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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 몸을 캔버스 삼아 세상을 창조하다
윤현선- '올드스쿨', '뉴스쿨' 장르 주로 하며 사진 작업과도 접목
강정은- 유럽에서 타투 공부한 유학파, 순수 예술 승화에 관심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1- 윤현선 씨 타투 사진작품
2- 윤현선 씨
3- 윤현선 씨 문신가게 프로젝트 사진 작품
4- 왼쪽 가슴과 팔에 타투를 한 강정은 씨의 모습
5- 강정은 씨
6- 타투를 한 강정은 씨의 손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출처 : 2005년 만화계엔 무슨 일이? - 오마이뉴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타투(tattooㆍ문신)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마치 어둠의 세계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이단행위라고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젊은이들은 서서히 자기 개성을 표현하기 좋은 패션 코드로 타투를 이해하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의 몸에서도 타투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경가 타투와 아티스트를 결합시킨 타투이시트(tottooist)란 신조어도 생겼다.

타투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타투이스트들이 모여 전시를 하거나 아티스트들이 타투라는 소재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캔버스 대신 사람의 몸을 예술표현의 장으로 선택한 이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봤다.

■ '문신가게' 프로젝트에 사진 전시

서울 지하철 합정역 인근 한 건물의 지하실에 포토그래퍼 윤현선(32) 씨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팝아티스트 양아치, 김태중 씨와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다. 작업도 하고 숙식도 하면서 대개의 시간을 지하 작업실에서 보낸다는 윤현선 씨의 또 다른 직함은 타투이스트이다. 그는 ‘문신가게’나 ‘타투 아트 홍역展’등 여러 차례 타투를 주제로 한 전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윤 씨가 처음 타투 문화를 접한 것은 독일에서 반영구 화장법을 배워 온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이ㆍ미용 업계에서 마당발 사업가로 유명했던 어머니는 타투를 처음 연습할 대상으로 아들을 선택했다. 윤 씨의 어깨엔 어릴 때부터 그의 영웅이었던 슈퍼맨을 상징하는 마크가 새겨져 있는데, 그건 윤 씨 어머니의 작품이다.

타투를 처음 받고 나니 자신도 직접 시술해보고 싶었다는 윤 씨는 그때부터 독학으로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조가죽이나 마네킹 등에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살에 직접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가 찾은 대상은 바로 자신의 몸이었다.

타투의 장르엔 트라이벌, 이레즈미, 커버업, 올드스쿨, 뉴스쿨, 다크, 프리핸드 등이 있는데 윤 씨가 즐기는 타투는 ‘올드스쿨’이다. “옛 선원들의 팔뚝을 보면 하트에 화살이 들어간 컬러 문신이 많잖아요? 약간 코믹한 타투죠. 촌스럽지만 전 왠지 올드스쿨과 그걸 현대식으로 풀어낸 뉴스쿨을 좋아해요.”

대학을 나오지 않고 광고사진을 전공한 윤 씨가 타투이스트가 된 데는 아티스트 김준 씨의 힘이 컸다. 그는 15년 이상 문신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온 작가로도 유명하다. 김준 씨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문신가게’에 윤 씨의 사진이 걸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 사진을 보고는 미술이 무언지도 모르는 제게 ‘너, 미술해라’라고 말씀하셨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을 찍든, 타투를 하든 모든 작업을 편하게 ‘김쌤’(김준)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거고요.” 김준 씨는 그의 사진을 보며 “흉내내지 말고 너의 생각으로 찍어라. 그게 더 매력 있다. 제도 교육을 받은 애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작업을 해라”라며 용기를 주곤 했다.

이제 윤 씨에게 타투는 포토그래퍼인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주로 전시를 위한 타투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이젠 설치미술이나 조소작업 등 타투를 소재로 다양하게 영역을 넓혀나가고 싶어요. 내년쯤 제가 직접 기획한 ‘문신가게’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싶기도 하고요.”

