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부터 40년간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현대 연극새지평 열어

산울림극단의 임영웅 대표(75)는 국내 연극계 최장수 연출가 중 한 명이다. 1955년 연극 ‘사육신’으로 데뷔한 그는 66년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며 국내 처음 창작뮤지컬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69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40년간 연출하며 ‘고도의 완성도’를 선보이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국내 연극계에서 “현대연극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아일랜드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월 21일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모교에서 공연을 갖는 연출가 임영웅 씨를 신촌 산울림극장에서 만났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기자보다 일찍 도착해 카페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시키자, 곧 봉투에서 프로그램을 꺼낸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방문자’ 프로그램이다.

“신연극 100주년 기념으로 산울림에서도 기획시리즈를 공연하고 계시죠?”

“한국의 대표적인 연출가 중에서 연배 순으로 내려가면서 연출작품을 올려요. 현재 확정된 건 5명인데, 올해 공연은 3명. 6월 17일부터 7월 27일 ‘달이 물로 걸어오듯’으로 내가 맨 처음 스타트를 끊고, 지금 심재찬 씨가 연출한 ‘방문자’를 공연하지요. 10월 7일부터는 김광보 씨가 연출한 ‘죠반니’를 올려요.”

■ 유치진 권유로 연극 시작


연출가 임영웅 씨가 연극에 입문하게 된 것은 휘문고 3학년 시절 만난 동랑 유치진 때문이었다. 우연히 유치진 선생의 좌담회에 참석하게 된 그는 좌담회 이후 유치진의 권유로 서라벌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연출공부를 하던 55년 전국 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서 휘문고등학교의 ‘사육신’을 연출하면서 데뷔했다.

“우리 집이 음악가 집안에요. 아버지가 임태식 씨라고 재즈의 초창기 개척자이거든요. 일본에서 더 유명했는데, 클라리넷과 재즈를 전공해서 ‘동양의 베니굿맨’이라고 그랬데요. 숙부가 서울예고 만들고 KBS 교향악단 만든 임원식 씨예요.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희 때는 예술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음악하고 싶었는데. 연극은 유치진 선생이 연극하라고 하니까, 연극계에서는 하늘같은 분이시니 전공했죠.”

이후 그는 58년 세계일보와 조선일보, 대한일보의 문화부 기자를 거쳐 63년 TBC 개국 후 드라마 피디로 자리를 옮겼다.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게 된 것은 TBC 드라마 피디로 활동하면서다. 당시 김종필 전 총리가 투자한 뮤지컬 전문극단 예그린의 첫 번째 공연작품으로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선정됐다.

그러나 제작 발표 후 연출자 개인 사정으로 공연준비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임영웅 씨는 방송국의 허락을 얻어 방송국 스케줄이 끝난 시간에 이 작품을 연출했다. 당시 제작비 300만원, 총 출연자 300명의 대작이었다.

“누가 와서 연출하나, 긴급회의를 했는데 ‘임영웅이면 할 수 있거다’ 그랬데요. 우리 집이 음악가 집안이니까. 그리고 유명연출가는 남이 하던 작품, 제작발표회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제가 한 거죠.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데 오케스트라 60면, 합창단 120명. 지금도 그런 규모로 만들기 쉽지 않죠. 그건 예그린이란 특수한 극단이라서 그래. 1,2회 공연이 패티김, 세 번째 김상희 주연까지가 제 작품이에요.”

■ '고도'의 연출가



연출가 임영웅을 말 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다. 69년 연출을 시작해 올해로 꼭 40년째 이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일본과 아비뇽 페스티벌 등 공연으로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향 아일랜드에서 이 동양의 연출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 일터. 90년 더블린페스티벌 초청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더블린 초청 당시 현지 언론은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로 공연의 완성도에 대해 호평했다.

그의 연극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한국일보 사옥에서 초연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한국일보 사옥을 신축하며 임영웅 씨는 개관공연을 연출하기로 했고, 이 작품이 선정됐다.

“그때 주간한국에 ‘시인만세’라는 행사를 했거든요. 내가 그 행사를 연출하고, 당시 김성우 편집장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회사 사옥에 극장이 있는데 개관 공연을 연극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극장이 아주 귀할 때에요. 귀가 번쩍해서 한국일보로 갔죠. 350석인데 아담하고 좋더라고. 근데 연극전용극장이 아니니까 시설은 좀 부족해. 그래서 무대가 좁고, 등장 인물이 적어야 하고, 장치가 간단해야 하고, 뭔가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도’가 나왔죠.”

초연 일주일을 앞두고 사무엘 베케트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임영웅 씨는 “연극하면서 표 다 팔고 공연하는 건 ‘고도’ 초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웃었다. 40년간 연출을 해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고도’는 새롭다.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그는 자신의 변해온 인생관과 연극관이 작품 속에 그대로 묻어나온다고 믿는다. 인생을 보는 눈이 좀 더 원숙해 졌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러 번 보는 관객이 많아요.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하죠.”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연극이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고도는 현대 사회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연극 100년을 맞은 소감을 물었다.

“100년을 계기로 해서, 우리가 지금 제대로 연극을 하고 있는가, 연극다운 연극을 하고 있는가. 각자 생각해보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이 현란한 시대에 결국 어떤 식으로 연극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다짐해보고 점검해 보는 한 해가 됐으면 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