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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뒷방 늙은이'보다 더 외로운 미국의 노인들
자녀들 독립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
대부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식은 방관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





할로윈 명절에 손녀와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을 먼저 들을래?”라는 질문이 있다. 노년에 관한 글 두 편을 기획하며 이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었는데,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있듯이 ‘풍부한 노년’이 있으면 반드시 ‘빈곤한 노년’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활기차고 생산적인 미국의 노년 생활은 제대로 교육 받고 또 경제적으로 안정된 일부 특정계층 노인들만의 일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장 연금’에 의지하거나, 연령미달로 이런 기본적인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빈곤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노인들도 꽤 많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노인 은행 강도 사건 기사를 보던 중 호기심이 발동해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찾다가 우연히 ‘하비’라는 노인의 사연을 읽게 됐다.

청소년 보호소를 시작으로 감옥과 정신병원을 오가며 평생을 보낸 하비는 자신의 남은 생을 보낼 유일한 안식처는 감옥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은행에서 강도짓으로 현찰을 뺏어 일부러 돈이 보이도록 ‘투명 비닐 백’에 담아 “나 잡아가시오” 하고 아주 천천히 걷다가 결국 소원대로 경찰에 잡혀갔다.

이처럼 그저 끼니만 해결하고 자기 한 몸 누울 공간 있으면 자족할 수 있다는 소박한 바람도 사치밖에 되지 않는 노인이 하비 뿐만은 아닐 것이다.

■ 부모의 죽음 앞에 '쿨'한 자식



생활고로 투쟁하는 노인들을 직접적으로 겪어 볼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약 6년 전 시카고 어느 큰 병원의 인턴 원목으로(Intern Chaplain) 두 달 여간 일하면서, 정서적으로 빈곤한 즉 ‘고독한’ 미국의 노인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내게 맡겨진 임무 중의 하나는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들이 정서적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한번은 두 자녀를 대동한 중년 남자가 혼자 외롭게 임종을 맞고 벌써 며칠 째 영안실에 누워있는 자기 아버지를 보러 온 적이 있다.

냉동고에서 바로 꺼내온 시신에서 새어 나오는 찬 공기도 싫고, 문 하나만 열면 즐비하게 누워있는 다른 시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부모 자식 간 마지막 인사가 그리도 짧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들은 발가락에 이름표 하나 달랑 달고 누워 있는 자기 아버지 시신 주위를 눈물 한 방울 없이 마른 눈으로 째려보며 관찰하듯 몇 바퀴 빙빙 돌더니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살아생전 쌓인 감정이 얼마나 많았기에, 부모 자식 간 마지막 인사가 저리도 무심할 수 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 불쌍한 할아버지 시신 옆에 잠시 머무르다 온 적이 있다.

■ 철저하게 독립적인 부모와 자식관계





내가 담당했던 신장 병동 환자 중에는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자식 하나 없이 병마와 투쟁하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안부를 묻기 위한 나의 일상적인 방문도 유난히 반기곤 하던 노인들!

당시에는 이들을 외롭게 방치하는 자식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지금은 그들의 부모 자식 관계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그간 진일보한 나의 이해를 정리하자면, 첫째, 일단 자녀가 성장한 후엔 대부분 미국의 부모 자식들은 확실하게 ‘내 인생 나의 것’, ‘네 인생은 너의 것’이라며 각자의 독립된 삶을 산다.

한국에서는 아들내외 그리고 손자 손녀와 한 지붕 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아직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피치 못할’ 이유로 인해 자기 부모와 자식을 한 지붕 아래서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샌드위치 세대’라 부르며, 이런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경향이 있다.

둘째, 미국 부모들의 독립적인 그래서 외로울 수도 있는 삶은 자식들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부모들 자신의 선택일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노인 전용 주거시설들이 있는데, 개인 또는 공동 소유나 이 둘의 혼합형, 또는 월세 등이 있다.

비상 버튼 하나 달랑 있는 원시적인 서비스에서 시작하여 외출 시 차편 제공, 운동관련 수업이나 노인 건강 전문가와의 상담, 그리고 신용이 보장된 집수리업자와 연결해주는 등의 보다 진보된 서비스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 복지사, 간호사, 노화 문제 전문가 등으로 이루어진 팀이 아예 공동체에 상주하며 다양한 건강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물론 서비스의 수준에 따라 요구되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100만 원 미만의 연회비를 내는 경우와 1000만 원 정도의 평생회원 가입비를 낸 후 매 달 30만 원 안팎의 서비스 사용료를 내는 경우 등이다. 자식들 도움이 필요치 않는 독립된 삶을 위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미국의 노인들은 늙기도 전에 일찌감치 전 재산을 물려주고 자식한테 얹혀살며 ‘뒷방 늙은이’ 신세를 자청하는 한국의 노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일정 나이 이상의 노인들만 살 수 있게 하는 엄격한 규정 관계로, 이런 노인 공동체에 사는 한 손녀 손자 봐주는 ‘애보기’할머니 신세로 전락할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주말에 잠깐 방문하는 손자 손녀들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세 번째,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의 자식들이 부모 돌보기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업 관계로 타주에 가서 살게 된 자식이 부모를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노인관련 질병 전문 관리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혼자 사는 부모의 혈압 혈당 지수, 변기나 냉장고 사용 여부 등을 자동 모니터 해주는 첨단 서비스를 이용해 원거리 부모 돌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중풍 치매 등으로 전문 의료진의 계속적인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이 주로 가는 ‘널싱 홈’(Nursing home)이란 것이 있다.

노인학대 등 불미스런 일도 가끔 일어나곤 한다는 이 시설에 부모를 위탁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지만, 한 달에 적게 들어야 500만 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는 일이 수년의 시어머니 병수발 끝에 ‘장한 며느리 상’을 받은 우리 앞집 살던 아줌마의 ‘효도’와는 격이 좀 다르긴 하나 그 나름대로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독립된 삶’을 추구하는 미국의 노년은 고독할 수 도 있다. 하지만 풍성한 노년의 삶은 결코 외로움과 고독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없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 하는 삶도 잘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 깨닫기도 어렵지만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운 진리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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