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스승과 제자 인연 30년… 우리시진흥회 활동하며 예술 동반자로 발전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시(詩)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이다. 이른바 ‘시화일체(詩畵一體)’.

이와는 다르지만 시인과 화백으로 각각 살아오면서 마치 한 몸처럼 적잖은 삶을 공유해 온 이들이 있다. 홍해리(65) 시인과 박흥순(55) 화백의 인연이 그렇다. 두 예술가는 고등학교 스승과 제자로 만나 30여년을 함께 활동해오고 있다.

69년 시집 <투망도>로 등단, <우리들의 말>을 비롯해 최근 <황금감옥>을 발표한 홍해리 시인은 86년 시 동호회 ‘우이시회’에서 발전한 ‘우리시진흥회’에서 20여 년 째 활동 중이다.

서양화가 박흥순 화백은 이 활동을 묵묵히 돕는다. 홍해리 시인의 작품집 삽화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시진흥회 회원의 연락도 화가인 박흥순 화백이 담당한다. 실과 바늘 같은 그들의 인연은 우이동 시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이들의 인연을 이어가게 한 것일까? 두 사람을 박흥순 화백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 30년 인연


“청주 세광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박 화백이 그 학교 마지막 제자였죠. 여기 졸업앨범. 난 영어를 담당했는데, 박 화백은 그때 미술을 하던 학생이었죠.”(홍해리 시인, 이하 홍)

두 사람의 인연을 묻자 홍해리 시인은 72년도 졸업앨범을 꺼내 보여준다.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교사와 밤톨같이 고운 청년 하나가 있다. 그는 이내 30여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지금도 수염 깎으면 예쁘게 나올 텐데……. 아마 학적부를 찾아보면 분명 이렇게 썼을 거야. ‘위 학생은 착실 근면하며 미술에 특기가 있음’. 미술반 반장이었는데, 모범생이었지.”(홍)

“미화부장이라서 졸업하면서 공로상을 받았었죠. 1학년 때는 우등상도 받았는데 3학년 때는 결석을 많이 해서 우등상은 못 받았어. 그때 선생님은 꽤 무서운 분이셨죠.”(박흥순 화백, 이하 박)

졸업 후 중앙대에 입학한 박흥순 화백은 고학을 하며 힘이 들 때면 가끔 홍해리 시인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홍해리 시인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하며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박흥순 화백은 화가를 꿈꾸는 미술학도였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보통의 고등학교 스승과 제자였다.

두 사람의 인연이 특별해진 것은 뜻밖에도 박 화백이 군대에 있었던 1975년이다. 박 화백이 홍해리 시인에게 보낸 두툼한 편지 봉투에는 홍 작가가 <현대문학>에 발표한 장편 시 ‘보리밭’을 필사한 장문의 글이 실려 있었다. 이후 박 화백이 제대한 후 두 사람은 서울에 오게 됐고, 홍해리 시인이 성신여중고 영어 교사로 근무할 무렵, 박 화백도 근처 미술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자주 만나게 됐다.

홍해리 시인은 이생진, 채희문, 임보, 박희진 등 친분이 있던 시인을 박흥순 화백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박 화백의 화실로 우이동 시인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박 화백도 우이동 시인들의 모임인 ‘우리시진흥회’의 화가 멤버가 됐다.

“우리시진흥회의 시화전은 물론이고, 내 시집의 삽화를 해마다 그렸지. 선생 잘못 만나서 고생 많이 했지.” (홍)

“작업실 청소를 하거나 삽화를 그리는 도움을 드린 적이 있어도 늘 선생님이 절 도와주셨죠. 작업실로 다른 시인들도 많이 오셨는데, 제가 자취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김치찌개 끓이고 어른들 즐겁게 먹는 분위기를 좋아했어요.”(박)

인터뷰를 구경나온 임보 시인(전 충북대 국문화 교수)이 거든다.

“두 분이 서로 잘해. 제자는 스승을 잘 모시고, 또 스승도 제자를 끔찍하게 생각하지. 가만히 보면, 저 양반이 어디를 가도 혼자 가지 않고 꼭 박 화백을 대동하고 말이지, 그림자처럼 다녀. 박 화백이 김치찌개를 기가 막히게 잘 끓여. 그럼 또 나는 김치찌개에 소주 먹고 싶어서 작업실 가서 해달라고 하면서 어울려 지냈지.”

■ 예술세계 알아주는 지음


박흥순 화백, 홍해리 시인

박흥순 화백의 작업실 한 켠에는 홍해리 시인의 사무실이 있다. 박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홍 작가는 시를 구상한다. 벌써 네 번째로 옮긴 이 사무실에서 5년을 함께 작업했다. 30여년을 동고동락한 이들은 작품도 닮아 가는 듯하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말해달라는 부탁에 홍해리 시인이 먼저 입을 연다.

“박 화백 그림은 그냥 보통 그림이 아니고 정신이 들어있어요. (2003년 작 ‘쇠똥구리’를 가리키며) 저기 작은 그림 속에 세상이 들어있습니다. 영국 쇠똥구리와 미국 쇠똥구리 두 마리가 지구를 굴리고 가잖아요? 민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이걸 전하려는 의도가 있지요. 그런 정신이 깃든 그림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도 많아요. 책상 위에도 박 화백 그림이 있습니다.”(홍)

박 화백은 말을 아낀다. 그는 “시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말로 에둘러 존경심을 표현했다.

“전 시인을 오랜 세월 봐왔지만, 정작 시를 잘 몰라요. 선생님의 시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형태를 갖고 있고, 시인 정신을 지키고 있죠. 주변에서 어떻게 몇 십년을 사제지간으로 지낼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은사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선생님과 주변 시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죠. 이분들과 여러 인생경험을 많이 합니다.”(박)

담담하게 대답을 하던 두 예술가는 인터뷰 내내 “30년 세월을 어떻게 말 몇 마디로 풀어낼 수 있겠냐”고 추임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수십 년 세월을 말하기에 두어 시간의 인터뷰는 분명 아쉬운 감이 있다.

“내가 없었으면 더 좋은 제자 만나서 더 좋은 분위기에서 지낼 수도 있지 않았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 한번 뵙기도 어려운 분들을 가까이서 모시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은 거야. 그걸 젊은 사람이 계산 한다고 해도 손해라고 볼 수 있겠나, 싶죠. 유익하고 남들이 부러워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박)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