윤 씨는 “타투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말한다. 모든 타투이스트는 예술가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작품만을 만들어낼 작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윤 씨는 “타투를 소재로 한 작업에 전념하며 다양한 전시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마치 그의 몸에 새겨진 해적의 모습처럼 익살스럽게 웃으며.

■ 몸에 새겨지는 모든 것은 '추억'

“저는 타투이스트는 아닙니다. 아티스트로서 저의 작업이 타투일 뿐이죠.” 강정은(27) 씨의 집이자 작업실은 서울 가회동의 아담한 한옥이다.

홍익대 인근 작업실에선 주로 타투와 드로잉 페인팅 작업을 하고 고즈넉한 가회동 집에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처마 끝에 단청을 입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일상 자체를 예술로 여기는 ‘생활예술가’ 같았다. 패션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제 스타일(오래 전부터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골동품 느낌의 패션)을 즐긴다.

“제가 하는 타투는 굳이 장르를 정하자면 ‘메이드 인 홈 타투(made in home tattoo)’라고 할 수 있어요. 타투 전문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닌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하게 이뤄지는 작업이니까요.”

‘낙서’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강 씨의 몸에는 집과 산과 해가 단순한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뿐 아니다. 그가 좋아한다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쉴레의 드로잉 작품과 영화 <메멘토>를 연상시키듯 팔뚝과 손가락에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강 씨는 마치 자신의 몸에 페인팅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 같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바디 페인터와 누드 크로키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강정은 씨에게 몸은 생각을 담아내기 좋은 캔버스나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스티커 붙이기에 흥미를 가졌던 그에게 몸에 새겨지는 모든 것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몸에 난 흉터조차도 그는 추억과 아픔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종이를 찾다 우연히 손바닥에 쓴 메모나 몸에 난 점이나 종기, 심지어 홍역을 앓고 난 몸까지도 그는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새겨지는 모든 것은 강 씨가 생각하는 넓은 의미의 타투였다. 그런 흔적을 찾아가는 것에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는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해 전시하고 아트북을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큰 매력을 못 느꼈어요.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선택했죠. 3개월 동안 랭귀지 코스를 밟고 있을 때 틈이 나면 독일이나 스페인 등을 여행하면서 유럽의 타투 문화를 접하게 되었어요. 타투 스튜디오에 들러 여러 종류의 타투도 직접 체험했고요.”

그러는 동안 굳이 학교에 입학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아트’를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파리에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낭시란 도시에 집을 얻은 그는 본격적으로 타투라는 장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의 낙서들, 낙서 위에 새겨진 또 다른 낙서들, 우연이지만 마치 필연처럼 새겨진 모든 것을 찾아 사진을 찍었고, 타투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유럽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어깨 너머로 유럽의 타투 스타일을 익힌 셈이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한국의 타투이스트를 만나기 시작했다. 갓 귀국한 그에게 기회는 여러 곳에서 다가왔다. “타투 관련 전시회나 단체전에 타투와 퍼포먼스 작가로 참여했어요. 제 몸에 그린 타투를 통해 또는 스티커와 도장을 찍어보면서 몸에 새겨 넣는 놀이로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죠.”

강 씨는 타투를 하면서 돈을 받지 않는다. 자신은 타투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가끔 강 씨의 독특한 타투에 매력을 느껴 찾아오는 사람 중에 성의라며 돈을 지불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난감했지만 지금은 전시를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도 배웠다.

“돈에 대한 유혹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저의 작업은 제가 만나고 소통하는 타인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거래는 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한 타투 작업은 아트북이나 아트엽서, 영상작업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될 예정이거든요.”

