화적인 일러스트 역시 신문 연재 당시부터 소설과 함께 했었다. 2006년 7월에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표지와 내지의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주목 받아왔다.

그런데 알고보니 겸손의 말이었다. 아기자기하고 예쁘면서도 소설의 분위기까지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달콤한 나의도시> 표지는 책으로 출간하면서 다시 그려진 삽화였다. 작품의 제목과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북디자이너가 저자, 편집자와 일러스트 사이의 조율을 거쳐 내놓는 게 북 디자인이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북디자이너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을 거쳐야 한다.

“운명처럼 일이 나를 찾아왔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북 디자이너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정 씨의 대답 역시 의외였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출판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책을 디자인 할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때로는 세상에 첫 작품을 내놓은 작가의 떨리는 시작에 함께하는 재미에 빠진지도 올해로 8년이다. 정 씨에게서 북 디자인의 세계를 소개받는다.

정 씨는 <문학과 지성사> 미술부 소속으로 그동안 200여 작품의 북 디자인을 담당해왔다. 그의 대표작은 <풍선을 샀어>(조경란.2008), <친절한 복희씨>(박완서. 2007), <장국영이 죽었다고>(김경욱. 2004), 대산세계문학총서시리즈, 최인훈 전집(발간예정) 등이다.

- 북 디자이너와 전공은 별 상관이 없는건가

물론 디자인을 전공했거나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좋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고, 내가 북 디자인 실무를 배운 선배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저자의 창작의도를 잘 이해하고 이를 책의 디자인을 통해 구현하는 게 북 디자이너다. 문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소양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다.

- 북 디자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트 디렉터다. 원고를 제대로 파악하고 편집자의 제목 의도를 잘 이해한 후에 디자인을 기획하고 일러스트를 의뢰해 책이 나오기까지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편집의 마지막 단계인 북 디자인을 통해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디렉팅하는 일 역시 우리의 몫이다.

- 북디자인 과정을 설명해달라

초고를 거쳐 재고가 나오면 북 디자인을 시작한다. 원고를 읽고 내용과 제목에 어울리는 일러스트를 의뢰하기도 하고 직접 하기도 한다. 보통 디자인 과정에 2주 정도가 걸린다.

- 잘된 북 디자인을 꼽는다면

표지 뿐 아니라 내지를 포함해 책 전체가 일관성 있게 작가의 의도를 잘 표현한 디자인이다.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가 있었는 데 이런 측면에서 전범과 같았다.

- 좋은 북 디자인의 공통점이 있나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디자인이다. 책을 봤을 때 서체든 그림이든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게 좋다. 서점에 깔린 여러 책 중에 주목받는 비결이다. 간결하게 핵심을 강조하려면 절제가 필요하다. 뭔가 잔뜩 집어 넣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 돈은 얼마나 드나

보통 10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까지다. 양장을 포함한 디자인을 할때는 1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가 든다. 인쇄비를 포함한 출판비가 600만원에서 1,000만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작다고만 할 수는 없다.

- 북 디자이너들은 제대로 대우받고 있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나 역시 3년차때까지는 박봉이었다. 디자이너에 따라서 한 작품당 들어가는 금액은 5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출판시장 자체가 커야 대우도 좋아질 것이다.

- 서점에 <달콤한 나의 도시> 표지와 비슷한 디자인의 책이 많더라

우리나라는‘쏠림 현상’이 심하다. 칼리그래피가 유행하면 다 따라가고, 동화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우후죽순으로 같은 유형의 북 디자인이 쏟아진다.

- 선진국은 어떤가

일본은 북 디자인이 매우 전문화돼있다. 50살 넘어서까지 한가지 북 디자인 스타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북 디자이너를 작가로 인정한다. 한국에서는 한 디자인 스타일을 고수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 어떤 보람으로 일하나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과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작품에 따라 매번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점도 매력이다. 누군가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글을 책으로 소개한다는 생각이 들때는 떨리기도 한다.

- 북디자인은 왜 중요한가

독자와의 첫대면이자 책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뿐 아니라 종이 질 등 책의 물성까지 고려한 디자인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독자는 오감으로 책을 느낀다.

- 곧 방영될 TV드라마에서 문소리 씨의 극중 역할이 북 디자이너라는데. 자기애가 강한 에고이스트라더라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이 될만큼 화려한 세계가 아니다. 컴퓨터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어깨가 펴지지 않을 정도로 일하는 노동자다. 양질의 디자인이 나오려면 매진해서 몰두하다보니 자기에게 쏟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북 디자이너가 에고이스트라면 일감을 계속 맡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작품에 대한 자기 고집도 있어야겠지만 책 제작 과정의 중간자로서 최고의 커뮤니케이터가 돼서 설득해야 한다. 북디자이너는 갑이 아닌 을의 세계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