그의 바람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타투를 소재로 한 작업과 전시를 하는 것이다. 내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작가로 초청을 받아놓은 상태다. 돈을 받지 않고 남의 몸에 그림을 그려주는 그에게 타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며 작품”이다. 동시에 “몸에 옷을 입히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다.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는 다름아닌 ‘novo(순수) 스타일’이다. 그는 ‘novo’라는 단어를 만들어 ‘순수’란 의미를 입힌 독특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강 씨의 ‘made in home tattoo’가 과연 유럽에까지 알려질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타투머신을 손에 잡는 아티스트로 살고 싶어요”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강 씨의 모습에서 낙서와 스티커 붙이기가 취미였던 어린 아이 강정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 산리- 퓨전스타일 '타투 몽타주' 추구, 고전회화서 아이디어 얻어
◇ 문대희- 앨범재킷이나 보드 디자인에 타투 적용, 뉴욕 진출 꿈 키워


7- 산리 씨
8- 문대희 씨


■ 미술 전공하고 직업 타투이스트로

산리(강산이ㆍ27) 씨와 문대희(31) 씨도 주목할 만한 타투이스트다.

둘 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직업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매체예술학을 전공한 산리 씨는 비교적 일찍 타투 세계에 입문했다. 스무 살 무렵 ‘홍대 클럽문화’를 접하면서 그녀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한다. 클럽에서 타투를 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타투의 묘한 매력에 끌리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녀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유혹을 받은 셈이다.

“타투 스튜디오에서 수강하면서 기초부터 배웠어요. 미술을 전공한 덕에 남들보다 빨리 저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죠.” 홍익대 인근에서 ‘레드타투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녀는 올해로 타투 경력 4년차다.

산리 씨는 기존의 타투 장르에서 벗어나 타투 몽타주라는 퓨전 스타일을 추구한다. 회화를 전공해서인지 주로 고전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산리 씨의 작업실 한켠에는 이젤과 캔버스가 놓여 있고, 벽에는 자신이 그린 회화작품이 걸려있다.

“올해 6월에 타투이스트들과 공동 전시를 했는데 부끄럽지만 그 전시를 계기로 제가 10년 만에 붓을 잡게 됐어요. 손끝에서 전율이 오는 거예요. 앞으로 타투머신과 붓을 동시에 잡는 아티스트로 살아야지 하며 다짐했지요.”

산리 씨는 자신의 영어식 이름 ‘sanlee’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티셔츠 디자인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먼저 알릴 예정이다. 하지만 그녀의 최종적인 꿈은 타투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 진출해 회화와 타투를 응용한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는 것이라고.

문대희 씨도 뉴욕 진출을 목표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가는 타투이스트다. 이미 ‘ink or die’란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할 만큼 미술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의 몸에는 해골모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는데, 그는 타투 장르 중 ‘다크 이미지’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헤비메탈과 스노우보드의 세계에 푹 빠진 문 씨에게 타투 문화는 낯선 세계가 아니었다. 뮤지션들과 스노우보더들의 몸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타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앨범재킷과 보드 데크에 새겨진 디자인도 다름 아닌 타투였다.

문 씨의 꿈은 앨범재킷 디자인과 동시에 보드에 그림을 그려 넣는 데크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타투는 좋아하던 음악과 스포츠에 이끌려 너무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죠. 지금은 제 바람대로 인디밴드나 그래피티 아티스트, 보더들에게 주로 타투를 해주며 살고 있어요.”

문 씨는 ‘딱 먹고 살 만큼’만 타투로 돈을 번다. 작업실 관리비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캔버스에 회화 드로잉 작업을 하고 인디밴드 앨범재킷 디자인, 보드 데크 디자인을 한다. 큰 돈은 벌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BIG MOON’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문 씨는 자신의 이니셜을 딴 ‘BMT’ 라는 티셔츠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아직 홍보가 덜 됐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갈 생각이다.

“돈이 모이면 비행기 탈 돈을 마련해서 외국 타투 컨벤션에 참가를 하죠. 타투 문화를 직접 보고 익히는 것만큼 자극받는 것도 없어요. 공부도 되고요. 언젠가 저도 뉴욕에 타투 전문 스튜디오를 차려 ‘BIG MOON’이란 이름을 알릴 거예요.” 문 씨는 지금은 비록 돈을 적게 벌어도 자신의 고유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며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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